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유근윤 기자] 싱가포르 취재에 나서면서 캐시리스(Cashless) 사회를 체험하고자 혹시 모를 비상용 100싱가포르달러만 환전하고 나머지는 실물카드 한 장과 페이앱을 쓸 핸드폰만 챙겼습니다. 애플페이를 쓸 애플 아이폰과 삼성페이를 쓸 삼성 갤럭시 핸드폰을 챙겼죠.
지난달 26일 싱가포르에 도착하니 곳곳에서 "SORRY. NO CASH PLEASE"(현금 안 됨)라며 카드와 페이앱 결제를 권유했습니다. 첫날 공항에서부터 숙소로 이동할 때까지, 배가 고파 간 시내 음식점과 후텁지근한 날씨에 커피 한 잔이 절실했던 카페에서도 지갑을 꺼낼 일은 없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시내니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식당가에서 애플페이로 결제하는 식사를 구매하고 있습니다. 옆에는 "SORRY. NO CASH PLEASE"라며 페이앱·카드로만 결제가 가능하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사진=허지은 기자)
그러나 싱가포르에 머물렀던 일주일 내내 현금을 꺼낸 일은 없었습니다. 마트에서는 셀프 계산대가 즐비해 현금 없이 삼성 페이앱으로 계산했습니다. 음식점에서는 테이블 위에 붙은 QR코드를 스캔해 메뉴를 선택하고 결제까지 진행했습니다. 켄트 리지 로드(Kent Ridge Rd)에 위치한 싱가포르 국립대학교(NUS) 아예 해당 대학이 싱가포르 1위 은행인 DBS 은행과 협약을 맺은 덕에 DBS 은행 결제 서비스 앱인 페이라(Paylah)와 페이나우(Pay Now), 각종 페이앱으로만 계산을 받았습니다.
지난 5일 싱가포르의 한 카페에서 삼성페이로 결제를 하는 모습. 이날 마스터 카드로 결제를 했습니다. 그간 삼성페이는 마스터 카드만 해외 결제 서비스를 지원했는데 지난달 28일 이후부터 비자 카드도 지원합니다.(사진=뉴스토마토)
현금을 썼을 때는 오직 호텔에서 팁을 놓고 나올 때뿐이었습니다. <뉴스토마토> 특별취재팀 중 한 기자는 "500 싱가포르 달러를 환전해 왔지만, 팁으로 4 싱가포르 달러를 준 것 외에는 쓸 일이 없어서 그대로 한국에서 원화로 바꿔야 한다"고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기자 역시 100 싱가포르 달러를 고스란히 가져왔습니다.
물론 싱가포르란 나라가 아예 현금을 쓰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현지 싱가포르인 택시 기사에 따르면 도심 외곽으로 나가게 되면 아직까지 현금을 쓰는 곳도 있고, 차이나타운 등에서는 현금이 통용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싱가포르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전자결제가 가능하고, 쉽고, 편리하기 때문에 안 쓰는 사람들이 없다"는 택시기사의 말입니다.
차량 공유 서비스앱인 그랩을 통해 만난 싱가포르인. 싱가포르에서 그랩 운전수로 활동하면서 현금 받을 일은 거의 없고, 노인분들도 다 E-Pay로 결제하는 것이 보편화 되어있다고 말했습니다.(사진=뉴스토마토)
싱가포르의 버스와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해봤는데요. '현금 없는 버스·지하철'로 운영하는 것도 눈에 띄었습니다. 일정하게 현금을 받아주는 한국과는 달리 싱가포르는 거의 100% 전자결제로 이뤄지는 점은 달랐습니다. 디지털 기기에 취약한 고령자들은 현금 없는 버스와 지하철을 어떻게 이용할까요.
현지인들은 "물론 현금결제가 편한 일부 노인들은 불편을 겪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싱가포르는 특히 고령층을 향한 디지털 금융 교육 서비스가 무척 잘 되어 있기 때문에 다들 익숙만해지만 편하게 사용합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대다수가 적응하고 있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현재 서울시는 436대의 현금 없는 버스를 지난달 1일부터 108개 노선, 1876대로 확대 운영하고 있는데 이는 전체 서울 버스 중 현금 없는 버스 비중이 6%에서 25%로 증가한 셈입니다. 현금 없는 버스가 대폭 늘면서 노인들의 불만도 나오고 있습니다. 2021년 한국은행이 발표한 '지급수단 및 모바일금융서비스 이용행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70대 이상 노인의 최근 1개월 내 현금 이용률은 98.8%였습니다.
한국은 급격한 '현금 없는 버스' 시행에 고령자 등 디지털 취약계층에 대한 이동권 제한이라는 주장도 나오며 진통을 겪고 있는 상황, 싱가포르의 '디지털 교육 강화' 등을 참고해 발전해야 할 부분이 많다고 느꼈습니다.
기자가 직접 현금 없는 버스를 탔습니다. 버스를 타고 내리는 모두가 당연하다는 듯이 전자결제·페이로 버스를 탑승했습니다.(사진=뉴스토마토)
유근윤 기자 9nyo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