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고 밀실에서 만든 '국정 역사교과서'가 28일 얼굴을 드러냈다. 국정 역사교과서는 국민의 4%가 지지하는 박근혜 대통령이 추진해온 핵심 정책이다. 대통령이 중대범죄자로 입건된 초유의 사태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국정 역사교과서를 균형있게 서술했다"며 국정화 강행의 수순을 밟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의 영향이 국정 역사교과서에도 미쳤다는 의혹이 제기됐음에도 불구하고 교육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며 또 다시 귀를 막고 있다. 국정화 강행 당시 최순실의 최측근인 차은택의 외삼촌 김상률 교수가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이었다.
이날 이준식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지율이 4%를 밑도는 대통령이 추진한 역사교과서라는 지적에 대해서도 "대통령 지지율과 국정 역사교과서는 무관하다"고선을 그었다.
집필진도 공개됐지만 보수 성향의 원로 학자가 대거 포함된 데다 현대사 집필진에 정통 역사학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교육부는 "균형성과 전문성을 고려했고 집필 인원도 기존 3.5배 정도 늘려 교과서의 질을 높이고자 했다"고 밝혔지만 중립적이고 공정한 집필진 구성으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은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뉴라트이트 학자들이 대거 집필에 참여한 만큼 내용도 친일·독재 수준을 넘지 못했다. 박정희 독재정권은 미화됐고 새마을운동은 찬양의 대상으로 부각됐다. 이승만은 건국의 아버지로 치켜 세웠으며 부정선거 개입에도 면죄부가 부여됐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대한민국 수립'으로 기록하는 방식으로 '건국절' 개념이 도입됨으로써 헌법이 부정됐고 항일 투쟁의 역사는 희석됐다. 북한에 대한 적대적인 서술이 강화돼 발전적인 평화보다는 퇴행적인 대결을 지향하고 있다.
교육부는 다음 달 23일까지 온라인으로 의견을 수렴한 뒤 국정 역사교과서 최종본은 내년 1월 중 공개할 예정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정부가 국정화를 강행한다 해도 국정 역사교과서의 수명은 길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복면 집필 등 국정화 추진 과정 속에서 신뢰가 무너지며 국민 정서상 이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또 현 정부의 임기가 끝나면 국정 역사교과서는 폐기 수순을 밟게 돼 1년짜리 교과서가 될 것이라는 얘기다. 이렇게 된다면 학생들이 피해를 입는 건 불보듯 뻔하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정부는 대다수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국정 역사교과서로 인해 벌어질 교육 현장의 혼란을 고려한다면 당장 국정화 강행 방침을 철회해야 할 것이다.
윤다혜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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