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기자] “한국경제는 최근 몇 년간 2%대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고, 젊은이들의 취업난은 10년 이상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이대로라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우리도 겪게 될지 모른다’라는 불안감이 한국인들 사이에 급격하게 퍼지고 있는 것 같다.”(7쪽)
타마키 타다시 전 니혼게이자이신문 기자가 본 한국 경제는 불안과 우려가 가득한 상태다. 글로벌 경기 둔화에 기업들의 실적은 악화되고 있고 고용시장 불안은 날로 심화되고 있다. 부동산 시장의 폭락에 대한 두려움과 저출산 고령화 문제, 시한폭탄 같은 가계부채 역시 장기 불황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1990년대 초 버블 경제가 붕괴되면서 ‘잃어버린 20년’을 맞은 과거 일본과 상당히 유사한 모습들이다.
타마키의 ‘한국경제, 돈의 배반이 시작된다’는 바로 이 같은 우려에서부터 출발한다. 30여년 동안 경제전문기자로 일해온 저자가 오랜 서울 거주 경험을 바탕으로 현 한국 경제의 상황을 과거 일본 경제와 비교하며 분석한다.
저자가 첫 장에서부터 경고하는 것은 부동산 문제다. 그가 보기에 한국은 여전히 부동산 시장을 ‘자산 형성 수단’이라고 보는 정서가 지배적이다. 파는 사람은 가격이 ‘오를 것’이란 기대로 사는 사람은 ‘내릴 것’이란 기대로 매매가 성립되지 않고 가격은 비정상적으로 높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또 전세값이 매매값에 육박하는 현상이나 상점에 존재하는 권리금 제도, 1200조원을 넘어선 가계 부채 문제 등을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서 생겨난 비정상적 현상으로 본다.
물론 서울에 극심한 집중도 등 한국만의 부동산 구조가 일본과 큰 차이가 있다는 점도 인정한다. 하지만 그는 비정상적인 상황들이 ‘정상화’ 과정을 거칠 때엔 1990년대 초반 거품 가격이 붕괴됐던 일본처럼 극심한 경제 타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일본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는 한국에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단언할 수 없다. 버블 경제의 붕괴로 인해 일본경제와 나를 포함한 일본의 평범한 샐러리맨들은 커다란 타격을 입었다. 한국은 일본의 교훈을 참고해서 같은 길을 걷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32쪽)
부동산 문제 외에 고령화로 인한 인구 구조의 변화도 중요한 문제로 거론한다. ‘58년 개띠’로 대표되는 세대의 은퇴가 본격화되면 전체적으로 소비 지출이 크게 줄고 연금 수요는 많아져 사회 경제적 측면에서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 근거로 ‘단카이 세대’(1947~1949년 사이에 태어난 일본의 베이비붐 세대)를 든다. 1970년대 후반부터 일본 경제 구조를 크게 좌우했던 이들은 한창 일할 나이에 ‘노후에 얼마나 필요할까?’라는 걱정으로 소비보다는 저축에 집중했다. 이러한 현상은 경제 전체의 소비 위축으로 이어졌다. 또 이들이 60세에 접어든 2007~2009년에 ‘대량 은퇴’를 하면서 국가의 연금 기금 재정 압박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이후 일본은 63세까지 정년을 늘리는 고용제도와 사회적 안전망으로 충실한 연금제도로 고령화 문제를 이겨내 왔다. 저자는 한국 역시 이러한 대비가 마련돼야 된다고 강조한다.
한국 경제의 ‘디플레이션’ 가능성도 중요한 문제로 지적한다. 저자가 보기엔 최근 비싸기만 했던 식사비나 커피값의 하락 현상을 기점으로 한국 경제도 디플레이션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부나 국민들은 오랫동안 지속된 인플레이션 탓에 물가가 떨어질 것이란 체감을 못하고 있다.
저자는 이 같은 모습이 과거 일본과 많이 닮아있다고 설명한다. 1980년대 식품, 의류, 부동산 등 대부분의 품목에서 세계 최고의 물가 수준을 유지했던 일본 경제는 버블의 붕괴로 물가가 조정되기 시작했다. 당시 일본 정부나 국민 역시 심각성을 알지 못했고 그 결과 현재까지 ‘저물가’ 기조는 계속되고 있다.
저자는 “잃어버린 20년 동안 물가가 하락하면서 기업의 실적이 악화되고 자연스레 소비와 생산 활동이 위축되는 ‘디플레이션의 스파이럴 현상’을 겪게 됐다”며 “이것이 일본 경제의 장기 불황 원인이었으며 한국 역시 이러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앞으로의 경제 정책을 짜야한다”고 말한다.
이외에도 책 곳곳에는 대학을 졸업해도 일자리가 없어 아르바이트나 비정규직을 전전하는 젊은 세대들이나 노후 빈곤에 시달리는 노인들, 경제 양극화 등 우리 나라의 현재의 상황과 유사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마지막 장에서는 ‘잃어버린 20년’ 속에서도 살아남은 일본 기업들의 처절한 생존 분투기가 그려진다. 불황으로 인한 내수 침체에도 글로벌 판매를 늘려온 도요타 자동차나 고령화 사회에 대응해 고객 방문 서비스를 펼치는 세븐일레븐 등의 위기 극복 노하우가 상세히 소개된다.
이러한 사례를 통해 저자는 “혼란과 불확실한 상황에서 한국 기업들 역시 고용 문제나 경쟁력을 스스로 돌이켜보고 생존할 수 있는 힌트를 얻기 바란다”는 소망을 전한다.
'한국경제, 돈의 배반이 시작된다'. 사진/스몰빅인사이트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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