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홍 기자] 교착 상태에 놓였던 '광주형 일자리'에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광주형 일자리를 언급했고,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이달 말까지 마무리될 것"이라고 발언하는 등 '협상 결렬'을 선언했던 현대자동차도 다시 테이블에 앉을 수 있는 명분이 마련됐다는 평가다. 청와대와 여당을 비롯한 정치권, 정부까지 나서 광주형 일자리를 반드시 관철시키겠다고 선언했고, 현대차가 자동차 공장 건설을 염두에 놓고 검토해보기로 한 만큼. 자기입장만 고집하고 있는 노동계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으며, 양보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광주형 일자리는 노·사·민·정이 협력해 임금 수준을 다소 낮추더라도 일자리를 창출하고 지역 경제를 활성화한다는 목표로 추진됐다. 윤장현 전 광주시장이 지난 2014년 지방선거에서 '일자리 1만개를 만들겠다'고 공약하면서 공론화됐다. 201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당시 대선 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은 광주형 일자리를 전국으로 확대해 일자리 창출의 새로운 모델로 지원하겠다고 공약했으며, 같은 해 7월 정부 100대 국정과제에도 포함됐다.
광주형 일자리는 현대차가 지난해 6월1일 사업 참여 의향서를 제출하면서 본격 추진됐다. 광주시와 현대차는 오는 2022년까지 빛그린산업단지에 자동차 합작 생산공장을 설립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광주시는 지역 경제 활성화 및 일자리 창출, 현대차는 상대적으로 낮은 비용으로 경형 SUV를 위탁 생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협상은 큰 어려움 없이 마무리 될 것으로 예상됐다. 당초 양측은 지난해 6월19일 광주시청에서 완성차 합작법인 투자 협약식을 진행하고, 이 자리에는 문 대통령도 참석할 예정이었다.
교착 상태에 놓였던 광주형 일자리 사안이 최근 청와대, 여당 등이 나서면서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지난 2017년 중국 충칭시 현대차 제5공장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 사진/뉴시스
하지만 현대차 노조가 "광주형 일자리는 정규직 임금을 하향 평준화시키고 노사 단체협약에도 위반된다"면서 강력 반발했다. 또한 광주시와 현대차는 임금 수준, 단체협약 등 핵심 쟁점에서 이견을 해소하지 못했다. 광주시가 광주형 일자리를 시의 최우선 과제로 적극 추진한 반면, 현대차는 "원안대로 합의가 안된다면 굳이 할 필요가 없다"는 태도를 견지한 점도 영향을 미쳤다.
지지부진하던 협상은 이용섭 광주시장이 지난해 10월1일 "광주형 일자리 성사가 절실하며, 노사민정 협의회에 노동계가 함께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고 이후 한국노총 광주지역본부가 참여하면서 불씨를 살렸다. 또한 이 시장이 직접 협상에 나서 11월12일 정진행 현대차 사장(현 현대건설 부회장)과 비공개 면담을 하기도 했다. 협상이 급물살을 타자 현대차 노조는 "총파업도 불사하겠다"며 사측을 압박했다.
11월 말 지역 노동계는 광주시에 협상 전권을 위임했고 12월4일 광주시와 현대차는 잠정 합의에 성공했다. 광주시는 12월5일 노사민정 협의회에서 잠정 합의안을 의결하면 6일 현대차와 협상을 마무리한다는 방침이었다. 하지만 협의회는 '35만대 생산까지 임금 및 단체협약 유예' 조항에 제동을 걸며, 수정안을 의결했고 현대차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선언함으로써 연내 타결에 실패했다.
교착상태에 빠졌던 광주형 일자리 사안은 지난 10일 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을 전후해 재협상을 하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 이 대표도 13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양측을 다 만나봤는데 큰 (의견) 차이는 없어졌고 미세한 것이 남았다"면서 "마지막 협상을 다시 해야 하는데 제가 보기에 이달 말까지는 협상 끝날 것 같다"고 말해 타결 가능성이 95% 이상은 넘어섰음을 시사했다.
물론 현대차나 광주시 모두 말을 아끼고 있다. 광주시 관계자는 "현대차 측과 언제 협상을 재개하는지 등에 대해서는 공개할 수 없다"면서 "대통령 발언 이후 협상 추진에 탄력을 받은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으며, 현대차도 분위기가 긍정적으로 바뀌었을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현대차가 광주형 일자리로 인해 더이상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기는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오히려 정부는 지난달말 '2019년 경제정책방향에서 현대차그룹의 글로벌 비즈니스센터(GBC) 사업의 조기 착공을 지원한다고 발표했고 이달 7일 정부 심의 마지막 단계인 국토교통부 수도권정비위원회 심의를 최종 통과했다. 향후 남은 절차는 서울시 건축허가, 굴토·구조심의 등이며, 이르면 상반기 내 착공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현대차그룹은 정 부회장 체제로 개편되면서 지난해 무산된 지배구조 개편을 마무리해야 하는 과제가 남았다. 업계에서는 이런 상황들을 감안하면 현대차가 광주형 일자리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를 유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광주형 일자리는 갑자기 나온 정책이 아니라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라며 "최근 고용 지표가 좋지 않았다는 점에서 정부가 광주형 일자리 성사에 적극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어 "노동계의 반발이 협상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에서 광주형 일자리 협상이 타결되려면 노동계의 양보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현대차 관계자는 "GBC와 광주형 일자리를 연계하는 건 과한 해석"이라면서도 "광주시가 정리된 입장을 제시하면 이를 기반으로 협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김재홍 기자 maroniever@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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