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태현 기자] "이야, 저기는 뭔데 저렇게 줄을 많이 서 있어."
아이를 데리고 지나가던 부부가 '해방촌' 언덕 및 피자펍 앞에 늘어선 수십명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기대를 품고 찾아왔다가 뜻밖의 긴 줄에 크게 놀란 한 외국인도 보였다.
지난 10일 찾은 서울 용산구 용산2가동, 해방촌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이곳은 20~30대 커플과 외국인을 중심으로 유동 인구가 많은 모습이었다. 해방촌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어본 남자친구의 손을 이끌고 온 여성이 있는가 하면, 20대 여대생들은 “해방촌에 뭐가 있을까”라며 탐방을 거듭했다. 베트남 샌드위치 가게 앞에 줄이 늘어서 있고, 각종 펍에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가득찼다.
그동안 인구가 줄면서 활력이 떨어졌던 해방촌에 조금씩 볕이 들고 있다. 광복 이후 해방촌을 처음 일군 실향민은 1960~1970년대 신흥시장으로 대표되는 가내 수공업에 뛰어들어 지역의 활력을 이끌었다. 이후 값싼 중국 물품 수입 등으로 상권이 타격을 입자 2000년대에는 실향민과 젊은 세대까지 계속 떠났다. 그러다가 동쪽에 인접한 이태원 경리단길이 활성화되자, 대략 2013년을 기점으로 활력이 해방촌으로도 옮겨오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해방촌의 사업체는 2013년 511곳에서 2015년 614곳으로 20.15% 늘어 같은 기간 용산구 전체 평균 증가율인 5.53%를 한참 앞섰다. 상승세를 이끈 업종은 주로 먹거리다. 2013년 96곳이었던 '숙박 및 음식점업'은 다음해에 16곳, 2015년엔 25곳 늘었다.
장사가 잘되면 임대료도 오르게 마련이지만 아직은 감내할 수준으로 보인다. 해방촌에 있는 A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는 "대체로 해방촌 동남쪽에 있는 상가들의 임대료는 보증금 2000~3000만원에 월세 150~200만원 선으로 2015년보다 30% 정도 올랐지만 2배 오른 경리단길보다는 낫다"고 말했다.
기존에 있던 외국인 영어 강사에 저임금 노동자까지 더해지면서 외국인들도 늘고 있다. 술 마시러 잠시 들를 뿐 아니라, 비교적 싼 월세를 내고 거주하기도 한다. 백인이 많지만 남아프리카공화국, 나이지리아, 소말리아 등 아프리카 계열도 있다. 주민센터에 등록한 외국인만 2016년 1335명으로 3년 전보다 256명 늘었으며, 미국·일본·중국 등 주요국이 아닌 기타 국적도 54명 증가했다.
유동인구 유입과 외국인 증가는 소음과 쓰레기 문제로 번졌으나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 쓰레기 무단투기 과태료 부과 건수는 2012년 17건에서 2013년 70건으로 폭등했다가 지난해에는 52건으로 소폭 감소했다. 해방촌 서북부에 있는 B 부동산중개업소 공인중개사는 "밤새 외국인들이 일으키는 소음을 피해 이 쪽까지 이사온 사람들이 있었지만, 하도 민원이 많다보니 이제는 잠잠해졌고 쓰레기 문제도 지금은 별로 심각하지 않다"고 말했다.
언덕 위에 사는 노인들은 언덕 아래의 활력이 하루 빨리 위로 올라오기를 바라고 있다. 해방촌에 50년 거주했다는 신모(71)씨는 “외국인이든 청년 유입이든 발전은 좋은데, 내가 다니는 낡은 길부터 고치고 신흥시장이 다시 활기를 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 11일 서울 용산구 해방촌 상권에서 사람들이 나들이를 즐기고 있다. 사진/신태현 기자
신태현 기자 htenglis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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