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구하는 의사들의 생명이 위협받는다면 그 사회는 얼마나 위험천만한가. 2019년 1월1일 새해 벽두부터 우리를 섬뜩하게 하는 뉴스가 전국을 강타했다. 서울 강북삼성병원 신경정신과 소속 47세의 젊은 의사가 진료 도중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목숨을 잃었다. 우울증 치료와 자살 예방에 평생을 헌신하고, “환자들에게서 삶을 배운다”는 따뜻한 진료 철학을 갖고 있던 임세원 의사의 끝은 왜 이렇게 비극적이었을까.
병원 폭력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우리는 흔히 병원하면 병든 환자들과 그들을 위해 분주히 뛰어다니는 의료진을 떠올린다. 병원과 폭력사고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도 종종 듣는다. 이 같은 통념과 달리 병원에서 폭행과 성폭력, 심지어 살인사건은 종종 일어난다.
대한응급의학회가 지난해 7월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응급의료종사자 중 62.6%가 폭행을 경험했다. 대한의사협회 박종혁 대변인은 “2017년 피해건수가 893건으로 조사됐지만 보복 등이 두려워 신고하지 않은 경우 등을 포함하면 더 많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병원에서 환자는 물론 보호자들의 폭언이나 폭행이 일상화되고 있다.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다른 나라는 어떨까. 프랑스의 경우 의사들의 안전은 우리보다 훨씬 더 위협받고 있다. 이 나라에서는 아직도 의사들이 환자의 집으로 왕진을 간다. 따라서 왕진가는 도중 폭력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에도 환자의 칼에 찔려 여자 의사가 3일 동안 혼수상태에 빠지고, 남자 의사가 살해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지난해 4월4일 일간지 르 파리지앵(Le Parisien)이 프랑스 국립 의사심의위원회 의뢰로 입소스(Ipsos)가 조사한 결과를 보도한 내용을 보면, 2017년 한 해 동안 1035명의 의사가 폭력을 당했다. 이는 2016년 968명에 비해 훨씬 늘었다. 국립 의사심의위원회 안전관측소 코디네이터이자 의사인 에르베 부아생(Herve Boissin)은 “이처럼 폭력이 많이 일어난 적은 없었다. 모욕, 침 뱉기, 절도, 성폭력, 구타가 다반사로 일어난다”고 개탄했다. 폭력 행위자의 50%는 환자이고, 15%는 환자의 보호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기다리는 것을 참지 못하거나 요구한 처방전을 받지 못하면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다.
부아생은 “공권력, 특히 내무부가 행동을 취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의사들과 경찰이 교신할 수 있게 리포티(Reporty·조난구조요청장치) 착용을 정부가 하루 빨리 허용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는 르 파리지앵과의 인터뷰에서 “내무부 장관을 만나길 요청했지만 약속을 잡지 못했다. 경찰을 부르고 폭력장면을 찍는 감시장치를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지만 내무부 장관으로부터 답을 듣지 못했다. 우리는 정부가 좀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길 원한다. 이는 구조요청이다”라고 호소했다.
프랑스 아쏘 상태(France Assos Santee·건강제도 사용자 국민연합회) 회장 알렝 미셸 세레티(Alain-Michel Ceretti)는 이러한 상황이 환자들에게도 결코 이롭지 않다고 보고 있다. 그는 “돌보는 데 폭력을 당하는 것은 정말 견딜 수 없다. 만약 이 문제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방치한다면 그만두는 의사들이 늘어나고, 야간 진료를 하는 의사들도 줄어들 것이며, 가정을 방문하는 의사들을 더 이상 볼 수 없을지 모른다”라고 경고했다.
벨기에 리에즈에 있는 생 니콜라가족 의사협회 회장 상토 밀라쪼(Santo Milazzo)는 관리 시스템과 의사의 가정방문 시스템 개정이 필수라고 보았다. 그는 “정부가 제안한 안전대책은 스마트폰에 알람을 설치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폭력을 당할 경우 무엇을 할 것인가. 시간을 다투는데 경찰이 언제 도착하는지만 물어야 하는가. 병원에 설치된 안전 보조기구로는 안 된다. 우리는 구식이 된 안전 시스템을 개정하기 위해 투쟁하고 있다. 그러나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국민 교육이다. 의사는 비상조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야간 처방전을 위해서가 아니다”라며 인식 전환이 필요함을 호소했다.
이처럼 한국이나 프랑스 모두 병원폭력은 심각한 상태다. 프랑스는 이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의사들을 중심으로 정부에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지만 명확한 답은 없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런 사태를 정부에 맡기고 처분만을 기다릴 것인가. 고 임세원 의사의 넋을 기리기 위해서라도 이번 기회에 병원폭력 문제를 우리 사회의 뜨거운 이슈로 쟁점화하고 대책 마련을 촉구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언론은 비극적 사건이 일어날 때만 이슈화하다 그만 흐지부지 끝내버릴 게 아니라 이 문제를 2019년 새해의 큰 담론으로 쟁점화 하라. 그렇지 않고는 정치권이 또 ‘임세원법’을 언제까지 보류할지 모른다. 병원폭력은 칼이나 총과 같은 무기에 의한 육체적 폭력도 심각하지만 언어로 가하는 폭력도 살인 이상으로 심각하다. 이러한 진상을 언론이 나서서 샅샅이 파헤치고 그 심각성을 국민과 정치권이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언론이 제 기능을 하면 우리 사회의 많은 부분을 바꿀 수 있다. 이 점을 언론 관계자들은 한시도 잊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다.
최인숙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sookjuliette@yahoo.fr)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프랑스 정치현상을 잣대로 한국의 정치현실 개선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책 ‘빠리정치 서울정치(매경출판)’를 펴냈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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