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영지 기자]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재판에 개입하는 등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혐의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구속기소됐고,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이 불구속기소됐다. 양 전 원장의 범죄사실은 무려 47개에 달하며, 나머지 3명도 고루 개입돼 있었다.
서울중앙지검 사법농단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는 11일 양 전 원장, 박·고 전 대법관을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로 기소했다. 앞서 구속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도 관련 혐의로 추가기소됐다.
'양·박·임' 강제징용 재판 직접 관여
핵심 혐의는 법원행정처 심의관에서 강제징용 사건에서 전범기업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 이후 소송 전개방향에 대한 시나리오를 검토한 문건을 작성하게 한 것이다. 그는 또 2013년 이 검토 문건을 재상고 사건 담당 대법원 재판연구관에게 전달하고, 다음해 주심 대법관에게 앞선 대법원 판결의 외교적·국제법적 문제를 거론하며 원고 청구기각 의견을 전달한 혐의를 받는다. 이는 박근혜 전 대통령 당시 청와대 요청에 따른 것으로 상고법원 도입, 법관 재외공관 파견 등 지원을 받아낼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박 전 대법관은 양 전 원장과 함께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하는 등의 시나리오를 검토한 문건 작성을 지시하고, 재상고 사건에 청와대·외교부의 청구기각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국가기관 등 참고인 의견제출 제도' 도입을 지시하고 도입 이후 청와대·외교부·주심 대법관·피고 전범기업 측 변호사와 위 제도를 활용한 외교부 의견서의 재판부 제출 방법을 사전에 조율한 혐의 등을 받는다.
"청와대 '설득활용' 검토해보라"
또 임 전 차장은 이들과 함께 청와대에 상고법원 도입을 설득하기 위한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 활용 방안 검토 문건을 법원행정처 심의관에게 지시했고, 검찰은 이 역시 직권남용 혐의로 봤다. 임 전 차장은 양 전 원장과 피고인 전범기업 측 변호사와 외교부에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하고, 청와대 의견을 반영해 심리할 계획을 알려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를 받고 있다.
이외에도 양 전 원장과 박 전 대법관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노조 통보처분 사건과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에 개입한 혐의를 받는다. 또 상고법원 도입에 반대한 서기호 전 의원을 압박하기 위해 관련 재판에 개입한 혐의는 박 전 대법관에게만 적용됐다.
사법정책 반대하면 대상 안 가려
이들 4명은 사법부에 비판적인 의식을 가진 법관들을 억압한 혐의도 받고 있다. 이들 4명은 2013-2017년 정기인사에서 인사심의관들에게 사법행정에 비판적이나 부담을 준 판사들을 물의야기 법관 등에 포함시켜 문책성 인사조치를 검토하거나 부정적 인사정보를 소속 법원장에 통보하는 내용의 문건 작성을 지시했다. 또 양 전 원장과, 고·박 전 대법관은 국제인권법연구회와 인권과 사법제도 소모임 등을 와해시킬 목적으로 정상적인 지원을 중단하고, 자발적 해산 및 인사상 불이익을 가하는 방법에 대해 법원행정처 심의관으로 하여금 검토하는 문건 작성을 지시한 혐의도 있다.
양 전 원장과 박 전 대법관은 법관들이 사법행정을 비판하는 글을 게시한 법원 외부에 개설한 커뮤니티인 ‘이판사판야단법석 카페’를 폐쇄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을 지시했고, 카페 운영자의 소속 법원장에게 운영자를 면담해 사법행정 비판활동을 저지하게끔 지시해 직권남용 혐의를 받는다. 판사뿐만 아니라 사법정책에 반대하는 대한변호사협회 및 회장들에 대한 압박 방안도 세웠다.
헌재 압박 위해 TFT까지 구성
또 검찰은 이들 4명 모두가 헌법재판소를 압박하고 사법부의 위상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법행정권을 철저하게 남용했다고 봤다. 헌재의 위헌정당해산 결정으로 통합진보당 소속 의원들이 지위를 상실하자 낸 행정소송에 대해 사법부에 가장 유리한 결론을 내기 위해 TFT를 구성하고, 본안 판단을 해야한다는 입장을 해당 재판부에 전달한 혐의를 받는다.
한동훈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제3차장검사가 11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브리핑룸에서 사법행정권 남용으로 구속 기소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영지 기자 yj1130@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