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얼개가 나왔다. 지난달 25일 발표된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을 보면 정부는 앞으로 문 대통령 임기 5년동안 '사람 중심 지속성장 경제'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최근 한국경제가 직면해 있는 양극화의 질곡과 저성장의 늪에서 탈출하기 위해 '소득'과 '일자리'를 중심에 둔다는 방침이다.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끌어올리는 것을 비롯해 월 10만원의 아동수당 신설과 노인 기초연금 인상 등이 그런 예들이다.
사실 지금까지 정부의 경제정책들은 주로 수출과 대기업 중심의 ‘투자’가 핵심적인 자리를 차지해 왔다. 대기업이 투자와 수출을 통해 성장을 이끌다보면 그 과실이 중소기업과 일반 시민에게 흘러들어간다는 논리였다. 이에 따라 경제정책은 대체로 기업활동의 장애를 제거하는 것으로 채워졌다. 대기업의 탈법경영이나 가맹본부 회사의 가맹점에 대한 갑질횡포를 사실상 방치됐다.
그 결과 대기업의 곳간은 쌓여도 가계의 실질소득은 계속 줄어들었다. 이로 말미암아 내수가 침체되면서 경제의 발목을 잡아왔다. 실제로 우리 경제는 여전히 저성장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다. 올 들어 1분기에는 전기 대비 성장률이 1.1%로 비교적 양호했지만, 2분기에는 다시 0.6%로 낮아졌다. 광공업 생산도 3개월째 뒷걸음질했다. 수출은 비교적 활발하지만 반도체 등 일부 업종에 집중돼 있다. 전반적인 체감경기는 여전히 침체돼 있다는 것이 여러 기관의 조사결과 드러났다. 따라서 우리 경제가 새로운 도약을 꿈꾸기 위해서는 이같은 한계를 돌파해야만 한다.
문재인 정부의 정채 방향에는 이런 문제의식이 반영돼 있는 것 같아 일단 다행스럽다.
소비의 흐름도 개선되는 듯하다. 6월 소매판매는 1.1% 늘어 지난 2월(3.2%) 이후 4개월 만에 가장 큰 폭의 증가세를 나타냈다. 내수가 차츰 되살아나고 우리 경제에 숨통이 트일 것이라는 기대를 낳는다. 그렇지만 아직은 미약하다. 따라서 이런 불씨를 살려나가는 것이 당면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문재인정부가 출범하자마자 11조원 규모의 추경예산안을 내놓고 국회통과를 위해 공을 들인 것도 바로 이런 불씨를 살려보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대형 사회간접자본을 비롯해 덩치 큰 사업을 벌이는 대신 기존 시설을 활용하고 내실을 기하는데 집중돼 있다. 이를테면 민생서비스 향상에 필요한 소방관, 교사, 집배원 등을 대폭 늘린다는 계획이다. 주로 대규모 사회간접자본 투자 등에 재정의 우선순위를 두었던 과거와 사뭇 다르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0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도 “앞으로는 사람의 가치와 국민의 삶에 영향을 주는 정책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기조가 유지된다면 앞으로 정부지출 가운데 사회간접자본 등에 대한 투자는 줄어들고 민생서비스 부문의 비중이 커질 것이다. 말하자면 하드웨어식 접근법을 벗어나 소프트웨어식 접근법으로 바뀌는 것이다. 상당히 획기적인 변화이다. 경제정책과 경제운용에 있어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문재인 정부는 이런 방향대로 경제정책을 추진하면 올해 3년만에 3%의 경제성장을 회복하고 향후 5년동안 3%대 성장을 이어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전망대로 될지는 지금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이제 대형시설의 신규건설보다는 유지보수와 활용이 더 중요한 때가 됐다는 것은 보다 분명해졌다. 이를테면 도로와 철도, 학교나 병원 운동장 등을 아무리 근사하게 지어도 이를 유익하게 활용할 사람이나 프로그램이 없다면 아무 쓸모도 없다. 바로 이런 인력과 프로그램이 새로운 경제동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경제를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전환시키는 데는 재정의 역할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향후 5년동안 178조원이 소요된다고 한다. 이 때문에 세금이 늘어나고, 조세저항이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를 막으려면 시급하지 않은 인프라투자는 자제하고 담뱃세를 비롯한 간접세 부담을 줄여주는 것이 요구된다.
그런데 조세저항도 정부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된 측면이 작지 않다. 늘어난 세금이 효율적으로 사용되고 국민의 삶이 개선된다는 것이 확실하다면 저항이 크지 않을 수도 있다. 결국 앞으로 문재인 정부 하기에 달려 있다. 세금이 보다 투명하고 유익하게 사용된다는 믿음을 국민에게 심어주는 것이 우선 중요하다.
차기태(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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