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레디메이드 청년은 현재진행형
2018-01-10 06:00:00 2018-01-10 06:00:00
"거 참, 큰 일들 났어. 저렇게 좋은 청년들이 일자리가 없어서 저렇게 애를 쓰니." 80여년 전에 쓰여진 채만식 소설 '레디메이드 인생'에서 일자리를 찾는 주인공에게 출판사 사장은 이렇게 말한다. 주인공은 사실 소위 말하는 엘리트이지만 일자리를 구하기 쉽지 않다. 고등교육까지 모두 마쳤어도 수요에 비해 공급이 워낙 많은 터라 번번이 실패한 것이다. 기성품으로 팔리기만을 바라는 1930년대의 레디메이드(기성품) 인생이다.
 
2007년 나온 김영하 소설 '퀴즈쇼'의 주인공도 울부짖는다. "우리는 단군 이래 가장 많이 공부하고, 제일 똑똑하고, 외국어에도 능통하고, 첨단 전자제품도 레고 블록 다루듯이 만지고… 타이핑도 분당 삼백타는 우습고 평균신장도 크지. 악기 하나쯤은 다룰 줄 알고…. 그런데 왜 지금 우리는 다 놀고 있는 거야? 왜 모두 실업자인 거야?"
 
2018년 현재, 여기에 또 에코붐 세대(1968~1974년에 태어난 2차 베이비붐 세대의 1991~1996년생 자녀들)로 가득한 레디메이드 청년들이 있다. 특히 올해 이들이 노동시장에 본격 진출하면서 구직 경쟁은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올해에만 에코붐 세대가 작년보다 11만 명이나 늘어나면서 괜찮은 일자리가 부족한 '공급과잉' 현상이 청년실업을 더 부채질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 때문에 일찌감치 '일자리 정부'를 내걸고 고용 문제에 힘쓰고 있지만 문재인정부의 일자리 전망도 밝지 않다. 정부는 올해 취업자 증가 수를 작년과 같은 32만명으로 예상했다. 작년 일자리 추경 등 예산을 더 투입했는데도 효과가 없었다는 이야기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전망은 더 비관적이다. 올해 평균 취업자 수가 29만명대로 작년보다 8.6% 줄어들어 30만명대를 밑돌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정부의 올해 일자리 대책은 다른 어떤 때보다 비장하다. 올 1분기에 역대 최고 수준인 일자리 예산을 투입하고, 공무원·공공기관 신규채용도 크게 늘린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또 그간 발표했던 중소기업 추가고용(2+1) 장려금, 청년내일채움공제, 취업성공 패키지 등의 문턱을 낮춰 더 많은 청년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신경 썼다.
 
문제는 이런 정책들이 얼마나 효과를 볼 지는 미지수라는 데 있다. 과거 정부부터 간판만 바꿔 걸고 청년 일자리 대책을 끊임없이 발표했지만 취업난은 더 악화됐다. 청년 실업률이 높은 배경으로 지적되고 있는 '일자리의 미스매치'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청년에게 있어 취업은 평생직업의 선택이 된다. 미래를 생각하면 영세 사업장보다는 대기업에서 보다 큰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다. 중소기업에 들어가는 대신 장기간 대기하더라도 대기업에 취직하는게 일생 전체를 볼 때 소득이 더 크다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청년기에 좋은 직장을 구하지 못하면 평생 고생할 것이라는 강박관념이 클 수 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정부는 '높은 스펙'을 갖고 있는 구직자가 '좋은 일자리'라고 생각하는 회사를 매칭시켜 주는 정책이 필요하다. 중소기업에 2년 일했다고 몇백만원의 적립금을 직접 제공하는 예산 투입 보다는 지속적으로 일할 수 있는 질 좋은 고용시장 구축을 선제적으로 마련해야 레디메이드 인생의 현재진행형이 끝날 수 있다.

 
김하늬 정경부 기자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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