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밴드신의 ‘찬란한 광휘’를 위해 한결같이 앨범을 만들고, 공연을 하고, 구슬땀을 흘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TV를 가득 메우는 대중 음악의 포화에 그들의 음악은 묻혀지고, 사라진다. ‘죽어버린 밴드의 시대’라는 한 록 밴드 보컬의 넋두리처럼, 오늘날 한국 음악계는 실험성과 다양성이 소멸해 버린 지 오래다. ‘권익도의 밴드유랑’ 코너에서는 이런 슬픈 상황에서도 ‘밝게 빛나는’ 뮤지션들을 유랑자의 마음으로 산책하듯 살펴본다. (편집자 주)
“네 꿈을 접속하라! log in!/ 워~~~미래에 접속하라!”(곡 ‘Log In')
지난 5일 오후 3시경, 서울 송파구 잠실동 인근 아지트합주실. 기차 화통을 삶아 먹은 듯한 소리가 실내 방음 부스에 수직으로 내다 꽂혔다. 고래 심장 고동 같은 드럼 비트와 공기를 할퀴는 금속성 기타 질주, 치렁이는 긴 머리…. 1인 관객을 위해 과묵하게 록 스피릿을 발산하는 한국 메탈계 ‘큰 형님들’의 즉석 공연. 더욱 질주적인 ‘바람을 타고’를 끝낼 무렵 반사 신경처럼 물개 박수를 터뜨리고 말았다.
“아주 귀여운 분이 우리 합주실에 오셨군요. 허허허.”
블랙홀 멤버들. 왼쪽부터 정병희(베이스·54), 이관욱(드럼·43), 주상균(보컬, 기타·56), 이원재(기타·49).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올해 데뷔 30주년을 맞은 밴드 블랙홀[주상균(보컬·기타, 56), 정병희(베이스, 54), 이원재(기타, 49), 이관욱(드럼, 43)]을 그들의 ‘아지트’에서 만났다. 이 합주실은 라이브 활동이 잦은 밴드에겐 피와 살이 되는 곳. 집만큼 삶과 밀착한 이 곳에서 밴드는 평소에도 실전 같은 판을 벌인다. “우리는 ‘공연하는 사람들’이니까요. 프로 뮤지션이 되려면 여기를 베이스 캠프처럼 잘 활용해야 하죠.”(주상균)
전투 현장을 방불케 하는 이 공간이 최근에는 종종 스튜디오로도 변한다. 2달 전부터 밴드는 유튜브 채널 ‘블랙홀 TV’에 올릴 영상을 주로 이 곳에서 찍고 있다. 흡사 아이돌 채널처럼 신변잡기를 털어 놓으며 두런두런 얘기하는 모습이 소년들 같다. 지난달 무려 14년 만에 세상 빛을 본 9집 ‘Evolution’ 홍보 차 최근 더 박차를 가하는 상황. “여전히 우리나라 메탈 환경은 쉽지 않죠. 이번에도 매니지먼트, 홍보대행사를 끝내 구하지 못했어요. 좌절하고만 있다가 ‘유튜버’ 해보자 했어요.”(주상균)
밴드 블랙홀이 자체적으로 제작 중인 유튜브 채널. '블랙홀 TV'라는 명으로 팬들과 소통중이다. 사진/밴드 블랙홀 공식 유튜브 채널
머리 띠를 두르고 본격 유튜브 심해로 뛰어들었다.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보자”던 멤버들은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보유한 라이브 영상부터 올려 DB를 구축할 것, 금요일은 알람까지 맞춰두고 촬영 영상을 찍을 것, 업로드한 영상은 바로 개별 소셜미디어(SNS)로 퍼다 나를 것. 데뷔 30년 만에 본격 유튜버 메탈 밴드로의 도약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촬영하는 게 음악만큼 장난 아니더군요. 연말 공연도 해야지, 방송도 해야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그래도 나름 즐거워요.”(이원재)
1980년대 중후반, 한국은 밴드 붐으로 들끓었다. 당시 국외적으로는 ‘보는 음악’ MTV가 해외의 ‘쇼킹한 음악’들을 국내에 소개하기 시작했다. 딥 퍼플, 레드 제플린, 블랙 사바스, 주다스 프리스트, 머틀리 크루…. 국내에서는 들국화, 산울림, 송골매부터 각 대학 동아리 밴드들이 판을 열었다. 각 학교에서는 반에 2~3팀씩 스쿨 밴드들이 생겨났다. 이 때 스쿨밴드 출신의 ‘메탈키드’들은 훗날 대중음악 질서를 주도한 주역들이다. 신해철, 이승환, 서태지, 김종서가 대표적. “친구들끼리 2000원씩 걷어서 연습실가고 그랬지.”(주상균) “교내 방송하면 무조건 록이나 헤비메탈이었어요. 어떤 친구는 나무 걸상 6줄을 뜯어서 기타치고 그랬는데.”(정병희) “이야. 그건 처음 들어봤는데. 대걸래 들던 친구까진 있었지만.”(이원재)
금요일마다 밴드 블랙홀의 합주실은 유튜브 스튜디오로 변한다. 사진/블랙홀 공식 유튜브 채널
밴드 붐을 타고 시나위, 부활, 백두산은 ‘한국 메탈’에 본격 불을 지폈다. 1985년 블랙홀이 결성된 것도 이 무렵. 우주 블랙홀에 착안해 지은 밴드명에는 깊은 의미가 있다. “블랙홀 하면 실체는 볼 수 없어도 어마어마한 힘이 있다고 알고 있잖아요. 비록 스타덤까지 오르진 못했지만 앨범 낼 때마다 그래도 10만장씩 팔렸던 시절을 생각하면 음악으로 어느 정도 소통은 했다고 봐요. 감명이 되고, 위로도 받았다는 피드백을 받았으니까.”(주상균)
밴드의 ‘메탈 외길’ 인생은 격동의 한국 현대사 속에서 흘러왔다. 군사독재 시절과 대마초 파동, 장발 단속, 민주화, 88올림픽…. 녹록지 않았을 지난 30년. 돌아가 보고 싶은 짜릿한 순간이 있을까. “별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던 주상균이 침묵 뒤 말을 잇는다. “한국대중음악상을 탔던 8집(‘Hero')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 그때 앨범은 저와 멤버 모두 기름 한방울까지 짜서 만든 앨범이었거든요. 어렵고 장중한 음악인데도 세상의 평가를 받아 기억에 많이 남아요.”
밴드 블랙홀. 사진/밴드 제공
주상균은 지역갈등, 광주민주화 운동, 통일 등 현 세태에 비판을 담은 4집 발매 당시도 떠올렸다. “당시 소속사 EMI로부터 퇴출 위기에 있었거든요. 노래가 대중적이지 않다고요. 그런데 나오자마자 매니저한테 연락이 왔어요. 난리가 났다고요. 대학에서 다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고요.”
“나는 요즘도 좋아. 9집 나오고 나서 우리가 더 단합됐거든요. 이제 정말 하나가 돼 인생을 펼쳐가는 느낌이 들어요.”(정병희) “더 멀리도 말고 딱 두 달 전으로만 돌아가고 싶어요. 지금 할 게 너무 많거든요. 30주년 공연 준비도 해야지, 영상 촬영도 해야지.”(이원재) “순간에 최선을 다해야 하니까요. 솔직히 40주년은 장담할 수 없는 것이기에. 10년 단위의 마지막 행사라는 기분으로 하고 있어요.”(주상균)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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