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국내 경제의 주축 중 반도체와 조선업에 모처럼 훈풍이 불고 있다. 글로벌 반도체 1위 삼성전자와 액화천연가스(LNG) 수출 1위국인 카타르가 거액의 투자계획을 밝힌 덕분이다.
1일 삼성전자는 10조원 규모 메모리 반도체 투자에 이어 8조원을 낸드플래시에 투자하겠다고 발표했고, 카타르도 국내 조선업체들이 오랫동안 학수고대하던 LNG 선박 100척 발주 의사를 내비쳤다.
이들의 투자로 인해 관련 업체들은 일감이 생겼고 해당 기업의 실적도 크게 개선될 전망이다. 물론 주가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수혜 늦게 받는 반도체 소재주 ‘길목 지키기’
삼성전자(005930)는 평택캠퍼스 2라인에 낸드플래시 생산라인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10조원 규모로 극자외선(EUV) 파운드리 라인을 만들겠다고 밝힌 지 불과 열흘만이다. 여기에서 최첨단 V낸드 제품을 양산할 예정이다.
낸드(NAND)플래시는 메모리반도체의 일종이다. 컴퓨터나 스마트폰의 처리속도를 좌우하는 메모리(RAM)가 D램이고, SSD 같은 저장장치가 낸드플래시다. 파운드리(Foundry)는 다른 기업들이 설계한 시스템 반도체를 주문생산하는 것을 말한다. 시스템반도체는 중앙처리장치(CPU) 등 컴퓨터 및 스마트폰의 두뇌를 맡는 장치다. 인텔의 CPU, 퀄컴의 AP가 대표적이다.
삼성전자는 이 낸드플래시 라인에서 내년 하반기부터 제품을 양산하겠다고 밝혔다. 투자가 최소 1년반 정도 진행된다는 의미다. 반도체 생산라인을 만들기 위해서는 공장을 지어 설비와 제조장비를 갖춰야 한다. 이후 테스트를 거쳐 반도체를 양산하고 검사하는 단계를 거치게 된다.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투자에 이어 낸드플래시 라인 투자를 발표하면서 관련 수혜업체들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사진은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P2라인 공사현장. <사진/뉴시스>
이 모든 과정에 연관된 기업들이 수혜를 받게 될 것이다. 단, 실제로 그들의 매출 실적으로 잡히는 시기엔 시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공장을 짓는 건설업체가 가장 먼저일 것이고 공장 안에 클린룸 등 설비를 설치할 기업이 다음 차례다. 그 이후 제조장비가 들어올 것이고 다 갖춰진 후에 반도체를 생산하게 될 테니 부품과 소재업체가 끝단에 있다.
이런 순서가 주가에도 반영되고 있다. 삼성전자 투자 발표와 함께 관련주들이 모두 주목받고 있으나 그중에서도 주가가 많이 오른 기업들은 과거에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지은 이력이 있는 설비업체들과 장비업체들이다. 반도체 부품 및 소재 업체들도 상승세를 보였지만 상대적으로 덜 올랐다.
그렇다면 좀 더 긴 호흡으로 ‘길목 지키기’ 투자를 한다면 장비주보다는 소재주 쪽을 선택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실적에 반영되는 시점은 남보다 늦지만 반도체 생산에 재료가 계속 쓰이기 때문에 장비처럼 일회성 실적이 아니라 지속적인 수혜를 누릴 수 있다. 특히 소재 분야는 일본 기업 의존도가 높았으나 정부의 ‘소부장’(소재·부품·장비) 키우기로 지원이 집중되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내년에는 반도체 업황도 개선될 전망이라고 하니 1년을 내다보고 투자하는 것도 좋겠다.
원익머트리얼즈는 지난해 업황 부진에도 2000억원이 넘는 매출을 기록하는 등 꾸준히 성장했다. 매출 비중의 80%가 삼성전자에서 나온다. D램이 미세화되고 낸드플래시가 고층화될수록 필요한 특수가스의 양도 많아져 매출이 점점 늘어나는 구조다.
솔브레인(036830)은 반도체 산화막의 식각(에칭)과 세정에 사용되는 화학액을 공급하는 기업이다. 불화수소산(HF)이 주력으로 삼성이 기존 일본 기업에게서 공급받던 것을 솔브레인의 불화수소산으로 대체한 덕분에 지난해 매출이 1조원을 돌파했다. 반도체가 고도화될수록 많이 쓰인다는 점에서 특수가스와 닮았다.
포토레지스트(감광액)는 빛의 노출로 웨이퍼 위에 반도체 회로 패턴을 만드는 노광 공정에 필요한 소재다. 여기엔 불화크립톤(KrF)와 불화아르곤(ArF)이 많이 쓰이고 이걸
동진쎄미켐(005290)이 만든다. 공장을 증설해 생산량도 2배 늘릴 방침이다.
문제는 동진쎄미켐의 두 소재가 기존 일본 제품에 비해 미세공정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 동진쎄미켐은 삼성에 EUV 포토레지스트를 공급하는 벨기에 기업 IMEC와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특수가스나 식각액, 감광액 등은 모두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제재’와 밀접한 최첨단 소재라는 공통점이 있다. 일본과 마찰을 빚으면서 국산화가 진행됐으나 감광액처럼 아직 해결하지 못한 소재도 있다.
또 다른 공통점은 이들이 만드는 소재가 반도체 뿐 아니라 디스플레이업체에도 들어간다는 점이다. 반도체 업황이 좋아도 디스플레이가 힘들면 전체 실적에 영향을 받게 된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학수고대한 LNG선박 수주, 드디어 터졌다
1일 보도된 카타르발 LNG선 발주 소식은 올해 수주 목표 달성에 어려움을 겪던 국내 조선업계에 엄청난 호재임에 틀림없다. 이 외에도 프랑스 토탈도 150억달러 규모의 선박발주 금융을 확보했다고 밝힌 바 있고, 러시아 야말 LNG선 프로젝트도 다시 재개할 수 있어 추가 수주 기대감이 남아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 선주들의 발주가 미뤄지고 있으나 이번 수주로 업황이 정상화될 때까지 버틸 수 있는 큰 힘이 됐다. 일단 이 100척을 만들려면 국내 조선 3사의 도크는 가득 찬다. 그러면 컨테이너선박이나 LPG선박 등을 발주해야 하는 선주들도 서둘러야 하고, 자연스럽게 수주가격도 오를 수 있다. 또 다른 중소형 조선사들도 ‘빅3’가 맡지 못하는 배를 건조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카타르가 LNG선박 100척 발주를 예고한 덕분에 오랜 기간 고전한 국내 조선업체들도 숨통이 트일 것으로 기대된다. 사진은 현대중공업이 만든 LNG 운반선. <사진/현대중공업>
하지만 이번 수주로 레버리지 효과를 얻을 곳은 조선기자재 업체들이다. 평소 실적에 비해 큰 물량을 수주할 수 있어 주가에도 민감하게 작용한다. 수주 소식이 전해지고 첫 거래를 맞은 2일 오전 세진중공업, HSD엔진, 비엠티, 화인베스틸, 하이록코리아 등의 주가는 10% 넘는 강세를 나타냈고, 케이에스피, 오리엔탈정공은 상한가로 직행했다.
LNG선박 수주를 가장 기다린 업체는
동성화인텍(033500)과
한국카본(017960)이다. 기체 상태의 천연가스를 배로 운반하려면 액체화해야 하고 이를 보관하려면 초저온을 유지해야 한다. 동성화인텍과 한국카본이 LNG를 보관하는 데 필요한 초저온 보냉재를 공급한다. 조선소 수에 비해 보냉재 공급기업 수가 적어 2018년 하반기부터 보냉재 가격(P)이 오르고 있다는 점이 포인트다. 이제는 수요(Q)가 더 증가하게 됐으니 Q와 P가 모두 좋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김홍균 DB금융투자 연구원은 “조선3사가 LNG운반선을 수주하고 보냉재를 아직 발주하지 않은 물량이 상당하다”며 “2분기부터 보냉재 원재료(MDI) 가격이 하락해 수익성도 개선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 선박의 연료 탱크와 저장시설을 만드는
세진중공업(075580)도 대표적인 수혜주다. 지난달에는 현대중공업으로부터 144억원 규모 LNG추진 컨테이너선의 LNG탱크 5기를 수주하기도 했다.
HSD엔진(082740)은 선박엔진을 만든다. LNG 운반선은 모두 LNG를 연료로 함께 쓸 수 있는 이중연료 선박이기도 한데, 굳이 LNG 추진선이 아니라도 상관없지만 석유연료 엔진에 비해 수익성이 좋다는 장점이 있다. 또 100척이나 수주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박무현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HSD엔진의 매출 실적에서 LNG추진과 LPG추진과 같은 2중연료 추진엔진의 비중이 올라가고 있다며 2~3년 후 HSD엔진 매출의 거의 대부분이 2중연료 추진엔진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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