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윤 칼럼니스트
“현 정부 6개월 동안 쌓은 자료가 많겠느냐, 이명박정부 5년 동안 축적한 자료가 많겠느냐. 지금 하고 있는 적폐청산은 정치보복이다. 이런 일이 계속된다면 우리가 가진 자료를 다 깔 수도 있다.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최근 이명박 전 대통령 최측근 입에서 나온 얘기다. 당사자인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12일 바레인 출국 직전 이런 말도 했다. “나라를 일구는 데는 오래 걸리지만, 망가뜨리는 것은 아주 순식간”이라고.
팩트만 따져보자. 국정원의 특수공작활동비가 매달 정기적으로 최소 1억원씩 청와대로 상납됐다. 대통령 기밀비가 엄연히 책정돼있는데도 왜 국정원 돈을 올려보내라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직접 지시했을까. “청와대에도 특활비 약 250억여원이 있지만 용처와 세목이 비교적 세세하게 정해져있기 때문에 아마 뭔가 ‘별도의 목적’으로 쓰기에는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다”. 역대 정권 청와대 근무자들의 한결같은 이야기다.
특활비 상납은 그간 정보기관의 불법적 정치개입 등 잘못된 일을 바로잡는 과정에서 툭 불거져나온 사안이다. 명백히 나라 법을 어긴 일이다. 그리고 3명의 전직 국정원장들은 한결같이 박 전 대통령의 지시로 갖다 바쳤다고 말했다.
정치 댓글문제도 그러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했고, 대통령 지시를 받았다”고 복수의 전직 국방장관이 진술했다. 그 진술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지시자라고 지목된 사람 불러다가 조사하는 건 너무 당연하다. 수사의 ABC를 지키는 게 어떻게 정치보복인가. 명백한 범죄행위 혐의점을 발견하고도 그가 전직 대통령이기 때문에 덮어야 한다는 말인가. 덮으면 정치보복이 아니고, 수사의 ABC를 지키면 정치보복인가.
“6개월 동안 수집한 자료와 5년 동안 치부책 적듯 차곡차곡 적어놓은 것 중 어느 쪽이 더 많겠느냐”고? 말씀 한 번 잘 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다 공개하자. 5년 동안 그 자료들을 누가, 어떤 방법으로, 왜 수집했는지, 수집된 자료는 사실인지, 탈/불법은 없는지 다 조사하자. 축적돼있다는 정보가 과연 비리나 불법/탈법인지, 아니면 퇴임 후 보신용(또는 엄호용)으로 만들어 놓은 가공이거나 과장은 아닌지도 하나하나 따져봐야 할 일이다. 그리고 그런 자료를 아직도 사적으로 보관하고 있다면 그 역시 문제가 아닌지도 따져보자. 혹시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은 아닌가 살펴보자는 말이다. 축적한 자료가 사찰 등이 아닌 정당한 방법으로 취득된 것인지도 물론 들여다 봐야 한다.
“누가 수집한 비리가 더 많겠느냐”는 말은 보태고 뺄 것도 없이 대국민 협박이다. 현 정부가 취임하자마자 조각에 북핵에, FTA재협상 등등 눈코 뜰 새 없었는데 전 정권 비리를 체계적으로 수집할 틈이 과연 있었는지도 궁금하지만, 만약에 취득한 게 있다면, 그 역시도 함께 고스란히 공개하자. 제발 앞으로는 더 이상 이런 얘기들이 나오지 않도록 차제에 완전히 다 털고 가자. 현 정부 6개월 간 수집한 자료가 있다면 그 경위 역시 밝히자. 그러나 “현 정부 6개월 간 정보를 수집했다”는 말이 사실이 아니라면, 이 대국민 협박과 무고 행위는 전 정권의 비리와 무관하게 별건의 범죄가 아닌가 싶다. 주요 피의자의 진술 중 사실 확인이 필요한 부분을 따지려는 것을 정치보복이라고 한다면, 사법기관을 아예 작동시키지 말라는 얘기가 아닌가.
지금 얘기되고 있는 적폐를 거슬러 올라가면 어디에 닿겠는가. 반민족 친일행위를 제대로 청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과 5년 전, 9년 전 비리조차도 덮고 가자고 하면 이 나라는 도대체 언제나 적폐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 국가와 민족공동체를 적폐라는 비뚤어진 주춧돌 위해 계속 쌓아가자는 말인가. 되풀이되는 이 지겨운 논란, 이제는 정말 끝을 내자. “언제까지 과거 문제로 국력을 낭비할 거냐”고? 촛불시민들이 하고 싶은 얘기다.
“약을 먹다가 끊으면 내성만 키워 시작하지 않은 것만 못하듯이 국가의 적폐도 마찬가지다. 완전히 뿌리뽑을 때까지 최선을 다하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2014년 7월 18일, 신임 장-차관들에게 임명장을 주며 한 말이다. 더도 덜도 말고 이 말대로만 하자. 억울하게 핍박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이 ‘아름다운 말씀’대로만 하자.
이강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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