(비즈인사이트)인도의 '부재중전화 마케팅', 은행업무·구직활동도 OK
사용자는 무료로 다양한 서비스 이용…기업은 효과적인 마케팅 채널로 활용
2016-08-08 11:49:21 2016-08-08 11:49:21
인도에는 독특한 휴대전화 사용 문화가 있다. 인도의 휴대전화 사용 인구는 중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많지만 전화를 많이 하지는 않는다. 대신 부재중전화로 의사소통을 한다. 약속시간을 앞두고 친구에게 전화를 걸고는 받기 전에 바로 끊어버린다. 친구는 부재중전화를 보고 상대방이 약속 장소에 나오고 있음을 확인한다. 부재중전화를 이용하는 이유는 돈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인구의 4분의3이 월 소득 75달러 이하로 생활하는 인도에서는 피처폰과 선불전화가 일반적이다. 통화시간을 1분이라도 아끼기 위해 부재중전화 소통법이 탄생한 것이다. 친구들끼리, 가족들끼리 이용하던 부재중전화는 이제 기업의 마케팅 영역에도 활용되고 있다. 
 
[뉴스토마토 원수경기자] "1800-1033-331으로 부재중전화를 남기세요. 당신에게 꼭 맞는 일자리를 찾아드립니다."
 
인도에서 실제로 볼 수 있는 광고다. 인도에서는 일자리 찾기는 물론 은행업무와 음악감상, 투표까지 부재중전화로 할 수 있다. 부재중전화를 이용한 의사소통은 본래 가족이나 친구, 연인 사이에서 많이 활용되던 방법이다. 우리가 과거 삐삐시절 '1010235(열렬히사모)' 같은 숫자 암호를 썼던 것처럼 인도에서는 부재중전화가 한통이면 '예', 두번이면 '아니오', 세번이면 '보고싶어'라는 의미를 가진다. 
 
친구나 가족 사이에서 돈 안 드는 소통법으로 활용되던 부재중전화가 최근에는 활동 범위를 넓히고 있다. 기업의 마케팅이나 정당의 정치활동에 사용되는 것은 물론이고 인도를 넘어 다른 신흥국으로도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인도인들이 가족이나 친구 사이에서 활용하던 부재중전화를 이용한 의사소통법이 기업의 마케팅에도 활용되고 있다. 사진은 인도 뉴델리의 한 상점에서 통화하고 있는 남성의 모습. 사진/뉴시스·AP
 
'부재중전화'로 은행업무·음악감상·투표까지
 
이른바 '부재중전화 마케팅(MCM·Missed call marketing)'은 공짜 부재중전화를 이용해 소비자들에게 간단한 정보나 광고를 제공하는 방법을 말한다. 소비자가 특정 번호에 전화를 걸어 부재중전화를 남기면 기업이 은행 계좌 정보나 진행 중인 스포츠 경기 점수 등을 문자로 보내준다. 좀 더 긴 이야기가 필요한 경우에는 기업이 전화를 되걸어 상담 등을 진행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인도에서 부재중전화를 통해 할 수 있는 5가지'를 소개했다. 부재중전화로 할 수 있는 대표적인 일은 은행 업무다. 인도 최대 은행인 인도국영은행(SBI)에서는 지난해부터 계좌 잔고나 간단한 거래내역을 부재중전화로 확인할 수 있다. '등록'이라는 문구와 함께 계좌번호를 입력해 문자를 보내기만 하면 서비스 신청은 끝난다. 이후 잔고 확인은 '0922-3766-666' 거래내역 확인은 '0922-3866-666' 등 서비스마다 부여된 특정 번호에 부재중전화를 남기면 은행은 필요한 정보를 문자메시지로 보내준다. 카드 사용 정지 등의 업무도 문자를 보내는 것만으로 할 수 있다. 인도연방은행은 최근 한발 더 나아가 부재중전화를 이용한 계좌이체 서비스까지 선보였다. 
 
부재중전화를 이용하면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의 연설도 들을 수 있다. 8190-881-908에 부재중전화를 남기면 모디 총리의 월례 라디오 연설이 나오는 전화가 다시 걸려오는데 지금까지 100만명 이상의 인도인이 부재중전화로 모디 총리의 목소리를 들었다. 모디 총리가 이끄는 인도국민당(BJP)도 새 당원을 모집하는 데 부재중전화를 사용하고 있다. 
 
구인구직 활동도 부재중전화로 할 수 있다. 일자리 중개업체 퀴커(Quikr)는 부재중전화를 받으면 해당 번호로 다시 전화를 걸어 수신자의 학력과 경력 등 개인정보를 받아 즉석에서 이력서를 작성한다. 이력조회가 완료되면 몇 분만에 그에게 알맞은 일자리와 연락처를 정리해 문자메시지로 보내주게 된다. 
 
인도의 소비재업체인 힌두스탄유니레버는 부재중전화를 이용해 음악을 들려주는 서비스를 하고 있다. 부재중전화를 남기면 잠시 후 최신 유행 음악과 진행자의 멘트가 함께 나오는 라디오가 재생되는 전화를 받을 수 있다. 중간 중간 힌두스탄유니레버에서 판매하는 제품에 대한 광고를 듣는 대신 공짜 음악 라디오를 즐기는 것이다. 현재 5000만명이 이 같은 서비스를 즐기고 있으며 이를 통한 광고 노출 횟수도 10억회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투표도 가능하다. Zee TV에서 방영된 유명 댄스 경연프로그램인 '댄스 인디아 댄스'는 부재중전화롤 통해 응원하는 팀에게 투표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밖에도 암검진센터나 지역 체육관, 사립학교, 대학, 비영리기구(NGO) 등도 부재중전화를 이용한 서비스를 하고 있다. 부재중전화는 통화시간이 빠듯한 저소득층이 주로 이용한다는 편견을 깨며 최근에는 고급 부동산 광고에도 부재중전화가 이용되고 있다. 
 
공짜에 편리해 인기…페이스북·트위터도 관심
 
미 펜실베니아대 와튼경영대의 온라인 저널 놀리지앳와튼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부재중전화 마케팅이 대기업의 참여로 주류 시장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진단하며 인기 원인을 분석했다. 
 
부재중전화가 널리 활용되는 첫째 이유는 공짜이면서도 편리하기 때문이다. 정해진 번호에 전화를 걸었다 끊기만 하면 되는 방식은 비용이 전혀 들지 않으면서 ARS 같은 기존 방식보다 훨씬 간편하다. 15~20분씩 전화를 붙들고 있을 필요도 없고 긴 안내를 듣고 해당 번호를 누를 필요도 없다. 
 
부재중전화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다. '댄스 인디아 댄스'는 시청자 투표 방식을 문자메시지에서 부재중전화로 바꾸자 투표자 수가 12배나 늘었다. 단 3번의 방송에서 1억건이 넘는 부재중전화 투표가 이뤄졌다. 우리 돈으로 약 50원인 3루피에 불과한 문자비용을 없앤 결과다. 
 
회사 입장에서도 일반적인 콜센터를 운영하는 것보다 부재중전화를 활용하는 편이 비용이 더 적게 든다. 인도의 디지털마케팅업체 넷코어솔루션의 설립자인 라제시 자인은 "부재중전화 서비스를 이용하면 적은 인프라를 통해서도 많은 양의 소비자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콜센터의 경우에는 특정 시간에 몰리는 소비자들을 불편 없이 수용하기 위해 직원이나 필요한 장비를 확충해야 한다. 하지만 부재중전화를 이용하면 소비자의 요구사항을 우선 접수하고 추후 전화를 걸어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적은 인력으로도 운영이 가능하다. 또 문자를 읽고 쓸 줄 모르더라도 부재중전화를 거는 것은 어렵지 않아 넓은 범위의 소비자에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글로벌 IT 기업들도 인도의 부재중전화 마케팅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페이스북은 이미 지난 2014년 11월 인도의 부재중전화 마케팅 업체인 비바커넥트와 독점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피처폰 사용자 비율이 높은 인도시장에서 광고수익을 높이기 위해 부재중전화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인도 내 페이스북 회원은 1억명이 넘는데 이 가운데 3분의2가 피처폰 사용자로 모바일 광고에는 한계가 있다. 페이스북은 뉴스피드에 올라오는 일부 기업의 광고에 '부재중전화' 버튼을 달았고 사용자가 이를 클릭할 경우 음악이나 크리켓 경기 점수, 축하 메시지 등을 광고와 함께 제공하는 전화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트위터도 지난해 부재중전화 마케팅업체 집다이얼을 인수했다. 비싼 가격 때문에 모바일데이터를 마음껏 사용하지 못하는 인도인들이 부담 없이 트위터를 이용할 수 있게 하겠다는 계산이 담긴 행보였다. 또한 집다이얼은 2010년 인도 남부에서 출발해 스리랑카와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필리핀 등에도 진출한 업체로 트위터의 신흥국 진출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됐다. 구체적인 액수가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인수대금은 3000만~4000만달러 수준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신흥국으로 서비스 확산…선진국에도 통할까
 
인도를 중심으로 발전한 부재중전화 마케팅은 다른 신흥국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파키스탄의 첫번째 부재중전화 마케팅 플랫폼인 플래시콜을 설립한 살만 자말리는 "신흥국에서 부재중전화 마케팅이 통하는 것은 비용이 들지 않고, 전화라는 가장 간편한 수단을 사용하는 쉽고 빠른 방법이기 때문"이라며 "또한 앱을 따로 다운받거나 계정을 만드는 번거로움 없이도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이라 인기가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선진국 시장에서도 부재중전화 마케팅이 활용될 수 있을지 여부는 아직 미지수다. 선불요금제로 피처폰을 주로 사용하고 스마트폰을 쓰더라도 모바일 데이터 이용량이 월 평균 60MB에 불과한 인도시장은 선진국과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플래시콜은 회사를 열면서 파키스탄과 미국에서 같은 서비스를 동시에 런칭했지만 미국에서의 사업은 성공하지 못했다. 자말리 플래시콜 설립자는 "(두 지역에서) 차이가 가장 컸던 것은 부재중전화를 거는 것에 대한 소비자들의 태도였다"고 말했다. 모바일 인터넷 속도가 빠르고 스마트폰이 광범위하게 이용되는 미국에서는 소비자들이 굳이 부재중전화를 걸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아울러 부재중전화에서 느껴지는 '저가' 이미지도 선진국에서의 확산을 막는 요소로 꼽혔다. 부재중전화 마케팅을 적용하면 자칫 이미지가 추락할까 걱정하는 기업들이 해당 기술사용을 꺼린다는 것이다. 고급 브랜드를 찾는 소비자들 역시 저가 전략의 브랜드를 기피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기꺼이 부재중전화를 남기는 소비자들을 통해 양질의 빅데이터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은 장점이 될 수 있다. 직접 전화를 걸어오는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만큼 광고의 타겟팅 효과도 극대화될 수 있다.
 
원수경 기자 sugyu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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