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휘 정경부 기자
기자는 지난해 대선기간 동안 당시 더불어민주당 소속 안희정 대통령후보의 전담취재기자였다. 이른바 ‘마크맨’이다. 뜨거웠던 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기간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선거운동을 하던 안희정 후보를 수 개월 간 따라다니며 밀착 취재했다.
내가 본 정치인 안희정은 한 단어로 ‘민주주의자’로 요약된다. 그는 선거기간 분열이 아닌 통합의 정치를 말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으로 사회갈등이 극심한 시기 ‘대연정’을 화두로 꺼낼만큼 용기가 있었다.
인간 안희정은 인간미가 있었다. 충남지역에서 그는 남녀노소와 정치성향을 떠나 ‘우리 희정이’로 사랑받았다. 주변에 사진·영상기자가 없었지만 축축한 시장바닥에 거리낌 없이 주저앉아 할머니와 채소를 다듬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한 수저로 음식을 나눠먹는 모습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그래서 그를 둘러싼 성폭력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믿기 어려웠다. 민주주의의 기본 중의 기본은 다른 인격체에 대한 존중이다. 알량한 자신의 권력과 지위를 무기로 다른 사람을 강제로 굴복시키고 성폭행한다는 것은 ‘민주주의자’, ‘우리 희정이’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치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다. 그렇지만 선거기간 그렇게 민주주의와 인권, 타인에 대한 존중 등을 목 놓아 부르짖은 그가 자신의 보좌진을 강제로 범하는 모습은 아무리 생각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한 피해자가 자신의 인생을 걸고 용감하게 나섰다. 이 글을 쓰는 기자와도 선거운동 기간 몇 차례 스쳐 지나갔던 사람이었으리라. 추가 피해자가 등장했으며, 선거캠프에서 일한 관계자들이 캠프 내 만연했던 성추행을 한 목소리로 증언했다. 정치인 안희정은 재기하기 어려워 보인다. 자신이 이야기해온 가치를 정면에서 모욕했고, 자신의 가치를 믿고 따르던 사람들을 배신했기 때문이다.
이 글을 마무리하는 시점인 오후 3시에 예정됐던 기자회견 취소 소식이 들려왔다. 그는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검찰에 출석해 수사에 성실하게 협조하는 것이 국민 앞에 속죄 드리는 우선적 의무라는 판단에 따라 기자회견을 취소하기로 했다”고 해명했다.
진심이길 바란다. 기자회견을 통해 정치적 반전을 꾀했다가 추가 증언들이 나오자 부랴부랴 취소했다는 ‘뜬소문’이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 정치인 안희정은 사실상 끝났지만 인간 안희정은 남았기 때문이다.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법정에 섰을때 “저를 무겁게 처벌해 승리자라고 하더라도 법의 정의 앞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게 해달라”고 외쳤던 청년 안희정의 면모가 아직 남아있길 바란다.
이성휘 정경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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