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 촛불 물결을 이룬 국민 염원은 최초의 대통령 탄핵과 함께 정권교체를 이루는 초석이 됐다. 발화점은 정경유착이었다. 정권이 전경련 창구를 통해 재벌들로부터 돈을 걷고, 재벌은 이 과정에서 이해를 추구했다. 적폐가 고스란히 그 실태를 드러내면서 좌초됐던 재벌개혁이 재등장했다. 필연이었다. 새정부도 장하성·김상조 투 톱을 기용하며 경제민주화에 대한 의지를 분명히 했다. 탄핵 후폭풍에 보수층은 급격히 와해됐고, 재벌들도 숨을 죽여야 했다. 여기에다 높은 국정운영 지지도까지 더해지면서 경제민주화를 추진하는 정부 정책에 힘이 붙었다.
방향성은 대선 공약을 통해 이미 예고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재벌 불법 경영승계·황제경영·부당특혜 근절 ▲공정거래 강화 ▲불공정 갑질 근절 ▲중소기업·소상공인·자영업자 보호 ▲하도급 근로자 임금체불 해결 ▲고장난 소비자피해 구제 작동 ▲자본시장 교란행위 처벌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 강화 ▲조세정의 실현 등을 공약했다.
개별 공약의 이행 실적을 보면, 일감몰아주기를 통한 총수일가의 사익 편취가 가장 먼저 타깃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를 중심으로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 확대를 비롯해 과세·처벌 기준 상향 등이 이뤄졌다.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과 불공정 거래행위에 대한 과징금 상향 등 갑질 근절을 위한 관련 입법에도 힘이 실렸다. 정부는 또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통해 올해 금산분리 원칙 준수 및 지주회사 행위 제한 규제를 예고했다. 이는 모두 경제력 집중 완화에 방점을 찍는다. 소비자보호 정책도 심도 있는 접근이 이뤄졌다는 평가다. 소비자기본법이 일부 개정돼 소비자중심경영인증제도의 법적 근거가 마련됐고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의 인력 확충 등 제도 정비도 마쳤다.
특히 공정위 역할이 크게 강화되면서 경제검찰로서의 위상이 복원됐다. ‘재벌 저격수’로 불렸던 김상조 위원장이 지휘봉을 잡아 개혁의 선봉에 섰다. 공정거래법 위반 행위에 대한 처벌 강화 조치가 이뤄졌고, 재벌 전담 부서인 기업집단국도 12년 만에 부활했다. 기업집단국은 조직 구성을 마친 뒤 곧바로 대기업집단 내 공익법인 운영실태 및 지주회사의 수익구조 전수조사에 착수했다. 재벌의 최대 취약점인 지배구조로까지 방향을 넓히면서 기업들도 크게 동요했다.
하도급 근로자 임금체불 문제는 전국 광역지자체와 공공기관의 하도급 대금 직불제 추진 등 공적 분야에서부터 선행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한국형 협력이익배분제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등 중소기업 보호 공약에서도 정부의 실행 의지가 확인된다. 자본시장 교란행위에 대해서는 기업회계규율 정비 및 지정감사제 확대 관련 외감법 개정안이 지난해 9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 입법 성과를 냈다. 국민연금의 주주권 강화는 올해 이행된다. 국민연금은 올 하반기쯤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할 계획이다. 국민연금을 필두로 기관투자자의 참여가 늘어나 '거수기 주총'은 더 이상 설 자리를 잃게 됐다.
조세정의는 9년 만에 부자감세를 복원하는 것으로 실현됐다. 정부여당은 초대기업에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해 복지 재정을 확충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이명박정부가 2009년 법인세 최고세율을 25%에서 22%로 낮췄던 것을 과세표준(순이익 기준) 3000억원 이상 초대기업에 한해 25%로 되돌렸다.
정부가 예열을 마치면서, 새해에는 경제민주화 바람이 한층 거세질 전망이다. 지방선거와 개헌이 경제민주화의 새로운 동력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다만, 일부에서는 속도조절 등의 얘기도 나오고 있다. 위평량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은 “여소야대의 정치 지형과 정쟁으로 국회 문턱은 여전히 높았지만, 행정조치로 가능한 부분은 상당한 진척이 있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정부가 경제구조 개선을 위해 경제민주화를 지속 추진하는 점에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다”며 “도중에 정책을 폐기했던 지난 정부와는 비교불가”라고 덧붙였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