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현준 기자]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18일 전격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KT에도 비상이 걸렸다.
KT는 이날 오전 권 회장의 사퇴 소식에 긴급 임원회의를 소집했다. 권 회장의 전격 사퇴 배경과 함께 경찰이 향후 황창규 회장을 추가 소환할 가능성에 대한 대비 차원으로 전해졌다. 특히 권 회장의 사퇴 배경에 청와대 등 정부 차원의 직간접적 압박이 있었는지 촉각을 곤두세웠다. 사정당국의 움직임도 긴밀하게 살폈다. 권 회장은 이날 임시이사회에서 이사들의 만류에도 사퇴 의사를 굽히지 않았다. 포스코는 정권 차원의 외압설과 검찰 내사설 등에 대해 전면 부인했으나, 재계는 최근까지 권 회장이 경영 의지를 보여왔다며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황 회장은 불법 정치자금 제공 혐의를 받고 있다. 피의자 신분으로 지난 17일 오전 9시30분경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본청에 출석해 다음날 오전 5시50분경까지 약 20시간의 장시간 조사를 받은 뒤 귀가했다. 이날 오전 자택에서 휴식을 취한 황 회장은 오후 들어 성남 분당 본사로 출근했다.
황창규 KT 회장이 지난 17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본청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했다. 사진/뉴시스
황 회장은 이날 오후 3시부터 4시까지 약 1시간 동안 분당 본사에서 열린 제1노조와의 올해 첫 임금단체협약(임단협) 교섭에 사측 대표로 참석했다. 노사 양측의 상견례 성격으로, 노조의 요구 사안을 안건으로 상정하면서 첫 교섭을 마무리했다. 특히 황 회장이 예정된 임단협 교섭 일정까지 소화하면서 회장직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다는 분석이다.
KT 새노조는 KT 이사회도 황 회장의 거취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는 성명서를 내며 압박했다. 새노조는 "황 회장의 경찰 조사로 KT의 이미지는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추락했다"며 "즉각 이사회를 개최해 황 회장의 거취를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요구했다.
경찰은 KT 전·현직 임원들이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이른바 '상품권깡' 방식으로 90여명의 국회의원 후원회에 약 4억3000만원을 불법 후원한 것으로 보고 있다. 후원은 KT가 주주로 있는 인터넷전문은행 K뱅크 설립에 대한 사안을 다룬 국회 정무위원회와 정보통신기술(ICT) 소관 상임위인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현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위원들에게 집중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황 회장이 이 같은 불법 후원을 지시하거나 보고받는 등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것으로 보고 있다.
KT는 경찰의 추궁에 충분히 반박했다며 의혹을 터는 계기로 삼겠다는 분위기다. 경찰은 조사에서 KT 임원들의 진술을 황 회장이 불법 후원에 관여한 증거로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황 회장 소환에 앞서 KT 본사와 자회사들을 압수수색하고 관련자들을 차례로 불러 조사하는 등 혐의 입증에 노력했다. 경찰이 확보한 진술은 해당 임원들이 황 회장의 개별 지시로 국회의원들을 후원했다는 내용이다. 이에 대해 KT는 해당 날짜와 시간대에 황 회장이 참석한 회의가 있었다며 반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원들의 진술과 황 회장의 일정이 맞지 않다는 논리다. KT가 경찰의 추궁에 조목조목 반박하면서 조사시간도 약 20시간으로 길어졌다는 전언이다. 관건은 경찰이 KT의 주장을 재반박할 물증이 있느냐로 압축된다.
경찰 조사에도 은근히 자신감을 내비치던 KT는 권 회장의 갑작스런 사퇴에 당혹감이 커졌다. 무엇보다 황 회장의 거취 문제로 시선이 옮겨지는 것에 대한 부담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포스코와 KT는 민영화 이후 정권교체기마다 CEO가 중도 하차하는 잔혹사를 반복해왔다. KT는 지난 2002년 민영화 이후 남중수 전 사장과 이석채 전 회장이 정권이 바뀌고 검찰 소환 조사를 받은 끝에 중도 사퇴하는 아픔을 겪었다. 황 회장은 지난해 주주총회에서 연임에 성공했다. 임기는 2020년 주총(통상 3월)까지다.
KT 관계자는 "권 회장이 사퇴 의사를 밝혔지만 KT는 이와 관계없이 KT의 길을 갈 것"이라며 "5세대(5G) 통신 준비 등 할 일이 산더미인데 조사가 잘 마무리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이번 권 회장 퇴진에 과거처럼 청와대가 관여한 것으로 보지 않는다"며 "세간의 의혹이 거둬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현준 기자 pama8@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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