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경 사회자본연구원장
아파트 분양이나 재건축을 눈앞에 둔 사람 말고는 누구나 부동산 거품을 걱정한다. 미래세대들에게는 천문학적 수준으로 오른 집값이 엄청난 압력으로 작용한다. 경제원론에서는 주택 공급량이 부족해서 가격이 오른다고 설명할 것이다. 그러나 "주택공급 물량부족이 가격상승을 주도한다"는 프레임은 분명 주택정책의 덫이다. 주택문제를 입체적으로 살펴보면 불편한 진실이 드러난다.
"문재인정부에서의 아파트 공급물량이 박근혜정부를 능가한다"는 분석은 건설 설계와 공급 간의 시간차 탓이다. 즉 지난 정부 아파트 정책의 추급효 때문이다. 외지인들이 서울내(In Seoul) 아파트를 노린다면, 그것은 수도권의 교통체계가 불편한 탓이다. 공급량 부족 타령은 수요공급 이론을 내세워 건설경기를 부양하려는 토건세력의 기획이다. 대통령이 "주택공급을 늘려 부족분을 해소하라"고 장관에게 지시함은 주택정책이 여전히 공급부족 프레임에 갇혀 있음을 시사한다.
현정부에 들어 집값이 40%나 올랐다는 주장은 두고두고 치적에 악재로 작용할 것이다. "건설경기가 늘면 전체 경기가 활성화되고 정부 지지율도 올라간다"는 가설을 벗어나야 한다. 이준구 서울대 명예교수의 지적처럼 주택임대사업자 제도 자체가 암 덩어리는 아니다. 많은 국민이 차액(gap) 투자 맛을 아는데 임대사업자를 없앤다고 사태가 해결되지 않는다. 규제(분양가상한제)만으로 집값이 잡히지 않는다. 경제정의를 세워야 한다. 낡은 집을 허물고 새집을 지으면서 돈까지 번다는 신기루도 화근이다. 정책·세제를 근본적으로 개혁하여 올라간 집값(거품)을 내려야 한다.
그간 아파트는 선물거래 방식을 따랐다. 장래 특정한 시점의 가격을 지금 정해서 거래하는 방식인 선물 거래는 그간 석유·곡물·주식에서 즐겨 이용되었다. 선물은 공급물량이 귀할 때 안정적 선점효과가 있다. 이것이 선분양으로 둔갑하였다. 선분양 제도는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 제7조(입주자모집시기 및 조건) 및 제26조(입주금의 납부)에 따라 운용된다. 건설관료들이 반대하겠지만, 아파트 선분양 제도를 후분양으로 돌려야 한다.
선분양은 주택청약제도 및 청약관련저축제도, 분양가격규제, 분양권전매제도 등과 연계되어 있으며, 주택건설촉진법에 따른 분양보증제도와 연계된다. 사업 주체가 주택이 건설되는 대지의 소유권을 확보하고, 대한주택보증으로부터 분양보증을 받으면 착공과 동시에 입주자를 모집하고 주택이 완공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입주자의 자금 동원이 가능하다.
선분양 제도하에서 주택사업자들은 입주자들이 내는 계약금과 중도금, 잔금을 받아야 집을 짓는 것이 가능하므로 건설업체는 자금조달 능력이 없어도 주택을 지어 팔 수 있다. 따라서 선분양제는 주택건설자금 확보가 쉬어 주택공급을 늘리는 장점이 있다. 또 소비자에게는 분양가격 규제 및 가격상승기에 수익자산의 확보라는 이점을 제공한다. 그러나 소비자는 주택가격의 80% 정도를 완공 이전에 납부해야 하는 위험부담을 안아야 하며, 고가의 재산을 완제품을 보지도 않고 사전에 구입해야 하는 불리함이 있다.
선분양제도는 분양권 전매를 통한 투기과열로 주택시장을 교란시키고, 확정분양가격 및 분양가격 자율화 등과 맞물려 주택가격의 상승요인으로 작용하는 부작용을 야기했다. 그럼에도 금융시장의 불비를 이유로 구태가 지속된다. 마치 개혁에 대한 저항처럼 경제정의를 무시하는 관행이 유지된다. 작금 우리 부동산 시장은 공급물량이 문제가 아니라 투기수요가 문제다. 투기의 첨단을 달리는 선물방식을 본받을 일이 아니다. 불난 곳에 자꾸 기름을 부을 일이 아니다.
나아가 재건축·재개발 사업자들이 반대하지만, 경제정의에 기반을 둔 철저한 과세로 재건축·재개발 차익을 없애야 한다. 업계가 반대하겠지만, 주택임대사업자 과세특례를 없애고 공공임대를 늘려야 한다. 부동산 경기를 유지하여 경기를 활성화시킨다는 구식 프레임을 벗어나 재래산업 구조조정을 통하여 그린뉴딜을 추진한다. 그린뉴딜이라고 하여 재생에너지와 첨단산업에만 몰입할 일이 아니다. 경기 활성화 비결은 지속가능한 농림수산업과 재래식 산업에도 있다.
요원하게 들리겠지만, 지방의 빈집들을 리모델링하고 일자리를 늘려 대도시 인구집중을 분산시켜야 한다. 하지만 지지율 하락을 우려하는 정권 후반에 이런 개혁이 가능할까? 케인즈식 유효수요론에 매달려 있는 당국자들과 참모진의 한계를 본다. 압승 분위기에 젖어 있는 여당이 개혁에 박차를 가하지는 않을 것이다. 국회는 개혁 주도세력이 아니다. 백년하청이겠으나 차기 대권주자들이 실천하여야 할 과제들이라고 생각한다.
전재경 사회자본연구원장(doctorchun@naver.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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