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법원행정처가 대법원의 형사 사건 성공보수 무효 판결을 사전 기획한 정황이 담긴 문건을 확보했다. 하창우 전 대한변호사협회장은 26일 오후 기자들과 만나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압수된 USB에서 발견된 다수의 문건에서 대법원이 선고한 형사 성공보수 무효 판결이 법원행정처의 사전 기획에 의해 농단된 판결임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검찰에 나와 참고인 조사를 받은 하 전 협회장은 "형사 성공보수에 관한 사건이 2014년 12월10일 대구고법에서 선고돼 2015년 1월2일 대법원에 접수되자 양승태 사법부의 법원행정처는 대한변협 전 집행부가 들어서기 전인 2015년 1월23일 사업정책실에서 '대한변협 신임회장 대응 및 압박방안'이란 문건을 만들었다"며 "이 문건에서 '형사 사건 성공보수 규제도입 검토'란 제목으로 형사 성공보수 약정을 무효화하기로 사전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지난해 7월23일 변호사의 형사 성공보수에 관한 사건에서 성공보수 약정은 원칙적으로 유효하되 과도한 부분만 무효라고 판단한 종전 판결을 뒤집고, 성공보수 약정 전부가 무효라고 선고했다. 이에 대해 하 전 협회장은 "대법원은 이 형사 성공보수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비밀리에 회부하고도 이 사실을 일절 외부에 알리지 않았다"며 "종전 판결을 변경하는 중요한 사안이고, 전체 변호사의 이해에 관련되는 민감한 사안임에도 공개변론조차 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양승태 당시 대법원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을 청와대에서 회동하기 직전인 2015년 8월1일 법원행정처는 '대법원장 접견 및 오찬 말씀자료'를 작성했다"며 "이 자료에 '형사 성공보수 무효 관련'이란 제목의 글에서 변호사의 형사 성공보수 무효 판결을 대법원의 치적으로 거론하면서 양승태 대법원장이 상고법원 도입에 대한 지원을 요청하는 글이 작성됐고, 8월6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면담했다"고 밝혔다. 법원행정처는 이후 8월16일 'VIP 면담 이후 상고법원 입법추진 전략'이란 문건도 작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하 전 협회장은 "일련의 과정에서 드러나듯 양승태 사법부는 상고법원을 도입하기 위해 변호사의 성공보수 약정을 무효화하기로 사전 기획했고, 전원합의체에서 무효 판결을 선고한 후 청와대의 지원을 받으려 한 사실이 드러났다"며 "이는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판결의 결론을 미리 내리는 사전 기획을 하고, 당시 대법관들이 이에 동조해 전원 일치의 판결을 선고한 것이므로 사법부가 변호사들을 볼모로 재판을 농단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날 하 전 협회장과 함께 조사받은 강신업 전 변협 공보이사는 "형사 성공보수 약정을 무효화해야 한다는 직접적인 문구는 없었고, 기존 판례를 검토하면서 국민의 과도한 부담 등 성공보수의 문제점을 나타내는 문구가 있었다"며 "다만, 변호사를 모두 적으로 돌릴 우려가 있다는 문구가 있는데, 말하자면 단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뉘앙스가 풍겼다"고 말했다. 이어 "형사 성공보수를 무효화로 만들어버리면 하창우 집행부가 상고법원을 반대하다가 불이익을 당했다는 것이란 분위기를 만들려고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하 전 협회장은 지난 11일에도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하 전 협회장은 2015년 2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재임하는 동안 대법원이 추진하는 상고법원을 반대했다. 법원행정처는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신봉수)의 협조 요청에 따라 지난달 26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성이 있는 410개의 주요 파일을 제공했으며, 이 중에는 '(140901)대한변협 압박방안 검토(나◇◇)', '(150417)대한변협 대응방안 검토', '(150813)대한변협 회장관련 대응방안', '(유실)58002 대한변협 압박방안 검토' 등 문건이 포함됐다.
검찰은 21일과 25일 임 전 처장의 자택과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했으며, 이 과정에서 임 전 차장이 법원행정처 자료를 별도로 백업해 숨겨둔 USB를 확보했다. 임 전 차장은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심의관 등에게 국제인권법연구회 학술대회 등 판사 모임 동향 파악과 모임 소속 법관의 의견을 수집하고, 법원행정처의 대책 문건 등을 작성하도록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2차례에 걸쳐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김모 전 법원행정처 기획1심의관 등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은 모두 기각했다.
하창우(왼쪽) 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과 강신업 전 공보이사가 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검 기자실에서 형사성공보수 무효판결과 관련한 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해훈 기자 ewigju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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