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사회의 도래는 시나브로 우리의 일상생활을 바꾸고 있다. 온라인쇼핑이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의 매출을 추월했고, 젊은 사람들은 식당 밥이 아닌 배달음식에 익숙하다. 배민과 요기요를 한 번도 이용하지 않았다면 중늙은이 소리 듣기 십상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9년 12월 및 연간 온라인쇼핑 동향'에 따르면 19년 온라인쇼핑 거래액은 134조5830억원으로 전년대비 18.3% 증가했다. 여기에 모바일 쇼핑거래액은 전년대비 25.5% 증가한 86조7005억원으로 전체 거래액 가운데 64.4%를 차지한 최대 수치였다. 배달 주문 등 음식서비스는 전년보다 84.6%가 증가했고 그 중 모바일 거래액도 90.5% 급증했다. 당일 새벽 배송서비스를 통한 식음료품 온라인 거래액도 26.1%가 늘었고 모바일거래액도 32.5% 증가했다.
디지털사회 전환에 따른 일하는 방식 및 소비 패턴 변화는 되돌릴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다. 전통시장과 도소매업의 어려움을 경기 상황이나 최저임금 탓으로 돌려서는 해법을 찾을 수 없다. 근본 원인은 온라인쇼핑과 플랫폼 경제의 활성화를 가져온 간편 결제 등 기술 발전과 배송 경쟁력 강화에 있다. 전통시장을 무너뜨렸던 대형마트도 온라인쇼핑 성장에 밀려 지난해 매출이 5.1% 급감했다.
디지털사회 도래는 모든 일과 직업의 모습을 바꿔 놓는다. 그 흐름 중 하나는 로봇기술이 공장으로 들어온 것이며, 다른 하나는 디지털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네트워크 형성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한 경우이다. 전자는 기계가 인간의 역할을 대신하여 일자리 감소 우려를 낳지만, 후자는 전통적인 전일제 정규직 고용관계를 벗어나는 다양한 고용 유형이 탄생하면서 일자리 질 하락을 가져온다. 플랫폼과 연계된 네트워크 경제의 발달은 새로운 노동을 양산하지만, 그 노동은 우리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 그레이와 수리(Gray and Suri, 2019)는 이들을 '고스트워크(Ghost work)'라 명명한다. 첨단 디지털 기술과 인공지능이 노동자를 대체할 것이라는 주장이 거짓임을 고발한다. 인터넷 및 가상공간 내부에서 보이지 않는 노동이 확산되고 있으며, 이 새로운 노동은 과거의 전통 노동과는 확연히 구분된다. 자동화되었다고 생각하는 시스템 뒤에는 수많은 감추어진 유령노동이 존재한다.
직업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감춰져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될 뿐이다. 이 업무는 정규직 노동자들 대신 독립노동자들에게 그날그날 맡겨진다. 이들은 인터넷 상에서 고객과의 질의응답, 상품평 편집, 계정 관리, 음식 배달, 운전 등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일을 묵묵히 실행한다. 이들은 정규직이나 파트타임이 아니라 프리랜서나 자유 계약직 신분이다. 디지털사회가 만들어 내는 고용의 미래는 9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하는 전통 노동의 파괴가 분명하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고용형태의 이분화를 뛰어넘는 고용의 다원화가 본격화되어 노동의 단결과 연대를 뿌리째 흔들어 놓는다.
미래의 일자리는 단기 고용의 비전형노동으로 대체되는데 이런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법률은 존재하지 않는다. 공유경제라는 온디맨드 플랫폼은 온라인상에서 인간의 노동을 사고 팔 수 있도록 주선해서 돈을 벌지만 책임은 지지 않는다. 사적 소유와 이익 독점은 공유경제라는 이름 속에 은폐된다.
플랫폼노동자들의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고용정보원의 추산 자료를 보면 2018년 기준 54만8000명에 달한다. 전체 취업자의 1.7%~2.0% 수준이다. 그런데 플랫폼노동자들의 고용보험 적용 비율은 평균 34.4%다. 임금노동자 중 정규직의 고용보험 적용률인 84.1%의 절반도 안 되며, 비정규직의 40%에도 못 미친다.
디지털 기술의 성장과 발전은 계속해서 유연한 작업 처리 방식의 도입을 촉진하고 가속화 할 것이다. 디지털 경제에 가장 강력한 트렌드는 유연하고 비표준적인 형태를 가진 수많은 일자리의 출현이다. 구글과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등 디지털 인공지능 혁신의 밑바닥에도 인간의 노동이 깔려 있다. 일국을 벗어나 이들 네트워크가 작동하는데 세계의 저임금노동자들이 동원된다. 디지털 경제의 등장으로 일자리 수 및 작업의 변화에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 사업에 많은 여성들이 종사하고 있다. 디지털 경제에 따른 변화는 성 중립적이지 않는 구조적 차별을 내포한다.
이제 디지털사회, 플랫폼 노동이 어떤 형태로 발전해야 좋을지를 기업, 노동자, 사회가 결정해야 할 시점이다. ‘장밋빛 미래’인가 아니면 ‘바닥을 향한 질주’를 하게 될지는 우리가 만드는 제도 및 노동자들의 협상력 수준에 달려 있다. 노동자로 일하지만 현행법상 노동자로 인정되지 않는 유령 노동자들이 스스로 나설 때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두에서 새로운 노동조합 모델을 구축해 나가야 한다. 전통적 고용관계에 조응하는 사회보험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사회안전망 강화 이상의 의미를 가져야 한다. 자본이 로봇과 디지털 네트워크로 무장한다면, 노동자는 소득보장제도 강화를 통해서 협상력을 키워야만 인간의 품위를 유지하면서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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