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문지훈 백아란 기자] 국민은행 채용비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현직 직원들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되자 은행권의 반응은 '다행이다'라는 반응과 '과하다'는 반응으로 엇갈렸다. 특히 은행권 노동조합을 비롯한 외부의 시선은 여전히 싸늘했다.
26일 서울남부지법 형사11단독 노미정 판사는 업무방해·남녀고용평등법위반으로 기소된 국민은행 인사팀장 오 모 씨를 비롯해 전 부행장 이 모 씨, 인력지원부장이던 HR총괄 상무 권 모 씨 등 3명에게 각각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또 같은 혐의로 기소된 국민은행 전 HR본부장 김 모 씨에게는 징역 10개월과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들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됐다는 소식에 은행권에서는 집행유예조차 과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A은행 고위 관계자는 "은행에 어느 정도의 공익성이 요구된다고는 하지만 엄연히 이윤을 추구하는 사기업인 만큼 채용은 기업 고유의 권한이다"라며 "무죄를 받아야 마땅한 사안인데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과하다"라고 말했다.
B은행 관계자는 "기소된 담당자 모두 대가를 바라거나 개인적인 이윤을 챙기기 위해 저지른 일이 아닌데 집행유예를 받았다는 점에서 비교적 무거운 형벌이 아닌가 싶다"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향후 다른 은행의 채용비리 의혹과 관련한 재판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이번 판결에 대해 다행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C은행 관계자는 "은행권 채용비리와 관련한 첫 판결인 만큼 다른 은행의 채용비리 판결에도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최고경영자(CEO)가 기소된 은행도 있는 만큼 숨죽이고 지켜보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실제 다음달 5일에는 우리은행의 채용비리에 대한 공판이 진행될 예정이며 함영주 행장이 직접 기소된 KEB하나은행 채용비리 관련 공판은 다음달 23일 열릴 예정이다. 신한은행 채용비리와 관련해서는 지난 11일 조용병
신한지주(055550)(신한금융지주)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됐으나 검찰의 구속영장 재청구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은행권 노조에서는 '꼬리 자르기' 판결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특히 국민은행 채용비리 의혹과 관련해 기소되지 않은 최고경영진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반응이다.
허권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 위원장은 "양형은 낮지만 공소한 사실이 인정된 부분이 있고 이에 대해 최고경영진이 책임을 져야 한다"며 "이와 관련해 오는 29일 최고경영진의 사퇴를 촉구하는 집회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박홍배 금융노조 국민은행지부 위원장은 "솜방망이 처벌"이라고 비판했다.
권영국 법률사무소 해우 변호사 역시 "채용비리는 대가의 여부를 떠나 사회정의, 공정질서를 무너뜨리는 범죄로 엄벌에 처해야 마땅하다"며 "집행유예는 사실상 봐주기식 판결로 비춰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일련의 채용비리 사태를 보면 수장들이 모르고 진행된 일은 아닌 것으로 사료된다"며 "최종 결정권자가 빠진 상황에서 판결에 한계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수장들의 구속영장 기각 등은 안타까운 결정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 자체가 채용과 관련한 은행권의 관행이 바로잡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감독원의 금융기관 내부통제 혁신 태스크포스(TF) 위원장을 맡고 있는 고동원 성균관대 교수는 "집행유예가 엄벌은 아니지만 은행권의 채용 관행이 법에 위반된다는 판결이 나왔기 때문에 은행권에 경각심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뉴시스
문지훈·백아란 기자 jhmo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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