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숟갈의 기억. (米)
연재 /기획
2016-08-11 09:08:32 2016-08-11 09:08:32
7월이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던 날. 할아버지께서 위독하시다는 문자를 받았습니다. 전화기를 내려놓은 이후, 가족 중 누군가가 곁에 붙어 언제가 될지 모르는 할아버지의 마지막을 지켜드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짐을 챙겨 대전에 내려가게 되었지요. 무더운 여름날, 길고도 짧은 할아버지와의 여정 길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직접 마주한 할아버지는, 병마와 힘든 사투를 벌이고 계셨습니다. 몰라보게 야위셨고, 매 순간 버거운 호흡을 내뱉고 계셨습니다. 할아버지의 품을 떠나, 이리저리 삶에 치이며 바쁘다는 핑계로 문안 인사조차 차일피일 미루던 지난날이 원망스러웠습니다. 손이 귀한 집안의 장손으로 태어나, 말로 표현하지 못할 큰 사랑을 받아왔기에 더욱 그러하였을 지도 모릅니다.
 
병명은 폐렴이었습니다. 고령에 찾아온 병마는 치명적이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상태는 악화되었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저 손을 잡아드리거나 눈을 맞춰 드리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무기력함에 몇 번씩이나 한숨을 내쉬었는지 모릅니다. 의학이 발전하고 기술이 발달한다 한들, 세월의 무게 앞에 인간은 한없이 나약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할아버지의 머리맡에는 금식을 알리는 큼지막한 빨간 팻말이 걸려있었습니다. 자칫 음식물이 기도로 넘어가 호흡을 방해 한다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저를 힘들게 했습니다. 누군가는 살기 위해 숟가락을 들어야 했지만, 누군가는 살기 위해 숟가락을 놓아야만 했습니다. 혼자 살겠노라 밥을 삼키는 것이 죄송스러웠고, 큰 불효를 저지르는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힘을 내어 할아버지의 곁을 지켜드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끼니마다 억지로 밥을 삼켰습니다. 기운 내라며 고봉으로 밥을 쌓아주시던 식당 이모님의 마음은 고마웠지만, 왠지 모를 죄책감에 도통 배고픔을 느끼질 못했습니다. 큼지막한 영양 주사를 팔에 꽂은 채, 따스하게 제 손을 어루만져주시던 할아버지의 마음은 어떠하셨을까요.
 
끼니를 거르신 탓인지, 값 비싼 항생제와 영양제 역시 할아버지에겐 큰 도움이 되질 못하였습니다. 증상은 악화되었고, 또렷하시던 의식마저도 점차 흐려지셨습니다. 2016년 7월 26일 늦은 8시 45분. 할아버지께서는 여든 다섯 해의 긴 삶을 마무리 지으셨습니다. 마지막 호흡을 내뱉으시며, 편히 주무시듯 눈을 감으셨지요.
 
사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직후, 큰 슬픔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몰려오는 의료진과 얘기해야 했고, 장례 절차와 각종 서류 처리를 위해 분주히 뛰어다녀야 했기 때문입니다. 집안의 어르신들이 미처 오시기도 전에, 스물다섯의 성인이라는 이유로 무던히도 많은 절차들을 마주해야 했습니다. 세상의 냉정함을 이토록 뼈저리게 느껴본 적이 있었던가요. 어른이 되었다 생각했지만, 저는 아직 철부지 소년에 불과했습니다.
 
어르신들이 도착하시고, 자리를 비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잊고 있던 허기가 몰려와, 병원 앞의 식당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음식을 주문하고, 반찬이 미처 나오기도 전에 허겁지겁 숟가락을 들었습니다. 한참을 우물거리던 도중, 이유 모를 감정이 북받쳐 올랐습니다. 지난 25년간, 그리고 최근 며칠 동안 할아버지와 함께한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더군요. 한참동안 식당 구석에 앉아 나가질 못했습니다. 누군가와의 이별이 이토록 힘들단 사실을 깨닫긴 처음이었습니다.
 
 4일간의 장례를 마무리 짓고, 며칠 지나지 않아 다시 할아버지를 찾아 왔습니다. 양지바른 곳에 잠들어 계신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곁에 홀로 앉아 있자니 많은 감정이 교차합니다. 지금쯤 할아버지는 할머니와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계시겠지요. 
 
병원에 머무르던 날. 매일 저녁 할아버지의 곁에 붙어, 그간 써내려왔던 글들을 읽어드렸습니다. 부끄럽다는 이유로 꽁꽁 숨겨오기만 했던 것들이었습니다. 최근 들어 저의 열렬한 애독자가 되신 할아버지께서, 이번 글 역시 흡족하게 여기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일주일이 흐른 지금. 저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매 끼니 열심히 밥을 씹으며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자 노력하는 중이지요. 다만, 아무리 바쁘더라도 조만간 다가올 추석에는 정갈한 한 끼 식사를 잊지 않고 챙겨가야겠습니다. 그 때에는 할아버지와 함께 마주앉아 식사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길 소망합니다.
 
사진/바람아시아
 
 
 
김태경 baram.asia  T  F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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