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 뉴스토마토 황인표기자] 일본 도쿄 거리에서 젊은이들에게 "어떻게 재테크를 하느냐?"고 물으면 어색해한다. 재테크란 말 자체가 20년전에 이미 사라졌기 때문이다.
40~50대 중장년층만 어렴풋이 "아, '자이(財)테크놀라지'를 말하는 군요"라고 대답할 뿐이다.
저금리와 경기침체로 일본에 재테크는 없었다. 일본 시중은행의 예금금리는 0.5~1%, 적금금리는 최저 0.04%에 불과해 적금에 우리돈 1억원 정도 돈을 맡길 경우 1년 이자는 4만원 정도만 나온다. 은행 가는 교통비가 아깝다는 생각에 일본인이 그냥 옷장에 두는 돈(단쓰예금)만 16조엔(약 200조원)에 이른다는 통계도 있다.
◇ 장기 저금리 이유는?
장기적인 저금리 배경에는 두 요인이 복합적으로 얽혀있다. 먼저 지난 20년간 부동산값 하락 등 경기침체기를 겪으면서 원금마저 크게 손실되자 일본인에게는 수익률보다 원금보장이 우선이 됐다.
전직 은행원인 30대 후반 주부 후리꼬매 사가씨는 "이자가 높다면 그 뒤에 뭔가 위험요소가 있을 것이라 걱정하는 성향이 있다"며 "일단은 원금 보장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다쿠라 전 미즈온 은행지점장 역시 "일본은 한국에 비해 저금리가 일반화돼 있다"며 "위험성 회피 경향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둘째로 정부가 금리 인상을 억누르고 있다. 일본 은행 대출금리는 2~3%대에 불과한데 가계와 기업을 위해 정부가 인위적으로 대출금리를 조정한다. 가계는 싼 금리에 주택구입자금을 빌릴 수 있고 기업 역시 손쉽게 운용 자금을 대출받도록 배려한 것이다.
여기에다 지난 불황기에 쓰러진 가계와 기업이 많았기 때문에 과도한 빚을 지더라도 빨리 회생할 수 있도록 배려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저금리를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일본에서는 부모로부터 많은 자산을 상속받거나 자신이 은퇴할 때 받는 퇴직금으로만 돈을 굴린다. 이같은 추세를 재테크 대신 '개인자산운용'이라고 부른다. 이마저도 원금보장이 중요하지 금리 높은 상품을 일부러 찾진 않는다.
◇ 점심에도 증권가 한산
도쿄에 있는 일본증권업협회 인근은 증권사 지점으로 가득하지만 서울 여의도만큼 활기찬 분위기를 찾기가 어려웠다. 점심 시간이었지만 사람들의 왕래는 거의 없었다. 인구비율로 우리보다 3배 정도 많다는 320여개의 증권사가 어디에 있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실제로 일본인들은 거의 증권 투자를 하지 않는다. 사카 다카오 일본 증권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유럽재정위기로 그마저 있던 증권 투자가 줄었다"며 "정부에서도 별다른 투자책을 제시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일본 개인운용자산 비율 (2009년 기준)>
상 품 |
비율 |
저축성상품
|
55% |
보험상품 |
30% |
안전 투자 상품(국채, 채권 등) |
15% |
(자료 : 일본증권업협회)
재작년 경기가 좋을 때 국채와 해외펀드에 투자붐이 잠깐 일어 브라질 펀드의 경우 무려 8.5%의 이자를 주기도 했다. 하지만 '리만쇼크(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이마저 종적을 감춰버렸다고 한다.
사카 연구원은 또 "최근 일본내 증권투자는 계속 하락세"라며 앞으로의 전망도 부정적으로 봤다.
최근 한일 직장인의 재테크 관련 보고서를 봐도 일본인의 위험 회피 성향을 쉽게 알 수 있다. 한국인은 부동산에 의지하려는 반면 일본인은 퇴직금, 예적금을 선호하는 경향이 크다.
<퇴직 후 중요하게 여기는 자산 형성 방법은?>
(자료 : 피델리티 보고서, '샐러리맨 일한비교(サテリ?ヌソ日韓比較) 2010. 5)
남부 츠루히코(南部鶴彦) 카큐수인(學習院)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투자에 대해 신뢰를 주지 않고 혼란을 주면서 일본 경제가 침체에 빠졌다"며 정부 정책의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하기도 했다.
대학생도 홈트레이딩시스템(HTS)로 증권투자에 나서는 한국, 이에 반해 60세 이후 평균 2000만엔에 이르는 퇴직금을 받아도 돈 굴릴 방법을 모르는 일본.
재테크에 있어서도 한국과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였다.
만약 우리나라가 장기 저성장의 덪에 걸린다면 일본의 전철을 답습할 게 자명하다. 안정성이 미래 재테크의 제1덕목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일본의 실패는 우리에게 반면교사(反面敎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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