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한재영 금투협 K-OTC 부장 "진화하는 장외주식시장…터닝포인트 적기"
전문투자자용 '회원제' 시장 이르면 내년 5월 연다
2016-11-01 08:00:00 2016-11-01 08:00:00
[뉴스토마토 차현정기자] 월세 5000만원이라는 수영장 딸린 강남의 호화 빌라와 없어 못 산다는 36억원짜리 수퍼카. 서른살 젊은 나이에 이걸 모두 제 돈 주고 사들였다고 자랑했다. 장외주식 관련 허위정보로 투자자들을 꾀어 수천억원대 유사수신 범죄 사건을 저지른 이희진씨다. '흙수저의 주식신화'라던 그의 민낯은 최근 낱낱이 드러났다. 감춰졌던 장외주식시장 속 '깜깜이 거래' 실상은 파문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투자자들의 피해수준이 컸던 것만큼 충격적이었던 것은 금융당국이 이 과정에서 보여준 무능과 무책임이었다. 유사투자자문에 대한 관리·감독부터 투자자들이 피해를 당하기까지 당국이 파악하고 있는 부분은 그 어느 것도 없었다. 사실상 사기꾼들이 활보할 수 있게끔 내버려두고 있었다는 방증이다. 장외주식시장의 악마적 속성이 확대될 수 있었던 이유다. <뉴스토마토>는 지난달 28일 한재영 금융투자협회 K-OTC 부장을 만나 장외주식시장이 가야할 방향을 짚어보는 인터뷰를 진행했다. 
 
"제2, 제3의 이희진씨가 나오지 말란 법은 없습니다."
 
한재영 K-OTC 부장은 투자자보호 이슈가 생길 조건을 모두 갖춘 현재의 장외 비상장주식거래시장 구조를 그대로 두면 판박이 사건은 거듭돼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이렇게 말했다. "사설 장외시장에 대한 우려가 커진 건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닙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장외 비상장시장은 상장시장에 비해 위험성이 높고 불법브로커에 사기 당할 요인도 많기 때문이죠."
 
자본시장을 뒤흔든 이번 일련의 사태는 씁쓸하기 그지 없지만 비상장주식시장에 대한 경각심을 크게 불러왔다는 측면에선 한편 반갑기도 하다는 그다. 금투협이 프리보드 10년 경험을 바탕으로 운영 중인 출범 3년차 K-OTC가 최근 '이희진 파문'에 의해 재조명받고 있어서다. 비상장기업 주식을 거래하는 장외주식시장인 K-OTC는 지난 2014년8월 출범했다. 출범 초기 삼성에스디에스(018260), 미래에셋생명(085620), 삼성메디슨 등에 의한 뜨거운 관심 덕에 한때 시가총액 40조원대까지 덩치를 키웠던 K-OTC는 이들 종목 이탈 후 11조원대로 쪼그라든 상태다. 그런 만큼 지금의 기회가 K-OTC 활성화 적기라고 보고 긴장감을 늦추지 않겠다는 금투협이다. 
 
<뉴스토마토>는 지난달 28일 한재영 금융투자협회 K-OTC 부장을 만나 장외주식시장이 가야할 방향을 짚어보는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신건
 
'양도세 면제·매출규제 개선' 기대감…"땜질 처방 걱정"
 
때마침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K-OTC 활성화를 위해 양도소득세 면제 등 정책적 지원을 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 기대감은 더 커졌다. 지난 국회 정무위원회 종합 국정감사에 출석한 임 위원장은 K-OTC를 통해 비상장주식 거래시 양도소득세를 면제해주는 방안을 기획재정부와의 협의를 거쳐 검토해보겠다고 밝혔다. 높은 '양도소득세'와 '매출규제'가 K-OTC 시장 부진의 배경으로 꼽혀온 만큼 제도개선을 발판으로 투자자 유입이 늘어날 것으로 평가된다. 
 
"K-OTC 활성화 문제를 해결할 열쇠도 이 두 가지입니다. K-OTC 활성화의 관건은 높은 회전율과 다양한 거래종목인데 양도소득세가 해결되면 자연스레 거래회전율이 높아지고 매출규제가 사라지면 거래종목은 단숨에 200개 정도 늘어 투자자들을 유인할 수 있을테니까요."
 
장외주식 투자수요가 커졌음에도 여전히 38커뮤니케이션과 같은 사설사이트에 투자자들이 몰리는 근본적인 원인이 바로 매매차익에 무는 양도세와 거래종목수 차이라는 얘기다. 상장주식시장에서 소액투자자는 매매 차익에 과세부담이 없다. 하지만 K-OTC에서는 일부 벤처기업주식을 제외하곤 차익의 10%(중소기업) 또는 20%(대기업)의 양도소득세를 물어야 한다. 형평성에 어긋나는 세제 부담이 사실상 투자자들을 과세 회피가 가능한 사설사이트로 몰고 있는 것이다. 
 
K-OTC에서 거래되면 해당 기업이 증권매출신고서를 제출해야 한다는 점은 우량기업 추가 발굴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K-OTC에서 거래되면 바로 공모실적으로 간주돼 매출신고서 제출의무가 발생한다는 이유로 기업들이 K-OTC 거래를 꺼리기 때문이다. 주주가 수천명에 달하는 우량기업의 경우 투자자들이 먼저 K-OTC에서 거래할 수 있게 등록해달라는 문의전화를 해오는 경우도 있지만 기업들이 등록을 원하지 않는 게 현실이다. 현재 매출액 5조원이 넘는 현대엔지니어링이나 소액주주가 4600명에 육박하는 LG CNS도 K-OTC 비지정기업 중 하나다.
 
"현대엔지니어링과 LG CNS 주주들의 전화를 자주 받습니다. 대부분 '언제쯤이면 K-OTC에서 거래 가능한 것이냐'는 질문이고 매번 '매출규제 때문에 지정기업에 담을 수 없다'고 답을 합니다. 항상 같은 질문에 같은 답을 도돌이표처럼 반복할 수밖에 없어요. 사설 장외시장에선 상장 전 투자(Pre-IPO) 사기가 넘쳐나다보니 안전한 투자를 원하는 투자자들이 K-OTC를 찾아오지만 실상 충족시킬 장 마련이 안 돼 있는 겁니다. 원하는 거래를 안전하게 할 수 있는 시장을 제공하는 것은 정부와 협회가 해야할 중요한 역할이라고 봅니다."
 
한 부장은 최근 금융감독원이 감독사각지대인 유사투자자문업을 강력 제재할 수 있는 법적 토대가 마련된 것도 장외주식시장 의식개선과 플랫폼에 엄청난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기대했다. 지난달 26일 김선동 새누리당 의원은 금감원이 유사수신회사에 대한 직권조사권을 보유하는 '유사수신행위 규제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안정지향식 처방으로 그치지 않길 바라고 있습니다. 대책 없이 유사투자자문업에 강력 처벌만 한다고 해서 기존의 거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사설시장을 누르면 곧장 이들이 제도권으로 갈아탈까요. 등록도 안 된 유사투자자문업을 찾던 이들은 보다 음성화된 시장을 찾을 겁니다. 그래서 더 부담이 크다고 봅니다."
 
단순히 음성화된 유사투자자문업이 눌리면 그 투자수요가 제도권 시장인 K-OTC로 쏠리는, 이른바 '풍선효과' 수혜를 기대했으나 그게 아니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 또한 양도세 면제 등 제도 개선 없이는 어렵다는 얘기다. 결국은 금융위와 기획재정부 간 협의에 달린 셈이다.
 
공개·비공개 듀얼체제 구축…"진화 거듭해 나갈 것"
 
이르면 내년 5월 오픈을 앞둔 '회원제' 시장 준비도 한창이다. 이번주 입찰공고를 실시해 비공개 방식으로 운영되는 회원제 K-OTC 플랫폼 개발에 착수한다는 방침이다. 
 
"전문기관투자자 대상 비상장주식 거래 플랫폼으로 내년 5~6월 오픈을 목표로 개발합니다. 기존의 시장이 일반투자자를 비롯한 모두에게 열린 공개시장이었다면 이쪽은 비공개 회원제 플랫폼이죠. 자금조달을 원하는 비상장사들의 온디맨드(On-Demand) 서비스 또한 가능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기관투자자들은 별도로 벌어들인 이익에 세금을 물리는 법인세를 내고 있어 양도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 착안한 것으로 이 또한 금투협의 K-OTC 활성화 대책 가운데 하나다. 무엇보다 네트워크가 부족해 자금조달이 어려운 비상장사들이 제도권 서비스를 저렴하게 받을 수 있을 것이란 평가다. 현재 중소기업특화증권사로 지정된 일부 증권사들이 검증된 기관과의 매칭에 나서길 적극 원하고 있어 자본시장과 비상장기업이 동시에 질적·양적 성장을 꾀할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이 플랫폼에서 K-OTC는 기관투자자들이 원하는 블록딜 협상툴을 제공하게 된다.  중개회원인 증권사는 호가를 읽고 다시 증권분석 후 가격을 제시, 매칭에 나서는 구조다. 부동산 중개서비스 '직방' 또는 '다방'과 같이 매수자와 매도자가 가격이견을 조정, 협상할 수 있는 것이다. 기관투자자의 신중한 성향을 감안해 운영 자체도 보수적으로 할 계획이다.
 
"회원유치에 1~2년, 첫 딜 후 많게는 4년 정도의 트렉레코드부터 쌓겠다는 방침입니다. 오랜 시간 쌓아온 벤처캐피털(VC)과 비상장기업 간 네트워크를 비집고 들어갈 틈을 확보하는 게 우선이죠. 부족한 게 없다고는 하지만 집중해 신뢰성을 강화하고 장외시장 선순환 생태계를 완벽히 갖춰놓는다면 입소문은 시간문제라고 봅니다. 장외거래에 특화된 K-OTC 플랫폼을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요."
 
한 부장은 선진 장외시장과 비교해 K-OTC는 가야할 길이 먼 만큼 냉혹한 현실 인식이 우선이라고 했다. "여전히 배울 게 많아 다행"이라는 그는 미국 장외주식거래시장(OTC Markets)을 토대로 '궁극의 K-OTC' 전략을 완성하겠다고 말한다. 국내 비상장거래시장 규모가 상장시장 대비 0.05%에 불과한데 반해 기관 등 전문투자자 위주로 시장이 개편된 영향에 장외주식시장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미국은 그 규모가 상장시장 1% 수준이다. 
 
"기존 K-OTC '공개시장'과 기존에 없던 회원제 '비공개시장'이 일반투자자와 전문투자자로 양분된 모든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장기적으로는 이 두 시장이 동시에 활성화된 형태로 비상장주식시장을 이끌 겁니다. K-OTC는 거듭해 진화할 날만 남았습니다."
 
이르면 내년 5월 오픈을 앞둔 '회원제' 시장 준비도 한창이다. 이번주 입찰공고를 실시해 비공개 방식으로 운영되는 회원제 K-OTC 플랫폼 개발에 착수한다는 방침이다. 사진/신건 기자
 
차현정 기자 ckck@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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