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한영 기자] 대법원의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배상 판결 관련 일본 측이 지난달 20일 요청한 중재위원회 구성에 대해 우리 정부가 답변 시한까지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우리 정부의 소극적인 대응이 아쉽다는 의견이 나온다.
김인철 외교부 대변인은 18일 정례브리핑에서 일본 측의 중재위 구성 요청 후 후속조치를 묻는 질문에 “미래지향적 한일관계 구축 필요성 등을 고려해 관련 사안을 신중하게 다뤄오고 있다”고 답했다. 김 대변인은 ‘중재위원을 선정했느냐’는 질문에도 “신중하게 다뤄오고 있다”는 말로 갈음했다.
지난 1965년 한일 양국이 체결한 청구권협정에 따르면 한 쪽의 중재위 설치 요청이 있을 경우 상대국은 30일 이내에 중재위원을 임명토록 하고 있다. 만일 기한 내에 중재위원을 임명하지 않을 경우 제3국이 지명한 위원들로 중재위를 설치해야 한다. 일본 측은 이미 중재위원을 임명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우리 측은 답변 시한인 이날까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청구권협정에 나와있는 ‘외교상의 경로를 통한 해결’ 요청을 4개월 여 진행한 후 중재위 설치를 요청했다.
이에 대해 조진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이렇게 되면 국제법 상의 명백한 조약을 무시하는게 된다”며 “싫든 좋든 입장을 이야기하라는데 안한 것”이라고 우려했다. 경우에 따라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한국은 약속을 해도 지키지 않는다’는 식의 비판을 해도 할 말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도 “우리 정부가 너무 수세적인 것만은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이달 말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중 한일 정상회담 개최 여부도 더욱 불투명해졌다. 일본 정부는 G20 기간 중 한일 정상회담 개최를 연계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전해졌다. 조 교수는 “아베 총리가 지나가다가 문 대통령과 인사하거나 사진찍는 정도의 모습도 안보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일각에서는 일본의 지난달 20일 중재위 설치 요구가 공식적인 외교 요청인지 여부를 따져봐야 한다는 주장도 내놓는다. 외교가에 따르면 일본의 중재위 설치 요구는 ‘구상서’ 형식으로 온 것으로 알려졌다. 구상서는 외교 과정에서 상대국과의 토의나 문제점을 제시하기 위해 제출하는 외교문서다. 해당국 장관이나 대사 등의 서명이 필요없으며 수신명도 기입하지 않는다.
남 교수는 “일본이 공식적으로 중재위 구성을 요청한 것인지 법적인 해석 부분이 남아있다”며 “정부가 이를 공식적인 요청으로 받지 않는다면 외교적인 협의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해도 될 듯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청구권협정 상의 해석문제를 다투기 위해서라도 일본 측과 협의를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오른쪽)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해 11월17일(현지시간) 파푸아뉴기니 포트모레스비 APEC하우스에서 열린 간담회에 참석한 모습. 사진/뉴시스
최한영 기자 visionchy@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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