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아주 솔직하게, 또는 그냥 대놓고 얘기를 하면 ‘딱 까놓고’라는 표현도 있고. ‘마블’이란 거대 세계관에 합류한 대한민국 출신 세 번째 배우(수현, 마동석, 그리고 이 배우)란 타이틀. 그게 없었다면 놀랍지만 이 배우에게 대표작이 있나 싶긴 했습니다. 이 배우에 대한 ‘대놓고 디스(dis)’는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마블’ 타이틀 외에 뭐가 있나 싶긴 했습니다. 아, 있었습니다. 레고 머리 스타일 신드롬을 일으킨 웹툰 원작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 그리고 배우 강하늘과 함께 버디 청춘 액션 무비 흥행을 일궈낸 ‘청년경찰’. 2011년 한 가수의 뮤직비디오로 데뷔한 12년차 배우로선 좀 뭔가 부족해 보이는 대표작 라인업 이기도 합니다. 한때 그래서 절친의 대표작에 특별 출연으로 등장한 뒤 ‘부럽기도 했다’고 농담 아닌 농담을 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 절친이 나중에 똑같이 특별출연 품앗이로 값아 주며 친분을 과시하기도 했지만 흥행을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이 배우, 뭔가 안 풀려도 참 안 풀린다 싶었습니다. 마블 세계관 합류 보도 역시 처음에는 국내를 들썩였습니다. 하지만 이후 다양한 루머가 쏟아지면서 그 화제성 마저 시들해지는 분위기입니다. 그런 분위기 속에 이 배우가 몇 년 전 촬영을 끝마친 영화가 개봉합니다. 일단 영화, 완성도가 끝내줍니다. 그리고 이 배우, 극 안에서 정말 돋보입니다. 앞서 설명한 긴 문장들. 이 영화 한 편으로 깨끗하게 치워질 듯합니다. 배우 박서준, 그가 ‘콘크리트 유토피아’로 자신의 대표작을 선정할 준비를 끝마쳤습니다. 이제 박서준에게도 완벽한 대표작이 한 편 생겼습니다.
배우 박서준. 사진=어썸이엔티
박서준은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통해 배우 데뷔 이후 가장 큰 도전을 해 본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는 데뷔 이후 주연의 자리에서만 있으면서 꽤 다양한 배역들을 도 맡아 왔습니다. 특별한 능력이 있는 이종격투기 선수 출신의 퇴마사도 해봤습니다. 심지어 마블 세계관에선 다른 행성의 왕자까지 됐습니다. 그런 그에게 특별하고 큰 도전이란 게 있을까 싶었습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대재앙 이후의 세계관을 그리니 장르적 도전이 될 수도 있었겠습니다. 하지만 전부 틀렸습니다.
“그냥 일상적인 인물을 연기하는 게 너무 특별했고 또 어려웠어요. 이게 말이 안되는 걸 수도 있어요. 근데 주연을 많이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오는 설정들이 많아요. 항상 정의롭고 항상 특별한. 근데 이번에 제가 연기한 ‘민성’은 그냥 가족을 생각하는 평범한 우리 이웃이었어요. 배우들이 이런 배역을 만나기가 정말 쉽지 않거든요. 그래서 정말 큰 도전으로 다가왔어요. 그 어떤 극단적 표현도 없는 인물이라 적정선의 연기를 찾아가는 톤 조절도 결코 쉽지 않았어요.”
배우 박서준. 사진=어썸이엔티
박서준은 ‘민성’에 대해 정말 많은 고민을 했었답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그에게 ‘민성’처럼 일상적인 톤을 유지한 배역은 데뷔 이후 거의 처음인 듯 하답니다. 그리고 이 영화, 장르적으로 재난물입니다. 세상이 무너졌습니다. 그 속에서 가족을 지켜야 하는 한 남자의 심리. 그것 지켜야 하는 수위, 즉 감정의 선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모든 게 지금까지 해온 연기의 틀에서 새로움을 더해야 했습니다. 물론 외모적인 부분도 신경을 써야 했답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가 새로워야 했습니다.
“민성은 기본적으로 가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물이에요. 그런데 가족이 위험한 상황이 될 때 이런 사람은 어느 정도까지 감정을 폭발시킬까 싶었죠. 어느 정도의 목소리 톤이고 어느 정도의 눈빛이고. 너무 과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모자라지도 않은. 적정한 선. 그걸 찾아 가는 게 제일 힘들었어요. 이 모든 게 가장 현실감 있게 관객들에게 다가가야 했어요. 감독님이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 지점이거든요. ‘드림’ 촬영 끝나자마자 ‘콘크리트 유토피아’에 합류했는데, 체형적으로 좀 말라 보였으면 했기에 7kg이상 체중 감량도 했어요.”
배우 박서준. 사진=어썸이엔티
촬영에 얽힌 비밀 중 하나. 극중 대부분의 배우들이 두터운 외투를 입고 등장합니다. 전반적으로 극 자체의 설정이 시작부터 추운 겨울은 아니었지만 보는 관점에서도 꽤 쌀쌀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배우들은 촬영 기간 동안 너무 많은 땀을 흘려서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고 웃었습니다. 표정으로는 분명 웃고 있었지만 현장에선 ‘이게 진짜 재난이다’라고 할 정도였답니다. 바로 한 여름에 촬영을 한 덕분에 두꺼운 외투 속은 땀으로 흥건하게 젖고 또 젖었답니다.
“진짜 다들 ‘이게 진짜 재난이다’고 혀를 내둘렀어요(웃음). 한 씬 만 찍고 나도 속옷까지 흠뻑 젖기 일쑤였으니까요. 촬영 직전 대기를 하는 동안에 다들 땀으로 세수를 했어요. 그래서 분장도 지워지고 너무 고생을 했어요. 극중 설정이 이상 기온으로 평소보다 날씨가 더 추운 설정인데, 다들 땀으로 흠뻑 젖어서(웃음). 근데 영화를 보니 그런 게 전혀 안 느껴져서 놀랐어요. CG로 입김까지 넣어주셔서 너무 현실감 있더라고요.”
배우 박서준. 사진=어썸이엔티
언론 시사회를 통해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공개된 직후 쏟아진 찬사는 역대 한국 영화 몇 손가락에 꼽힐 정도였습니다. 특히 극중 ‘주민대표’로 뽑힌 ‘김영탁’을 연기한 이병헌에 대한 연기적 찬사는 ‘경이롭다’는 수준으로까지 나왔습니다. 실제로 그는 극중 모든 분위기와 모든 상황을 연기로 만들어 버리는 마법 같은 힘을 발휘했습니다. 극 안에서 이병헌과 가장 많은 장면을 소화한 박서준은 이런 평가에 대해 ‘오히려 모자란 수준’이라고 전할 정도였습니다.
“그냥 옆에서 지켜보고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쉬고 있단 것만으로도 공부가 되는 듯했어요. 선배님의 영화 속 연기 중에 소름 돋는 장면이 있었는데, 바로 ‘아파트’를 부르는 장면이에요. 그게 굉장히 롱테이크 장면이에요. 시사회 끝나고도 다들 그 장면을 인상 깊다고 해주셨는데. 전 그 장면에서 선배님 바로 옆에 있었잖아요. 그때 선배님의 호흡과 연기 템포가 하나하나 다 기억이 나요. 그걸 영화로 보니 더 소름이 돋았고. 그 장면을 3번 정도인가 찍었거든요. 근데 진짜 소름 돋는 거 말씀 드려요? 영화 완성본에 나온 그 장면이 사실은 테스트 컷이에요(웃음). 그 정도로 선배님의 집중력과 해석력이 경이롭다는 거죠.”
배우 박서준. 사진=어썸이엔티
개봉을 며칠 앞두고 진행한 인터뷰였습니다. 이미 언론 시사회 그리고 일반 시사회에서 터져 나온 호평은 흥행 기대감을 한 없이 끌어 올렸습니다. 무엇보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높은 완성도가 많은 부분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그 중심에 분명 박서준의 뚜렷한 연기적 지분이 있었습니다. 개봉 이후 그리고 앞으로도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대표작으로 소개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라고 물어봤습니다. 박서준, 좀 예상과 다른 답을 전해 왔습니다. 그리고 가만 들어보니 충분히 그다운 대답이었습니다.
“제가 연기를 언제까지 할지는 모르지만 당분간은 계속 할 생각이에요. 그럼 저의 필모그래피도 당연히 쌓여가는 것이고. 그 안에서 대표작이라고 할 만한 작품이 또 나올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전 영화나 드라마 모두 인연이 있다고 생각해요. 작품과 만나면 그 순간에는 가장 최선을 다해요. 그리고 그 다음 작품에선 또 더 최선을 다하고. 그냥 매 순간 최선을 다하면서 그 인연에 충실하다 보면 ‘콘크리트 유토피아’ 같은 좋은 평가를 받기도 하고. 다음 작품이 또 제 대표작이 될 수 있기도 하고. 그래서 ‘대표작’이란 단어에 그렇게 깊은 의미를 두려는 성격이 못되요. 그냥 이번에 최선을 다했으니 ‘콘크리트 유토피아’ 많이들 보러 와 주시고 좋은 평가 든 그렇지 않은 평가 든 많이 전해 주세요. 그게 저에겐 제일 좋은 영양제 입니다(웃음).”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