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통영=뉴스토마토 신상윤 기자] 목요일인 지난 8일 오후 둘러본 경남 통영의 성동조선해양 조선소. 설 연휴가 일주일여 앞으로 다가왔지만 조선소 안에서는 명절 분위기를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성동조선을 상징하는 노란색이 칠해진 대형 크레인 3대가 멈춰선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조선소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용접 소리나 망치질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적막만이 감돌았다. 전체 3개 야드 면적이 188만6801㎡ 규모의 조선소를 한 시간가량 돌아보는 동안 마주친 근로자는 손에 꼽을 정도다. 곳곳에 내걸린 '성동조선은 반드시 살려야 합니다!'는 노조의 현수막들이 절절함을 더했다.
성동조선은 지난해 11월 마지막으로 건조한 선박을 선주에게 인도한 후 작업을 사실상 중단했다. 지난해 5월 수주한 그리스 선주의 중형 유조선 5척은 선수금 환급보증(RG)까지 발급받았지만, 정부가 중견 조선소 구조조정 정책 결정을 위한 2차 실사를 진행하자 선주가 건조 일정 연기를 요청했다.
일감이 끊긴 속에서 성동조선은 안간힘이다. 배운용 성동조선해양 차장은 "야드 내 작업 환경 개선을 위해 보수작업을 실시하고 있다"며 "야드 슬림화와 지속적인 고정비 절감 노력 등 중대형 선박을 중심으로 다른 조선사와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날 오전에 찾은 경남 창원시 STX조선해양 조선소 역시 도크(선박건조대)가 모두 비어 있었다. 조선소 중앙에 자리 잡은 붉은색 크레인도 멈춰 서 있었다. 조선소 한켠에서는 선박 건조에 필요한 철판을 자르고 붙이는 선행 공정을 진행하며 막바지 일감을 짜내고 있었다. 지난해 4월 국내 선사 삼봉해운과 우림해운 등에서 수주한 1만1000톤급 석유제품 운반선(PC선)에 들어갈 철판들이다. 안벽에는 건조를 마치고 이달 중순쯤 그리스 선주에 인도될 7만4000톤급 PC선이 세워져 있었다. STX조선은 이 선박을 끝으로 오는 9월까지 도크와 안벽을 빈 상태로 둔다.
STX조선은 지난 2일 그리스 선주 판테온에서 PC선 옵션분 2척을 추가로 수주했다. 남은 일감은 모두 18척이다. 하지만 지난 2015년 말부터 작년 4월까지 수주를 단 한건도 하지 못해 일감이 충분하지 않다. 공두평 STX조선해양 부장은 "그리스 선사와의 추가 옵션 계약 2척에 대한 수주 가능성도 있다. 당분간은 도크가 비어 있을 예정이지만 최근 발주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되는 천연가스운반선에 대한 기술경쟁력도 갖고 있다"고 희망을 놓지 않았다.
인근 지역경제는 불황의 직격탄을 맞았다. 설날이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들뜨기는 커녕 침울하기만 하다. 크게 술렁이는 분위기도 느껴졌다. 정부와 국책은행이 성동조선과 STX조선에 원가경쟁력 강화를 요구하면서 강도높은 인력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어서다.
인근 식당들에는 손님이 끊겼다. 식당 주인 한모(59·여)씨는 "35년째 이 자리에서 음식 장사를 하는데 조선소 작업복을 입고 오는 손님은 손에 셀 정도로 줄었다"며 "예전엔 명절을 앞두고 지갑을 두둑이 채운 사람들도 많았는데 올해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토로했다.
행정기관과 식당들이 집중된 통영시 광도면 죽림리 인근에서 만난 대리기사 이모(58·남)씨는 "성동조선해양이 있는 황리까지 대리운전을 요청하는 손님이 거의 없다"며 "요즘은 한달에 한번 가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대리운전을 찾는 사람이 줄면서 요금도 지난해 말 1만2000원에서 1만7000원으로 올렸다고 했다.
지난 2010년 3월 자율협약을 시작한 성동조선은 2289명이었던 직영 인력이 이달 초 기준 1248명으로 절반 가까이(46%) 줄었다. 같은 기간 사내 협력사 인력은 6672명에서 32명으로 거의 대부분(99.6%) 짐을 쌌다. STX조선 역시 2013년 7월말 자율협약 당시 3677명의 직영 인력이 이달 초 1333명으로 대폭 줄었다. 사내협력사 인력은 4428명에서 738명만 남았다.
지역 경기지표도 하향세다. 한국은행 경남본부가 이달 발표한 '2018년 1월 경남지역 기업경기조사 결과'를 보면 경남지역의 제조업 경기전망지수(BSI)는 56포인트를 기록했다. 전국 BSI 77포인트를 밑도는 수준이다. 2014년 2월 이후 48개월째 전국 평균보다 낮다.
주택시장도 꽁꽁 얼어붙었다. 한국은행 경남본부의 '경남지역 주택시장 현황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경남지역의 주택매매가격은 전년 대비 2.2% 하락했다. 전국 평균값이 2.1% 상승한 것과 다른 길을 걷고 있다. 특히 경남 거제는 13.0%, 창원과 통영은 각각 6.3%, 2.8% 내렸다 . 한국은행 경남본부는 조선업 등 고용환경이 악화되면서 가계의 주택 구입 여력이 약화된 것으로 분석했다.
업계는 산업경쟁력 강화에 목적을 둔 구조조정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중형조선업계 관계자는 "중형조선소 구조조정이 기술이나 산업이 아닌 금융논리에 갇혀있다 보니 산업경쟁력 강화는 뒷전으로 밀려났다"며 "강점은 키우고 약점을 보완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며 씁쓸해했다.
창원·통영=신상윤 기자 newma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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