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도 핸드폰도 구입을 하기 위해서는 제품의 모양과 성능, 품질을 꼼꼼하게 살펴본 뒤 거래한다. 주택은 이보다 훨씬 비싼 수억원의 돈을 지불하고 구입하지만, 화려하게 꾸며진 모델하우스만 잠깐 둘러보는 게 전부다.”
정동영 국민의당 국회의원이 5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이제, 아파트도 물건을 보고 고를 때'라는 주제의 세미나에서 사회를 보고 있다. 사진/김영택 기자
최근 부동산 '후분양제'가 핫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과 전국건설노동조합이 주관하고, 불평등사회·경제 조사연구 포럼이 주최하는 ‘이제, 아파트도 물건을 보고 고를 때’라는 주제로 후분양제에 대한 토론회가 개최됐다.
이 자리에는 정동영 국민의당 국회의원과 서순탁 경실련 서민주거안정운동본부장, 이강훈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부본부장, 이정훈 전국건설노동조합 정책실장 등 시민단체 관계자 30여명이 참석했다.
이날 토론회는 ▲건설사의 선분양제에 대한 개념과 문제점 ▲후분양제 도입 필요성과 활성화 방안 ▲정책적 개선 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토론이 진행됐다. 건설사의 선분양제는 아파트가 완공되기 전 미리 구입하고, 비용 및 이자를 건설사에 납부하는 구조다. 70년대 우리나라 주택이 부족할 때 정부가 분양가격을 규제하고, 소비자 돈을 건설비용으로 활용했던 제도다.
이렇다 보니 ▲토지와 건설비용 조달 특혜 ▲건설사의 일방적 고분양가 정책 ▲아파트 과장·허위 광고 ▲입주전 분양권 불법거래 ▲부실시공 및 하자분쟁 등 선분양제에 대한 많은 문제점이 곳곳에서 드러났다. 특히 선분양제는 분양권 전매시장을 형성해 부동산 투기를 부추기는 진원지였다. 분양권 매매차익을 노리는 투기세력이 아파트 가격 거품을 조장하고, 실수요자들이 그 피해를 모두 떠안게 된다.
경실련에 따르면 박근혜 정권에서 총 114만건, 약 20조원 규모의 투기 세력이 부동산 시장에 진입했다. 지난 4일 국토부는 다운·업 계약서 등 부동산거래신고법 위반행위가 매년 치솟고 있다고 발표했다.
실제로 지난 2012년 위반행위는 총 2606건, 2013년 2812건, 2014년 3346건, 2015년 3114건, 2016년 3884건으로 폭발적으로 치솟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2015년과 비교해 24.7%로 대폭 증가했다. 이마저도 부동산 열기가 뜨거운 일부 지역을 대상으로 적발된 수치만 나열한 것이다. 빙산의 일각인 셈이다.
물론 선분양제가 일방적으로 잘못됐다고 비난하기는 곤란하다. 선분양제는 주택공급 확대에 큰 역할을 했고, 자금 여력이 부족한 중소 건설사가 성장하는데 도움을 줬다. 그럼에도 최근 후분양제에 대한 요구가 거센 건 지난 50여년간 선분양제가 안고 있는 불합리함 훨씬 크다는 점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은 상황에서 건설사와 투기꾼을 위한 선분양제가 굳이 유지돼야 하느냐는 사회적 비판이 거세다.
정치권에서도 후분양제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하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난해 12월 30일 정동영 국민의당 국회의원 대표발의로 “주택의 건설공정이 전체공정의 80%에 도달한 이후 입주자를 모집하는 후분양제 도입”을 골자로 주택법 일부재정법률안을 국회 발의했다.
정동영 의원은 “지난 2004년 노무현 정부 당시 국무회의에서 후분양을 확정했다”면서 “제대로 실행되지 않았고, 결국 이명박 정부에서 폐기 됐다”고 말했다. 이어 “많은 국회의원이 법안에 서명하고 토론해 나가고 있지만, 시행령이 문제가 되어 왔다”면서 “차기 정부에서는 철학을 가지고 민생 개혁을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서순탁 경실련 본부장은 “후분양제라고 해서 가격 부담이 더 커지는 건 아니다”면서 “주택가격은 주변 시세에 의해 결정되는 경향이고 오히려 후분양으로 실수요자 위주의 가격 안정을 이룰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고분양가는 선분양제가 낳은 구조적인 문제로 건설사가 먼저 분양가를 책정하기 때문에 위험부담과 미래 개발이득까지 고려해 분양가를 책정해 부풀려 질 수 밖에 없다”면서 “선분양제로 인해 주거비 부담은 크게 올라 폐해가 심각한 실정”이라고 강조했다.
이강훈 참여연대 부본부장 역시 “아파트 분쟁의 대부분은 입주 전후의 차이 때문에 발생한다”면서 “하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후분양제가 필요하며, 입지 조건 등 과장 광고 문제도 해결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실수요자가 아닌 주택을 구매해 다른 사람에게 바로 되파는 사람들은 거품만 생성시킨다”면서 “후분양제로 인해 주택가격이 급락 또는 급등 한다기보다는 그 시기 시장가격에 맞게 되는 정상적인 변화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영택 기자 ykim98@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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