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풀이돼선 안 되는 일이 반복되곤 하는 것이 역사의 아이러니다. 다수와 다중의 의견이 반드시 최상의 선택이 아니라는 것이 자주 확인되는 투표와 민주주의의 역설도 마찬가지다. 그런 역사가 주는 교훈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조선과 구한말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동시대의 역사에서 우리는 많은 것들을 성취했고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고 있다. 그러면서도 우리 역사가 미래를 향한 최선의 길이 선택되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노무현과 박근혜, 이명박 시대의 역사가 확인해주고 있다. 보통사람의 시대에서 보통사람은 괄호밖에 있었고, ‘민주정부’는 민주적이지 않았으며 국민의 정부에서 국민은 소외됐고, 참여정부에는 소수의 코드를 가진 사람들만 참여했으며, 실용정부는 실용적이지 않은 건설공사를 많이 했다.
민주화 이후 정부는 이구동성으로 ‘국민화합’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편가름’과 갈등이 심화됐고 그 결과가 대통령과 고위공직자의 말에 국민들은 신뢰를 주지 않는 것이다. 부동산 정책과 교육정책은 5년 주기로 바뀌었다. 어쩌면 정부나 여론조사기관이 매주 돈을 들여 여론조사를 실시,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를 조사하는 이유가 그것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지지율에 관계없이 흔들림 없이 개혁을 하겠다는 공언과 무색하게 지지율이 떨어지면 어느 정부에서나 지지율 반등을 위해 무리수 정책을 도입하곤 했다.
‘국민을 이기는 나라는 없다’던 지도자는 대통령이 되자 국민을 이기려고 하고, ‘사람이 먼저다’는 슬로건을 내건 정부에서도 사람이 뒷전으로 내몰리는 현상은 정부가 바뀔 때마다 반복되고 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박정희 시대의 유산인 ‘목표와 목적이 합당하거나 정의로우면 모든 것이 다 용서된다‘는 그릇된 목표지상주의에서 비롯된 것일까?
마오쩌둥이 사망하고 나서야 비로소 멈출 수 있었던 ‘문화대혁명’ 시대에는 누구도 나서서 마오의 과오를 지적할 수 없었다. 중국은 마오의 사후에도 ‘문혁‘의 과오를 솔직하게 까발릴 용기를 내지 못했다. 그랬다가는 중국공산당의 집권 자체가 정당성을 잃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덩샤오핑은 절묘하게 ’흑묘백묘론’이란 논리를 내세워 ‘쥐만 잘 잡으면 된다’며 문혁과 대약진운동 등을 통한 수백만의 목숨과 수천만 명의 숙청과 상처라는 ‘과’보다는 오늘의 신중국을 건설한 ‘공’이 더 많다며 톈안먼 광장에 내걸린 마오 주석의 초상화를 떼어내지 않았다. 덩의 그런 실용노선이 중국을 개혁개방으로 이끌어, 지금의 G2 중국을 건설하는 최대의 기반이 됐다. 덩이 당시 ‘적폐청산‘을 내세워 마오 시대의 ’부역자‘들을 모두 찾아내 처단했다면 오늘의 중국은 어떤 모습이 되었을까?
역사는 우리 역사 뿐 아니라 이웃나라, 다른 나라 역사에서도 배워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후진타오 때부터 시진핑 시대에 이르기까지 중국에 종종 가면 중국친구들을 만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그 때마다 그들은 깜짝 놀랄만한 최고 권력층 주변의 이야기들을 하곤 했다. ‘만리방화’같은 철통같은 보안시스템에 의해 통제되는 중국 사회에서 권력주변의 민감한 이야기들이 자유롭게 나도는 것이 신기했고, 또 그런 비사들이 어느 정도 그럴듯하게 느껴져서 놀라웠다.
요즘같이 ‘데자뷔’라는 ‘프랑스어’를 자주 쓰는 때가 없었던 것 같다. 청와대 특별감찰반을 둘러싼 논란이 일자 야당과 언론에서 일제히 박근혜정부 초기의 정윤회 문건을 둘러싼 논란을 보는 듯하다며 ‘데자뷔현상‘이라고 지적한 것이다. ‘데자뷔’는 말 그대로 ‘이미 본’ 것으로 심리학에서 체험하지 못한 상황에서 이미 (이전이나 전생에서) 체험한 것처럼 느껴지는 형상을 가리키는 심리학 용어다. 그 다음은 전 정부시절 청와대와 비슷한 수순을 따르지 않을까하는 것이 데자뷔 현상의 결론일 것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냄비근성’이 변수가 될 수는 있다. 우리 사회의 여론은 열전도율이 높은 냄비처럼 급속하게 달아올랐다가 순식간에 식어버리기 일쑤다. 또 다른 큰 사건이 터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우리는 조금 전까지 타올랐던 열기를 잊고 다른 사건에 열을 올린다. 그러나 역사는 시대의 반면교사다. 중국의 역대 황제들이 기억하는 단하나의 통치원칙이 있다. ‘밥이 곧 하늘이다.’ 밥그릇이 부실해지면 왕조가 무너졌다. 국민들의 ‘밥그릇‘에 집중하는 대통령의 자세변화를 기대하고 싶다.
서명수 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didero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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