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크리스마스 날 저녁, 낫과 망치와 별이 그려진 소련의 국기가 내려가고 러시아의 삼색 국기가 올라갔다. 지난 세기 인류는 사회주의 혁명의 성공을 경험했지만 그 세기가 저물 무렵 이 첫 실험의 실패도 목격해야 했다.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USSR)이 사라지고 새로운 러시아가 역사에 등장했을 때, 타국의 사람들은 충격과 호기심으로 이 세계사적 사건을 지켜보았고 러시아인들은 혼돈과 기대, 희망과 절망의 시간 속에 던져져 있었다. 강산이 두세 번 바뀔 동안 커다란 변화를 겪어온 러시아인들, 그들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쥐갈로프 광물 박물관에 전시된 광물들. 공작석(왼쪽), 베테크티나이트(가운데), 규공작석(오른쪽)이라는 이름이 보인다. 사진/필자 제공
바이칼스크에서 온 견학 안내인과의 대화
슬류쟌카의 숙소 주인 따냐 씨의 말대로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 도시의 경제 사정이 악화된 원인은 무엇일까? 다음날 아침 나는 한 작은 사립 박물관에서 만난 견학 안내인을 통해 그 실마리를 풀었다. ‘바이칼의 천연 보석’이라는 별칭이 붙은 ‘쥐갈로프 광물 박물관’은 1990년에 문을 연 러시아에서 유일한 개인 광물 박물관이다. 쥐갈로프 부부가 (종종 자녀들과 함께) 슬류쟌카 주변의 산과 심지어 러시아 전역, 해외를 돌아다니며 1975년부터 수집한 1만 점 이상의 보석·광물 컬렉션인데, 물론 중심이 되는 것은 슬류쟌카와 남부 바이칼 지역의 광물이다.
쥐갈로프 광물 박물관 안뜰에는 발레리 쥐갈로프가 배치한 돌들이 늘어서 있다. 이를 둘러보는 관람객들. 사진/필자 제공
박물관을 둘러보는 동안 러시아 단체 관광객 두 팀이 지나간다. 이곳은 러시아인들뿐만 아니라 해외 광물애호가들의 견학 코스이기도 하다. 바이칼스크 시에서 그룹을 인솔해 온 견학 안내자는 이곳이 쥐갈로프 부부에 의해 1980년대에 준비되었고 박물관 개장 이후 사진기자였던 남편의 사진 갤러리와 호텔, 기념품점도 생겼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정보를 주었다! 바로 자신의 도시인 바이칼스크에 있었던 ‘바이칼 펄프 및 제지 공장(콤비나트)’의 폐쇄, 지역민의 생활터전이자 바이칼 호수의 가장 큰 오염원이었던 공장의 폐쇄가 불러온 현실에 대한 이야기였다.
“바이칼 펄프·제지 콤비나트의 폐수가 바이칼의 물을 오염시켜서 오랜 논의 끝에 콤비나트 폐쇄가 결정됐어요. 바이칼스크에 콤비나트를 건설한 이유는 ‘코드(cord) 셀룰로오스(펄프)’를 생산해 항공기 타이어를 강화하는 것이에요. 그것이 높은 온도와 큰 하중을 견디게 하거든요. 그런데 물이 오염되어 더 이상 생산하지 못하고 최근에는 휴지 같은 것들만 만들게 됐어요. 다른 곳에서도 생산할 수 있는 것을 굳이 콤비나트에서 만들 필요는 없으니 그런 것은 인근 다른 도시들의 제지 공장으로 일부씩 이전된 것이지요.”
쥐갈로프 광물 박물관을 관람 중인 러시아 단체 관광객들. 사진/필자 제공
바이칼의 신음, 도시의 쇠락
나는 문외한인지라 그의 설명이 어려워 자료들을 찾아보았다. 1950년대 초 소련은 고강도의 항공기 타이어 코드 생산을 위해 고품질의 펄프 품종을 얻는 게 필요해졌다(‘타이어 코드’는 타이어의 내구성, 주행성,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고무 내부에 넣는 섬유보강재를 가리킨다). 당시 그런 제품은 미국에서만 생산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생산을 위해서는 특별한 품질의 물이 필요했는데, 그 최적지로 선택된 곳이 바이칼 호수와 그 호수를 낀 이르쿠츠크 주 슬류쟌스키 지구의 바이칼스크였다.
1959년 황산염 코드 펄프 생산 공장을 건설하기 위한 계획이 시작되었고 1966년 최초의 제품을 생산하게 된다. 바이칼 펄프·제지 공장은 침엽수에서 표백 또는 표백되지 않은 황산염 펄프와 비스코스 황산염 펄프를 생산했는데, 침엽수는 길고 질긴 섬유로 고강도이기 때문에 타이어 코드용 펄프를 위해 사용되었다. 바이칼스크 마을이 도시로 성장하게 된 것은 이 공장 덕분이었고, 활발하게 돌아가는 콤비나트는 이웃도시 슬류쟌카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하지만 공장에서 흘러나온 폐수로 인해 바이칼이 오염에 시달리게 되자, 1970년대 말 이르쿠츠크에서는 ‘바이칼 펄프·제지 콤비나트’의 폐쇄를 요구하는 수많은 집회들이 열린다. 소련이 사라진 1996년 8월 28일에는 콤비나트에 반대하는 러시아의 그린피스가 행동을 취해, 공장의 파이프에 올라서서 플래카드들을 펼치고 게이트에서 기자 회견을 열기도 했다.
바이칼 펄프 및 제지 콤비나트의 모습. 사진/위키미디어 커먼스(세르게이 소르스키 사진)
긴 논란을 거친 후 바이칼 펄프·제지 콤비나트는 2013년 12월 25일에 작업을 중단했고, 3일 후인 12월 28일 푸틴 대통령은 폐쇄된 공장 영토에 ‘러시아 보호구역’이라는 엑스포(expo) 센터를 설립하는 법령에 서명했다. 논의 과정 중 콤비나트의 모든 직원들이 다시 고용될 것이라는 말도 나왔지만, 바이칼스크 견학 그룹의 안내인이 내 질문에 대답한 내용으로 판단한다면, 그 말은 실현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럼 거기서 일하던 사람들은 어떻게 됐나요? 그들의 일은요?” “일을 잃고 생계수단이 없어진 거지요. 바이칼스크도 사는 게 어려워졌습니다.” “국가가 배상 같은 걸 안 해줬나요?” “우리나라 경제 상황이 현재 많은 도시에서 그렇기 때문에 국가가 모두를 도울 형편은 아니지요.” 외국인 앞이어서인지, 자신이 사는 도시의 경제는 어렵지만 정부를 탓하지는 않으려는 듯한 태도가 그의 말에서 느껴졌다. 그가 덧붙인다. “바이칼스크에 비하면, 슬류쟌카에는 철도차량기지가 있어서 일이 있어요. 이르쿠츠크에는 항공기 제작 공장과 중장비 공장이 있고요. 그런데 바이칼스크 주민들은 장과류(漿果類, 베리 종류)를 재배하고 숲에서 채집을 하고 낚시를 합니다.”
쥐갈로프가 광물 수집 탐사를 다니면서 찍은 사진들이 그의 갤러리에 전시되어 있다. 사진/필자 제공
슬류쟌카의 영락(榮落)에 대한 단상
이제, 눈치 빠른 독자들은 슬류쟌카 경제의 두 축이 철도운송과 광업이라는 것, 거기에 기초해 발전한 도시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곳은 철도차량기지가 있고 많은 운송화물이 통과하는 곳이다. 숙소 주인 따냐가 슬류쟌카에 철도업만 남았다고, 철도 정비사가 제일이라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겠다. 앙가르스크의 시멘트 공장용 광석 원료와 도로를 채우는 대리석 조각, 목재를 실은 차량들이 매일 수십 대씩 슬류쟌카에서 출발한다.
광업과 관련해 자료를 찾아보니, 이곳에서 1973년까지 운모가 채굴되었고 1990년대 초까지 대리석 채굴과 가공, 마감재 및 외장재 생산이 이뤄졌다고 한다. 지금은 슬류쟌카 강과 뽀하비하 강의 수로를 나누는 능선에 위치한 ‘뻬레발(고갯길)’ 광산 채석장만 남아 앙가르스크 시멘트 공장에 시멘트 원료를 공급하고 있다.
슬류쟌카의 길에서는 바닥에 깔린 대리석 조각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사진/필자 제공
또한, 슬류쟌카 부근에 남바이칼 생선통조림 공장이 운영되었고 현지의 내화 점토를 사용한 벽돌공장이 혁명 전 시기부터 유지되어 왔지만 이제는 다 사라졌다. 1950년대 후반 이르쿠츠크 저수지의 건설로 인해 바이칼의 수위가 점점 상승함에 따라 현지 원료 기지는 급격히 감소하고 공장은 수입된 해양 원료를 가공하는 곳으로 전환된다. 그리고 마침내 1997년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생선통조림 생산이 중단되었다.
1996년 4월 1일 기준 슬류쟌카의 인구는 4만6414명이라 적혀 있는데, 바이칼스크에서 온 견학 안내인은 2019년 슬류쟌카의 인구를 약 1만8600명, 바이칼스크의 인구를 약 1만3000명이라고 말했다. 자료들도 약간씩 편차는 있지만 거의 그 수준이다. 2019년 슬류쟌카의 인구는 1996년에 비해 반절이 훨씬 넘게 줄었다. 일거리가 없는데 떠나야지 어쩌겠는가. 그림 같이 예쁜 집들이 고즈넉한 첩첩 산들에 둘러싸여 동화 같은 정경을 이루고 있는데, 먹고 살 길이 바쁜 주민들의 표정은 바이칼 호수처럼 물속에 잠겨 있고 슬류쟌카에 내리는 비처럼 젖어 있다.
숙소에서 만난 폴란드 화학자
5인용으로 만들어진 숙소의 다인실에는 그칠 줄 모르고 내리는 슬류쟌카의 비와 잿빛 하늘을 뚫고 나온 듯 밝은 표정의 여행자가 짐을 정리하고 있다. 화학 전공의 연구자인 아쉬까는 폴란드 도시 슈체친의 웨스트 포메라니안 공과대학교 소속이다. 현재는 러시아 연방 내 타타르스탄 공화국의 수도 카잔의 카잔 국립공과대학에서 인턴쉽을 하는 중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고 한다.
그녀가 슬류쟌카에 온 이유는 광물과 암석으로 가득 찬 산을 트랙킹 하는 것. 그러나 주야장천 내리는 비 때문에 적이 실망한 상태로 포기해야 했던 그녀는 밤기차를 타기 전 나와 함께 마을을 산책하며 여러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소련 시절의 폴란드와 러시아, 우크라이나 사이에 벌어진 역사부터, 시베리아로 추방·투옥되었다가 석방된 후 지질학을 연구해 유명해진 폴란드 학자이자 탐험가 얀 체르스키, 이르쿠츠크 외곽의 폴란드인 마을 베르쉬나, 그리고 자신의 러시아 체험담까지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펼쳐진 것이다!
멀리 보이는 슬류쟌카의 산은 다양한 광물들을 품고 있다. 사진/필자 제공
박성현 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원 역사학 박사(percepti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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