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권준상 기자] 박근혜 정부 들어 금융권에 거세게 불었던 '여풍(女風)'이 잦아들었다. 금융권 여풍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당선됐다가 탄핵이라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 박 전 대통령의 운명과 동조화 하고 있었다. 지난 2013년 최초 여성행장의 탄생을 시작으로 금융권 '유리 천장'에 금이 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정부의 코드 맞추기 인사였다는 씁쓸한 뒷맛을 남기고 있다.
6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2013년 초 박근혜 정부의 출범과 함께 급증했던 은행업권과 증권업권의 여성 임원 수는 4년여가 지난 현재 과거 수준으로 되돌아간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신한·국민·KEB하나·우리은행 등 4대 시중은행의 지난해 사업보고서상 등기·미등기 임원 97명 가운데 여성임원은 2명이다. 사외이사를 제외하면 4대 은행 가운데 부행장은 국민은행 1명 뿐이다.
은행권에서는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이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있다. 박 전 대통령이 취임한 첫 해에는 주요 은행에서 부행장급 여성 임원이 1명이었으나, 그 해 사상 첫 여성 행장(권선주 전
기업은행(024110)장)이 등장한 뒤 이듬해에는 3배 이상 급증했다.
그나마 당시에 선임된 여성 임원들이 최소 2년의 임기를 보장받으면서 여성 임원수가 유지됐지만, 정권 중반을 지나면서 여성 임원이 새로 선임되는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더니 다시 예전 수준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여성 대통령 시대에 맞춰 여성 임원을 늘렸으나 이들이 임기가 끝나면서 그 자리를 채울 만한 경력을 갖춘 다른 여성 임원을 찾기가 어려웠다"며 "지금 젊은 세대와 달리 육아휴직 등을 자유롭게 쓰지 못하던 시절 많은 여성들이 회사를 그만둬 여성 임원 후보수 자체가 적다"고 설명했다.
은행별로 살펴보면
우리은행(000030)은 정수경 상임감사위원가 지난달 퇴임하면서 여성 임원 수가 0명이 됐다. 국민은행에서는 박정림 부행장이 작년 말
KB금융(105560) 부사장에 신규 선임되면서 지주, 은행, 증권의 WM부문을 총괄 겸직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2015년 신순철 부행장이 퇴임한 이후 여성임원이 2년째 전무하다.
증권업계에서도 현 정부의 운명에 따라 여성 임원수가 줄고 있었다. 자기자본규모 상위 10개 증권사의 여성임원 규모는 2013년 8명에서 2014년 10명으로 소폭 늘어났다가 2015년 9명, 2016년 8명으로 재차 감소 추세다.
KB증권과 삼성증권이 각각 2명, 미래에셋대우와 대신증권, 키움증권, 메리츠종금증권이 각각 1명씩 분포돼 있었다. KB증권은 박정림 부사장(WM부문장)과 홍은주 사외이사, 삼성증권은 이재경 상무(SNI사업부장)와 박경희 상무(삼성타운금융센터장)이 임원으로 등재돼 있다.
미래에셋대우는 남미옥 상무보(강서지역본부장), 키움증권은 전옥희 이사대우(주식운용팀 담당), 메리츠종금증권은 이명희 상무(리테일-강남금융센터)가 등재돼 있다.
현재 이들 10개 증권사 임원 총 407명 중 여성임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1.97%에 그친다. 이 중 대신증권은 오너인 이어룡 회장이라 실질적인 여성임원은 7명이라 할 수 있다. 또 박정림 부사장은 국민은행 부행장을 겸임하고 있어 제외하면 비중은 이보다 더 낮아진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은 "증권업 역시 여성임원 비율은 지나치게 낮은 수준인데, 이러한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본다"며 "증권업은 루틴화된 작업들이 많은 은행 등 기타 금융산업에 비해 훨씬 더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리스크테이킹(Risk taking·위험감수)이 강조되다보니 남성들의 퍼포먼스가 더 부각될 수 있는 환경"이라고 말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이종용·권준상 기자 y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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