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어른’이 없는 사회는 불행하다.
진영을 갈라서 벌이는 패싸움이 일상화된 나라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에서 해방된 직후부터 4.19혁명 전까지 15여년의 그 시대가 그랬다. 극심한 좌우대립은 굴복을 넘어 아예 상대진영의 멸절(滅絶)을 시도할 정도로 증오로 가득 찼고 집요하기까지 했다. 민주주의를 외치는 세력도 과정과 방식이 민주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애써 무시했다. 상대를 쓰러뜨리는 타도가 목표였다.
6.25전쟁을 통해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은 ‘주적’ 북한보다도 내부의 적을 더 미워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 독재타도와 민주화 투쟁의 시대를 넘어선 결과가 지금의 진영대결이라면 참담하고 슬픈 현실이다. 진영을 넘어선 원로는 우리 사회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서슬퍼런 군부독재의 시대에도 김수환 추기경 같은 큰 어른이 있어서 희망이 있었다. 다시 70년 전으로 돌아갔다. 대선은 끝나지 않았고 민주당은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원로의 자리는 한 진영의 대통령이 차지했다. ‘통합과 공정과 평등과 정의’는 취임사에 써먹은 미사여구였을 뿐. 40%의 강성지지층만 잡으면 된다는 인식이 내로남불을 진영의 가치로 자리 잡게 했다.
오죽했으면 문재인 대통령의 5년은 ‘트루먼쇼와 다를 바 없다’는 조롱섞인 비판이 제기될까 되돌아봤으면 좋겠다. 문 대통령도 국민 모두가 아닌 자신을 좋아하는 시청자만 의식하는 대통령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틀간 방송된 손석희 앵커와의 대담에서의 문 대통령은 대통령의 품격과는 거리가 있다. 이 정부가 가장 잘못한 부동산 정책을 비롯한 공과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되돌아보면서 국민들의 이해를 구하는 것이 지도자의 품격이다. 그러나 그의 태도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불과 5년 만에 정권교체 당한 것에 대해 “나는 (대선)링에 한 번도 오르지 않았다”며 대선패배의 책임을 회피하면서도 (자신은)“성공한 대통령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모습에서는 안쓰러움이 묻어나오기까지 했다.
대통령은 재임 중에는 형사소추를 당하지 않는 특권이 있다. 전임 대통령들을 줄줄이 적폐청산으로 몰아 감옥에 보낸 문 대통령이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다. 정권교체에 실패한 민주당과 청와대의 정치적 목표는 퇴임하는 대통령과 대선에서 패배한 이재명 후보 지키기라고 선언한 바 있다. ‘검수완박’은 그런 목표 하에 추진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인간이 사용하고 있는 도구와 제도는 그 나름의 쓰임새가 있다. 숟가락과 젓가락 중 하나만 있어도 음식을 먹는 데는 지장이 없지만 하나만 사용하라고 하면 당장 불편해진다.
흔히들 ‘법 없이도 사는 사람’이라는 말을 하곤 한다. 그러나 법 없이는 살 수 없는 것이 인간 사회다. 검찰과 경찰은 약육강식이 지배하던 인간 사회를 지켜 온 법의 수호자다. 검찰을 악마화한 민주당은 검찰수사권은 정치권력이 통제해야한다는 얼토당토않은 논리로 접근한다. 공직범죄와 선거사범·방산비리 등의 중대범죄에 대한 수사를 왜 정치권력이 통제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유는 없다. 성역없는 수사와 처벌 외에는 정치권력의 일탈을 막을 수 없다. 교도소 담장 위를 아슬아슬하게 걷고 있는 정치권력이 수사를 통제한다는 발상 자체가 범죄적이지 않은가.
검수완박의 최대 수혜자와 최대 피해자가 누구인지를 알면 낯이 뜨겁다. 그런 점에서 검수완박 추진의 조연과 주연은 박병석 국회의장과 문 대통령이다. 국회운영의 키를 쥐고 있는 박 의장의 적극적인 협력없이는 문 대통령의 퇴임 전까지 시한을 정한 법안처리 속도전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박 의장이 의회주의자라는 평소 소신처럼 여야 합의 없이는 본회의 개최 등 국회운영을 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지켰더라면 민주당은 검수완박 추진을 졸속으로 시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국회의장에게는 국회를 중립적으로 운영하라는 책무가 있다. 의장이 당적을 갖지 않고 여야 합의정신을 강조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14·16대 2대에 걸쳐 국회의장을 역임한 이만섭 전 의장은 ‘날치기 처리는 안된다’며 아예 국회에서의 날치기 중단을 선언한 바 있다. 집권당이나 청와대가 압박을 해도 그는 여야가 합의하지 않았을 때는 단호하게 쟁점법안이나 예산의 상정을 거부하고 협상중재에 나서는 의회주의자의 면모를 보였다. 이 전 의장 같은 국회의장이 그립다.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는 대통령이다. 다수당이 편법과 꼼수로 위헌소지가 있는 법안을 통과시키더라도 대통령은 거부권을 통해 문제법안을 무력화할 권한이 있다. 진영간 쟁점이 아니라 한 나라의 사법시스템을 무력화하게 될 법안을 설마 문 대통령이 그냥 잘됐다며 사인할 리는 없지 않을까. 아직까지 그런 일말의 기대를 접지는 않겠다.
서명수 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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