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조승희기자] 국내 1위이자 세계 7위 해운사인
한진해운(117930)이 40여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한진해운 채권단이 추가지원 불가 결정을 내리면서 한진해운의 운명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법정관리에 들어간다고 회사가 반드시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 한진해운의 기업존속가치보다 청산가치가 더 높아 '청산' 절차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업황·원칙·형평성 고려…채권단 '만장일치' 의견
한진해운에 대한 최종 결정을 위해 30일 오전 11시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에서 열린 채권단 긴급회의는 별다른 이견 없이 30분 만에 끝난 것으로 전해졌다. 한진해운의 자금 부족과 용선료, 선박금융 등 어느 한 가지도 확실한 게 없다는 채권단 공통된 판단이었다.
우선 채권단은 침체된 해운 업황이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크게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6000억원 신규 자금을 투입한다고 해도, 2018년까지 영업적자가 예상되는 등 업황 침체가 장기화 될 가능성이 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판단한 것이다.
금융당국이 지난해 조선·해운 구조조정에 나서면서 천명한 구조조정 원칙을 허물 수 없다는 '원칙론'도 작용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그동안 대주주(현대그룹)의 자구 노력으로 정상화 기반을 확보한
현대상선(011200)과의 형평성을 강조해 왔다. 대주주인 한진그룹의 자구 노력을 통한 극복이 아닌 채권단의 신규 자금이 투입이 결정되면, 나쁜 선례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특혜' 논란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진그룹에 대한 실망감도 자구안 거부 이유 중 하나로 분석된다. 지난 5월 조건부 자율협약 개시 이후 채권단은 3개월 넘게 자구안을 기다렸으나, 최근 제출된 '최종 자구안'에는 6월 말 반려된 대한항공의 4000억원 유상증자 외에 실효성 있는 자구 내용이 담기지 않았다. 채권단 결정을 하루 앞두고 한진그룹이 유증 시점인 올해 말보다 유동성 공급 시기를 앞당겨 2000억원을 대여 형식으로 한진해운에 지원할 수 있다는 수정 자구안을 제출했지만 먹혀들지 않았다.
한진그룹은 "한진해운의 경영정상화를 추진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으며, 해외 채권자와 선주사들의 협조까지 힘들게 이끌어냈음에도 추가지원 불가 결정이 내려져 안타깝다"면서 "법정관리 절차에 들어가도 한진그룹은 해운산업의 재활을 위해 할수 있는 모든 노력을 경주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에 있는 한진해운 본사 로비 전경. 사진/뉴시스
◇회사채 3분의 1토막…주가 급락으로 거래정지
한진해운이 다음달 4일 자율협약 종료 후 법정관리를 통한 청산 수순을 밟을 것으로 예상되면서 이날 한진해운의 회사채와 주가는 폭락했다.
이날 채권 시장에서 2011년 발행된 5년물 회사채 '한진해운71-2'는 전날 대비 30%(1245원) 급락한 2905원에 장을 마쳤다. 같은해 발행한 5년물 '한진해운73-2'와 '76-2'도 각각 29%, 28% 떨어진 2800원, 2730원에 거래가 마감됐다. 연초 9000~1만원 선에 거래됐던 것과 비교하면 3분의 1 토막이 난 셈이다. 법정관리가 공식화되면 한진해운 관련 채권·채무는 동결되고, 1조2000억원의 회사채는 사실상 휴짓조각이 된다.
다만 회사채 투자자는 개인보다 기관이 많고, 기관도 여러곳으로 분산 돼 있어 여파는 크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지난 6월 말 기준 공모사채 4210억은 대부분 단위농협·신협이 보유하고 있고, 사모사채(7681억원)는 신용보증기금과 산업은행이 갖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법정관리 절차에 들어가면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피해 대책을 세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한진해운 주가는 오후 1시30분경 전날보다 24.16% 떨어진 1240원에 거래가 정지됐다. 반면 추가 지원 부담을 덜게 된
한진칼(180640)과
대한항공(003490)은 각각 5.85%, 6.87% 오른 1만9000원, 31100원에 마감하며 강세를 보였다.
◇청산 수순 밟을 듯…역사속으로 사라지나
업계의 의견을 종합하면 한진해운은 향후 법정관리를 통한 청산 수순을 밟게 될 것이 유력하다.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법원이 회사의 회생가능성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데, 현재 한진해운은 기업존속가치보다 청산가치가 더 높기 때문이다.
당장 해외 채권자들의 선박 압류와 화물 운송계약 해지, 용선 선박 회수, 해운동맹체 퇴출 등의 조치를 취하면 한진해운은 정상적인 영업이 불가능해진다.
물론 '팬택' 사례처럼 법정관리 결정이 내려졌다고 기업이 반드시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한진해운은 인수할 만한 주체가 없어 기사회생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선주협회는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합병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채권단이나 금융당국은 이에 부정적이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합병 가능성에 대해 "현재 상황에서는 가능하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임 위원장은 "한진해운 협력업체와 해상 물동량 문제, 해운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방안 등 여러 시나리오를 상정해 다각적으로 대응책을 검토했다"고 말했다.
한국국제물류협회, 부산항만산업협회 등 24개 단체는 부산시 중구 중앙동 한진해운 사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금융논리만으로 국가기간산업을 와해시키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며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환적화물 중 절반 이상이 다른 나라로 떠나고 부산항 매출은 연간 7~8조원 감소해 연관산업에 연쇄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호소했다.
조승희 기자 beyond@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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