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준형 기자]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전환사채(CB) 콜옵션(매도청구권)을 활용해
현대무벡스(319400) 지배력 강화에 나섰다.
현대엘리베이(017800)터 물류 자동화 사업 부문이 별도 자회사로 분리되면서 설립된 현대무벡스는 현대그룹 계열사 가운데 가장 성장성이 높은 회사로 평가받고 있다. 현 회장은 콜옵션 행사를 통해 향후 성장전망이 높은 현대무벡스의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게 됐다. 다만, 일각에선 전환청구 기간이 도래한 CB로 인한 ‘오버행’(잠재적 매도물량) 이슈가 주가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정은 회장, 현대무벡스 CB 20% 콜옵션 행사…평가차익 31억원
(표=뉴스토마토)
2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현정은 회장은 지난달 28일 기발행된 200억원 규모의 CB의 20%에 해당하는 40억원에 대해 콜옵션을 행사했다. 전환가액은 2050원이며, 신주 상장될 물량은 총 195만1216주로 발행주식 대비 1.86%에 해당한다. 산주 상장 예정일은 이달 16일이다.
이번 콜옵션 행사로 현 회장의 지분율은 기존 25.31%에서 26.67%로 증가하게 된다. 인수자금은 외부에서 조달했다. 현 회장이 소유한 현대엘리베이터 주식 7.83% 중 0.31%(12만6622주)를 담보로 제공했으며, 하나금융투자와 한국증권금융에서 각각 30억원, 15억원을 빌렸다.
이번 콜옵션 행사로 늘어난 지분율이 크진 않지만 현 회장의 CB 투자수익은 높다. 현대무벡스의 현 주가가 3660원(2일 종가 기준)으로 전환가를 78.54% 웃돌고 있다. 현주가 기준 평가차익은 31억원에 달한다. 현대무벡스 CB의 콜옵션 가능 수량이 아직 남아있는 만큼 추가적인 지분확대도 가능할 전망이다.
앞서 현대무벡스는 지난 2020년 6월 200억원 규모의 CB를 발행했다. 발행 대상자는 KB자산운용이 운용하는 ‘KB 메자닌 전문투자형 사모 증권 투자신탁 제3호’다. 현대무벡스는 해당 CB를 발행하면서 전체 물량의 40%에 대해 콜옵션을 부여했다. 이번 콜옵션에서 20%의 물량을 행사했으니 나머지 20%에 대한 추가 콜옵션 행사도 가능할 전망이다.
현대무벡스, 현대그룹 재기 핵심…물류투자 확대로 실적 전망도↑
현대무벡스는 현대그룹 재기의 핵심으로 꼽히는 만큼 지분 확대를 통한 지배력 강화는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주요 계열사를 모두 넘긴 현대그룹은 현대무벡스를 통한 재도약을 노리고 있다. 현 회장의 장녀인 정지이 전무가 현대무벡스를 이끌면서 그룹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자리매김한다는 계획이다.
현대무벡스는 대기업 계열사 중에선 이례적으로 스팩 합병을 통해 코스닥시장에 상장했다. 지난해 3월NH스팩14호와 합병을 통해 코스닥 시장에 상장됐는데, 이는 이번에 주식전환이 청구된 CB와 무관하지 않다. 현대무벡스는 당초 기업공개(IPO)를 통해 자금을 조달할 계획이었으나, 코로나19로 변동성이 커지면서 상장 시점을 미뤘다. 이후 200억원의 CB발행에 성공하면서 추가 자금조달보다는 빠른 상장이 유리할 것으로 판단했다.
실제 현대무벡스의 성장성은 높은 편이다. 현대무벡스의 주요 사업은 물류 자동화와 승강장안전문(PSD)로 구분된다. 연간 매출의 80%가량이 물류 자동화 사업에서 창출된다. 특히 최근 코로나19로 유통물류기업들의 물류투자가 지속 확대되고 있어 실적 전망도 꾸준히 좋아지고 있다.
현대무벡스는 작년 1~3분기 누적 매출액 1626억원으로 연간 기준 최대 매출액이었던 2020년 1975억원 대비 82% 수준을 기록했다. 3분기 말 수주잔고는 연초 대비 늘어난 2416억원으로, 올해도 작년 대비 매출액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김정환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현대무벡스는 지난해 8월 쿠팡 용인 물류센터 장비 수주(243억원)를 받았는데, 쿠팡은 올해 상반기에만 1조원 이상의 물류센터 투자를 발표했다”며 “롯데, 신세계, 네이버, 마켓컬리 등의 물류센터 투자 계획도 발표돼 국내 주요 유통택배업체들의 투자 규모는 지속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무벡스 잔여 CB 780만주 주식전환 가능…오버행 우려도
현 회장이 CB 콜옵션 행사로 지배력 강화에 나섰지만, 아직 남아있는 CB 물량이 오버행 이슈로 이어질 경우 부진한 주가흐름을 보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대무벡스의 미발행 CB는 160억원 규모로 주식전환가능 수량은 총 780만4864주다. 이는 발행주식총수의 7.43%에 해당한다. 특히 전환가액이 2050원으로 현 주가 대비 80%가량 낮아 주식전환청구 후 대량 매도가 가능하다는 지적이다. CB 인수자인 ‘KB 메자닌 전문투자형 사모 증권 투자신탁 제3호’는 이미 126억원의 평가이익을 거두고 있다.
실제 현대무벡스의 경우 지난해 9월 KB자산운용과 BNK자산운용, 앱솔루트자산운용 등의 CB 전환 청구와 ‘블록딜’(시간 외 대량매매)로 주가가 급락한 바 있다. KB자산운용이 320만주를 블록딜 처분한 9월14일에는 하루 만에 주가가 14.82% 급락하기도 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현대무벡스의 성장성에도 향후 주식전환 수량에 따른 오버행 이슈가 이어질 수 있다”며 “현재 모두 주식전환이 가능한 상태인데, 대량의 매물이 출회될 경우 주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박준형 기자 dodwo90@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