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성휘기자]통계청이 지난 7일 발표한 ‘2015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다문화 가정의 수는 29만9000가구로, 1911만인 전체 가구의 1.6%를 차지했다. 가구원(인구)수로는 88만8000명으로 전체 인구의 1.7% 수준이다. 우리사회의 약 2%가 다문화 가정인 셈이다.
남녀가 한 가정을 만드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살아온 이들이 만드는 것은 더욱 그렇다. 국내에 입국한 결혼이주여성은 언어 소통의 어려움뿐만 아니라 사회적 편견,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혼란, 육아 및 자녀 교육에서 겪는 곤란, 부부 갈등 등 다양한 문제를 겪게 된다.
사회적기업 아시안허브는 이주여성들의 한국 사회 적응을 돕는 것을 넘어, 모국어라는 자신의 재능을 살려 다문화·언어강사나 통·번역가 등 전문직 종사자로 활동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그들이 자존감을 가져야 사회와 가정에서도 당당히 설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아시안허브를 이끌고 있는 최진희 대표를 20일 용산에 위치한 서울 글로벌창업센터에서 만났다.
최진희 대표는 시를 사랑한 문학소녀였다. 추계예술대학교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하고 정식으로 등단한 시인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예나지금이나 한국에서 전업시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다. 최 대표는 1997년 크라운제과 사보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1999년 삼성전기로 자리를 옮기면서 홍보 및 사회공헌(CSR) 업무 등을 담당했다.
최진희 아시안허브 대표가 20일 서울 용산에 위치한 글로벌창업센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최 대표는 “사회공헌을 기획하면서 직원들과 함께 다양한 곳의 봉사활동에 가게 됐다”며 “나는 그냥 회사업무를 수행하는 것이었는데 도움을 받으신 분들이 너무나 고마워했다. 과연 내가 그런 감사를 받아도 괜찮은지 오히려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사회공헌과 언론 홍보를 잘 엮어내 사내의 평가도 좋았지만 ‘정말 순수한 봉사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은 커져만 갔다.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2004년 한국국제협력단(KOICA, 코이카) 해외봉사단원으로 앙코르와트가 있는 캄보디아 시엠레아프에 파견돼 2년6개월간 한국어를 가르쳤다.
2007년 귀국 후에도 캄보디아와의 인연은 계속됐다. 재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면서 한창 바쁜 와중에도 YMCA 등 시민단체에서 한국어 교육 자원봉사를 하며 캄보디아 출신 결혼이주여성들을 만났다.
최 대표는 “양쪽 언어를 잘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 부부상담도 자주 도왔는데, 두 나라의 쌍방향 이해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또 캄보디아에서 나름 고등교육을 받은 이주여성들은 직업이나 사회활동에 대한 욕구가 많지만, 시부모나 남편의 반대로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수년간 회사 일과 자원봉사를 병행했지만 점점 한계에 도달했다. 최 대표는 어느 날 관악구청에서 열린 설명회에서 사회적기업에 대해 알게 됐고, 이주여성을 돕는 사회적기업을 구상하게 된다. 결국 2013년 6월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에 선정돼 아시안허브(asianhub.kr)를 창업한다.
아시안허브의 결혼이주여성 자신감 UP 프로젝트 ‘전문 스피치 교육’에서 수강생들이 웃고 있다. 사진/아시안허브
“모국어에 강점 가진 이주여성, 전문가로 자립 가능해”
아시안허브의 사업영역은 콘텐츠개발사업부, 통번역사업부, 다문화사업부 등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콘텐츠사업부에서는 ‘글로벌 다문화 신문’이라는 인터넷신문을 발간하고 캄보디아, 베트남, 필리핀어로 된 동화책과 보이스펜 세트 등 다문화를 테마로 한 출판사업을 진행한다. ‘아시안랭귀지’(www.asianlanguage.kr)를 통해 다양한 아시아어 교육 동영상을 저렴하게 제공하며, 결혼이민자들과 그 가족들을 위한 다양한 동영상 콘텐츠들도 개발한다.
통번역사업부는 캄보디아와 한국의 교류를 위해 다양한 활동을 수행중이다. 일반 개인 서류는 물론 기업 대상으로 금융, 법률, IT 등 다방면에 걸친 전문적인 통역과 번역 서비스를 제공한다. 방송국의 의뢰를 받은 영상물 번역이나 공식행사 수행통역도 한다.
다문화사업부는 초등학교 방과 후 수업을 통한 다문화 프로그램을 진행하거나 다문화 축제와 같은 이벤트를 진행한다. 또 에코 디자인실을 운영해 폐현수막을 이용한 휴지 케이스 등 재활용품도 생산한다.
최 대표는 아시안허브 외에도 아시아언어문화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어에 서툰 이주여성과 그 가정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비영리조직으로, 그곳에 등록된 300명 이상의 봉사단원들은 무료 한국어 교육 등을 실시한다. 연구소에서 이주여성들의 한국사회 적응을 돕고, 아시안허브에서는 자립을 돕는 구조인 셈이다.
최 대표는 “이주여성들은 자국 언어에 강점을 갖고 있기 때문에 통·번역과 언어 교육 사업에 적합한 인재로 성장할 수 있다”며 “처음에는 캄보디아에 초점을 많이 맞췄지만 지금은 몽골, 미얀마, 라오스, 베트남, 중국, 일본 등 다양한 국가들을 포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아시안허브의 온라인 어학사이트 아시안랭귀지에 올라갈 동영상 강의가 촬영되는 모습이다. 사진/아시안허브
“다문화 가정이 믿고 의지하는 기업이 되겠다”
창업한지 몇 년 지나지 않았지만 아시안허브는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 최우수상, 소셜벤처경연대회 글로벌부문 우수상, 스타사회적기업가 선정 등 벌써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지금은 10명에 불과하지만 직원도 점차 늘려가고 있다. 최 대표는 “크게 수익이나 매출이 나지는 않지만, 마이너스가 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밝혔다.
아직은 회사가 최 대표 개인역량에 의지하는 부분이 크다. 최 대표는 회사 총괄운영뿐만 아니라 회사를 대표하는 통역가 겸 번역가, 다문화 강사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며 눈코 뜰 새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는 “예전 기업에서 홍보팀장으로 근무했을 때 출판과 미디어를 모두 담당했기에 비슷한 감각으로 하고 있다”면서 “남편과 시댁식구들이 적극 응원해줘 열심히 하고 있다. 다만 이제 막 3살이 된 아이를 보면 미안해진다”고 말했다.
사업을 하면서 최 대표에게 가장 힘든 부분은 다문화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가 부족한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최근 아시안허브는 클라우딩펀드를 통해 ‘엄마 나라 동화책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했지만 목표 금액을 채우진 못했다.
이주여성이 듣고 자란 전래동화를 한국어와 그 나라 언어로 번역해 출간하는 프로젝트다. 어른과 아이가 함께 읽는 동화책으로, 아이는 책을 통해 엄마 나라를 친근하게 느끼게 되고 어른은 그들의 정서와 문화를 배울 수 있다. 아시아 언어를 공부하는 이들에게는 부교재로 활용이 가능하다. 최 대표는 “우리의 사업을 잘 모르는 분들에게 사업 의의와 목표를 설득력 있게 설명하는 것은 어려운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그렇지만 최 대표는 다문화 가정을 위한 다양한 사업들을 지속 전개해나갈 계획이다. 그는 “아시안허브가 다문화 가정이 믿고 의지하는 기업이 되었으면 좋겠다”며 “더욱 열심히 노력해 다문화와 관련해 국내를 대표하는 브랜드로 성장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끝으로 최 대표가 좋아하는 글귀를 소개한다. ‘인생에는 세 가지 시기가 있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는 시기. 발견한 것을 연마하는 시기. 연마한 것을 세상에 되돌려주는 시기.’ 최 대표는 “지금은 발견한 것을 열심히 연마하고 있다”고 겸손하게 말했지만 이미 충분히 되돌려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성휘 기자 noirciel@etomato.com
지난 7월 아시안허브 창립 3주년을 맞아 ‘다문화 열린토크쇼’와 기념행사가 진행됐다. 사진/아시안허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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