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번 버스가 아이만 내려주고 엄마를 태운 채 떠났다는 내용의 민원글과 기사가 처음 퍼진 지난 12일 오전 11시쯤, 네티즌 A씨는 기사 내용에 동조하며 댓글로 버스기사를 무차별적으로 공격한다. ‘미친 기사X’, ‘자기 애라면 저러겠냐’ 등의 과격한 표현을 사용하는 A씨의 모습은 우리가 보던 악플러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날 오후부터 상황은 반전돼, 4살짜리 아이를 남겨둔 채 버스가 떠났으며 버스기사는 내려달라는 아이엄마에게 욕설을 했다는 최초 민원글은 하나 둘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자 A씨는 같은 날 오후 5시쯤 남긴 기사 댓글에 ‘경찰은 글쓴이를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버스기사만 명예훼손을 당했다’라며 갑자기 버스기사를 두둔했다.
심지어 상황이 어느 정도 일단락되자 A씨는 사흘 후인 15일에는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빙의해 이번 사태를 분석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15일 오전 9시쯤 단 기사 댓글에 A씨는 ‘오지랖 그만하고 인터넷에 글 올릴 때 생각하고 써라’, ‘사과도 안 하고 미친 X들이 왜 이렇게 많아’ 등을 남겼다.
이는 비단 A씨만의 일이 아니다. 최초 서울시버스운송사업조합 홈페이지에 민원글을 남긴 네티즌은 자신이 지난 11일 당시 240번 버스에 탔던 동승객이라고 주장했다. 버스기사에 대한 비난이 확산하는 과정에 온라인에서 자신도 동승객이며 이같은 상황을 목격했다는 네티즌들이 줄을 이었다. 시내버스는 퇴근길에다 입석까지 고려해도 기껏해야 50~60명 정도만 탈 수 있는데 반해 동승객이라 주장하는 네티즌은 100명을 훌쩍 넘겼다.
그렇게 등장한 100명의 동승객 거의 대부분은 결국 ‘가짜 동승객’으로 밝혀졌고, 지금은 최초 민원글 게시자, 아이 엄마, 버스기사만 남긴 채 모두 사라졌다. 어느새 온라인 여론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이성을 되찾았고, 버스기사만 상처받은 채 남아있다. 그러나 이들 100명, 아니 그 이상의 동승객은 언제고 어느 사건에 나타날지 모를 노릇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러한 광기어린 마녀사냥에 시달려야 할까. 허위사실을 아무렇지도 않게 만들고 이를 여과없이 받아들여 퍼나르고 익명성 뒤에 숨어 공격성을 내뿜는 군중심리를 문제삼지 않을 수 없다. 심지어 인터넷(Internet)과 메카시즘(McCarthyism)의 합성어인 네카시즘(Netcarthism)이란 말까지 만들어질 정도다. 1950년대 미국에서 행해지던 공산주의자 사냥이 형태만 달리한 채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꼴이다.
2012년 채선당 사건은 지금도 네카시즘의 주요 사례로 등장하고 있다. 임산부가 종업원에게 배를 걷어 차이고 욕설을 들었다는 글을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렸고, 당시에도 목격자까지 다수 등장했다. 하지만, 경찰 수사결과 오히려 임산부가 종업원의 배를 찼고 욕설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럼에도 일방적인 비난 여론 속에 불매운동까지 빚어지며 해당 매장은 결국 문을 닫아야만 했다.
그리고 5년 후 그 때의 목격자는 또다시 버스의 동승객이 돼 돌아왔다. 허위사실 유포에 대한 처벌 강화도, 온라인 문화 개선도 중요하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온라인 속 우리와 싸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네카시즘이 계속되는 한 누구도 가해자, 혹은 피해자가 될 수 있다. 240번 버스에 가상으로 탄 100명의 동승객까지도.
박용준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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