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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스러운 삶?
입력 : 2023-04-14 오후 5:38:44
4월1일 유기농사과식초
4월 3일 시리얼, 동화책, 발목보호대, 선크림
4월4일 마스크
4월5일 태블릿 홀더 케이스
4월5일 미니캔디
4월6일 포켓몬우산, 식기세척기 세제
4월8일 마스크
4월9일 롤 스티커
 
4월1일부터 10일까지 쿠팡에서의 소비내역입니다. 주로 생필품인데요. 이 기간 동안 다른 택배, 배송제품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저의 삶은 쿠팡과 함께 한다해도 과언이 아닐것 같습니다. 왜그리 필요한게 많은 것인지, 제품마다 다르겠지만 쿠팡을 애용하는 것은 가격이 저렴하고, 다음날 바로 배송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인에게 줄 선물을 봉투로 포장했는데 스티커를 부착해, 포장을 마무리하고 싶었습니다. 고작 스티커 하나인데, 잠시 고민했습니다. 동네 문구점에 가면 될텐데, 1000~2000원 정도면 포장을 마무리할 스티커를 살 수 있는데…그런데 싫었습니다. 고작 스티커 하나 사겠다고 옷을 갈아입고 나가기가, 싫었습니다. 그리고 쿠팡을 검색하기 시작했습니다. 
 
스티커 세장이 필요했을 뿐인데, 쿠팡에서 500개짜리를 사버렸다.
 
역시 쿠팡에는 없는 것이 없습니다. 테이프 모양의 '롤 스티커'가 있었습니다.이 제품은 500개의 원형 '땡큐 롤 스티커'가 들어있었습니다. 그리고 가격은 5900원이었어요. 저는 스티커 세 개면 되는데…구매 버튼을 눌렀습니다. 조금 죄책감이 들었어요. 그리고 저의 쿠팡에서 소비목록을 쭉 보았습니다. 시리얼, 우산, 마스크, 책 등 없는 것이 없었습니다. 
 
조금 슬프더라고요. 손가락 클릭질 몇번 만으로 집에서 물건을 받아볼 수 있으니, 가게를 찾는 일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현실이요. 이렇게 동네 문구점, 잡화점, 서점 등은 사라졌고, 소수 남은 상점들마저 앞으로 자취를 감추겠지요. 
 
어렸을 적엔요. 아파트 앞 상가에 가면 수퍼, 김밥가게, 채소가게, 생선가게, 속옷가게 등등 품목별로 다양한 가게들이 있었어요. 엄마 심부름으로 콩나물을 사러다니던 채소가게 아주머니는 딸과 같은 반 친구라며 콩나물을 한웅큼씩 덤으로 얹어주기도 했습니다. 100년전의 일도 아닙니다. 그런 가게는 모두 하나둘씩 문을 닫았을 겁니다. 
 
같은 반에 유난히 대중문화에 밝던 남자아이가 있었어요. 친구들에게 비디오를 빌려주고 선진대중문화를 전파하던 이 아이의 집은 비디오가게를 했었는데요. 비디오라는 영상매체가 사라진지 오래되어버려서 그많던 비디오가게 사장님들은 어떤 직종으로 업을 바꾸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수 년전 '문명의 편의에 물들지 않고 되도록 오프라인 상점을 이용하겠노라'는 다짐은 온데간데 없고, 온라인쇼핑에 길들여져 게으르디 게을러진 나의 모습을 발견한 순간 조금 부끄러웠습니다. 
 
항변을 해보자면 나의 소비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따져보면 매우 합리적이었습니다. 한 달 쿠팡 와우회원비 4900원으로 쿠팡제품에 한해 무료 배달을 이용할 수 있으니까요. 1000원 2000원 짜리 소액의 제품은 없고 대용량의 제품이 많지만 단가를 계산하면 매우 저렴합니다. 단가를 따지지 않는 책이나, 마스크, 우산, 시리얼 등의 단품 역시 오프라인매장 뿐 아니라 기타 온라인마켓보다 가격이 저렴해요. 때문에 오프라인매장에서는 굳이 사지 않을 제품을 쿠팡에서는 척척 사게 됩니다. 불필요한 소비도 상당히 많습니다.
 
동네 가게를 조금이라도 더 이용해보려고 합니다. 동네 사진관에서 증명사진을 찍은 적 있는데요. 한 자리에서 10년 넘게 사진관을 운영했다던 사장님으로부터 동네 이야기를 많이 얻을 수 있었어요. 증명사진을 찍었을 뿐인데 유용한 정보도 얻고 친분도 쌓았답니다. 장사가 안 되서 지하의 스튜디오는 문을 닫고 증명사진만 찍게 됐다고 합니다. 안타까웠습니다. 기막히게 자연스러운 표정을 뽑아내는 재주를 가진 사장님께, 가족사진 하나만 찍어달라고 부탁해볼 셈입니다. 
 
이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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