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를 두고 과정을 재해석하자면 작금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가 영토를 확장하거나 우크라이나를 길들이기 위함이 아니라, 러시아가 에너지 패권을 통하여 자국의 경제불황을 탈피하고 세계질서를 재편하겠다는 야심찬 성동격서 전략으로 이해된다. 러시아가 천연가스 수출을 중단하자 독일 등 유럽국가들은 수입선을 다변화하고 있지만 물량·운송거리·비용 등 여러 면에서 애로가 많아 이번 겨울을 겨우 넘기더라도 내년 봄에는 비상대책을 강구할 것으로 전망된다.
예컨대 독일은 일찍이 탈원전에 앞장섰고 천연가스를 주요 에너지원으로 썼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겨울을 넘기기 위하여 그동안 중단하였던 화력발전소를 재가동시키더라도 내년 봄에는 비축 천연가스가 동이 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종래 정지시켰던 원자력발전소 2기를 정비하여 재가동에 들어가는 과제를 검토하는 중이다. 종래 독일 탈원전에 앞장섰던 환경운동가들조차 국제적 에너지난과 인플레이션 앞에서 원전 재가동에 반대하기도 어려워 심히 우울한 겨울을 보낸다.
러시아 발 에너지 패권 전략이 세계질서를 뒤흔드는 가운데, 우리나라에서는 세인들의 관심 속에 울진 신한울 원전 1호기(1400MW급)가 지난 14일 준공되었고 동 2호기가 운영허가절차에 들어갔다. 이로써 우리나라 핵발전소는 영구중단한 2기를 제외하고 25기에 달한다. 아울러 2016년에 건설계획을 확정한 뒤 부지선정과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였던 신한울 3호기와 4호기가 지난 7월부터 2024년을 목표로 건설이 재개되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PRIS)에 따르면, 원자력발전소 기수를 기준으로 우리나라는 2022년 12월 현재 미국(92기), 프랑스(56기), 중국(55기), 러시아(37기), 일본(33기)에 이어 세계 6위를 기록함으로써 원전강국에 속한다.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 체계에 원자력이 편입되면서 종래의 탈원전 정책은 일자리 창출이라는 목표를 내걸고 명실상부하게 친원전 정책으로 바뀌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2020년 발전원가전망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원전건설 단가(2157kWe)는 경쟁국들에 비하여 30% 이상 저렴하다고 알려졌다. 에너지단가로 치면 원전은 10달러 미만인데 태양광발전은 100달러 이상 들어간다.
우리나라 정부는 종래 국제적으로 약속한 탄소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원전을 줄이고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늘리면서 화력발전의 빈 자리를 천연가스 발전으로 충당한다는 포트폴리오를 수립하였으나, 친원적 정책으로 회귀함으로써 재생에너지가 후퇴하는 경로를 밟고 있다. 지난 8월 산업통상자원부 초안에 따르면, 2030년 전원별 발전량 비중에서 원전은 32.8%로 확대된다. 이는 문재인정부의 '국가온실가스감축계획(NDC) 상향안'에서 8.9%포인트 올라간 수치다. 반면에 신재생에너지는 당초 30.2%에서 8.7%포인트가 축소된 21.5%로 하향 조정되었다.
전력거래소 전력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22년 9월 기준 신재생에너지 발전설비 용량(2만7103MW)은 전체 발전총량(13만4719MW)의 20.1%를 차지했다. 국내 태양광·풍력 발전설비 용량(2만2059MW)도 전체 발전량의 16%에 달한다. 이 중 태양광 발전은 15%, 풍력 발전은 1% 가량이다. 그러나 설비용량이 곧 발전량은 아니다. RE100을 표상하는 태양광·풍력 등 온전한 재생에너지 발전은 계절과 야간 및 날씨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용량에 비하여 발전량이 낮다. 한국전력 전력통계월보에 대한 전문매체의 분석에 따르면, 2021년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7.5%였다. 영국의 기후·에너지정책연구소(EMBER)에 따르면, 2021년 한국 전체 발전량 중 풍력·태양광 발전비중은 4.7%에 그친다. 삼성전자가 사용한 전력량(26.95TWh/2021년)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국제 에너지 패권 전쟁 와중에 우리나라 원전의 약진과 재생에너지의 후퇴를 강 건너 불 보듯이 방관할 것인가. 원전은 건설비용과 발전단가가 싸지만 생산원가가 비용의 전부는 아니다. 원전으로 인하여 미래세대들이 부담할 외부비용을 고려하여야 한다. 중국을 제외하고 미국(41기), 영국(36기), 독일(33기), 일본(27기) 및 프랑스(14기)가 중단된 원전들을 관리한다. 에너지경제연구원 발표(2015)에 따르면, 원전비용은 직접비용(건설비용·운영유지비용·연료비용)과 외부비용(건강비용·환경오염비용·사고위험비용·정책비용·사후처리비용)으로 구성된다. 수명이 다한 핵발전소들의 사후관리와 핵폐기물 처리비용을 다음 세대로 고스란히 전가시킴은 환경정의에 부합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후쿠시마 사고 직후 약1조원의 외부비용을 원전관리에 투자하였고 해체비용, 방사성폐기물처리비용 및 지역자원시설세를 발전비용에 포함시켰다고 알려졌지만, 외부효과를 내재화하기 위한 교정적 조세가 없으며 사고위험대비와 건강·환경오염비용이 여전히 미비하다. 사세부득이하더라도 원전은 화석에너지처럼 잠시 이용하여야 할 과도기의 에너지이다. 2030 이후의 대비책이 필요하다. 핵융합 에너지와 같은 미래기술이 상용화되기 전까지 재생에너지원이 장려되어야 한다. 태양광발전과 풍력발전이 녹록갈등을 회피하면서 시장모형의 한계를 넘자면 소태양광·소풍력 등을 기반으로 에너지 자립 공동체를 지향하여야 할 것이다.
전재경 사회자본연구원장(doctorchun@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