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북한이 9일 대북 전단 살포에 반발해 앞으로 한국 정부를 '적'으로 간주하겠다면서 남북 간 모든 연락 채널을 차단했다. 지난해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휘청이던 남북 관계가 4·27 판문점 선언 이전으로 후퇴할 위기에 처했다. 정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소통을 위한 기본 수단은 유지돼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북남 사이의 모든 통신연락선들을 완전 차단해버리는 조치를 취함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보도를 통해 "9일 12시부터 북남 공동연락사무소를 통해 유지해 오던 북남 당국 사이의 통신연락선, 북남 군부 사이의 동서해통신연락선, 북남통신시험연락선, 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와 청와대 사이의 직통통신연락선을 완전 차단·폐기하게 된다"고 전했다.
사진은 2018년 9월 당시 개성공단에서 열린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소식에서 사무소 외벽에 대형 한반도 기가 걸려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통신은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과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이 전날 대남사업 부서 사업총화회의에서 이같은 지시를 내렸다고 설명했다. 김 제1부부장이 지난 4일 담화를 통해 "탈북민 대북전단 살포를 맹비난하면서 남한 당국에 응분의 조처를 하지 않을 시 연락사무소 폐쇄 등을 각오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한 데 따른 조치인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북한은 이날 남북 공동연락사무소와 동해·서해지구 군 통신선의 업무개시 통화에서 응하지 않고, 함정 간 국제상선공통망 전화에도 응답하지 않았다. 북한의 연락채널 폐쇄는 2018년 1월2일 후 2년5개월만이다.
청와대는 북한의 이같은 조치에 공식 입장은 내놓지 않은 채 국가안보실을 중심으로 의도 분석과 대응책 마련에 집중했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는 이날 소집하지 않았고 남북 정상 간 핫라인 가동 여부도 밝히지 않았다. 통일부는 "남북간 통신선은 소통을 위한 기본 수단임으로 남북간 합의에 따라 유지돼야 한다"며 "정부는 남북 합의를 준수하면서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위해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외교부는 북한이 남북 간 모든 연락 채널을 차단한 것과 관련해 "미국 측과 상시 긴밀히 소통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북한이 지난해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쌓였던 불만을 대북 전단을 빌미로 쏟아내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또한 북한 당국의 내부 단속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은 KBS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서해 군 통신선도 끊고 연락사무소 간에 직통전화도 끊었지만 판문점 라인은 아직 살아 있을 것"이라며 "급한 일이 있으면 판문점을 통해 전통문을 주고받는 식으로 남북회담은 또 살려낼 수 있다. 조금 진득하게 기다릴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북한이 첫 조치로 공언했던 연락사무소 철폐를 비롯해 모든 통신연락선을 끊겠다고 밝힘에 따라 추가조치로 9·19 남북군사합의를 파기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북한은 이번 조치가 "일체 접촉공간을 완전격폐하고 불필요한 것들을 없애버리기로 결심한 첫 단계의 행동"이라며 추가 조치를 시사했다. 앞서 북한은 지난 4일 김여정 제1부부장 담화를 통해 연락사무소 폐쇄, 개성공단 완전철거, 9·19 군사합의 파기 가능성을 거론했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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