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왕산 등산길. (사진=신유미 기자)
[뉴스토마토 신유미 기자] 예전에 누가 그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을 미치게 하는 건 고통 그 자체가 아니라 고통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기약없음이라고요.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는 불확실성이 사람을 힘들고 무기력하게 만든다는 뜻입니다. 반면 고통에 기약이 있다면 어떨까요? '이 또한 지나가리라'하는 마음으로 견딜 수 있을 겁니다.
최근 인왕산 등산을 다녀왔습니다. 등산 초보가 가기 쉬운 산이라고 해서 골랐습니다. 친구와 둘이 갔는데 둘다 등산은 몇 년만이었거든요. 왼쪽길과 오른쪽 길이 있었는데, 초반에 길을 잘못 골랐습니다. 초입에 호랑이 동상이 있다는데 구경도 못했고요. 그때부터 고난의 행군이 시작됐습니다.
친구와 저는 둘 다 등산은 거의 처음이나 마찬가지였던 데다 날씨는 참 맑았습니다. 그늘 없는 땡볕에 경사는 왜 이리 가파른지 심장박동 180bpm을 찍으며 헉헉거렸습니다. "도대체 누가 초보자 코스라고 한 거야!"를 외칠 때 앞서서 고소공포증에 떨던 분이 말했습니다. "어느 쪽으로 가면 완만해서 좀 갈만 하다던데 이쪽 길은 아닌가보더라고요." 아니나다를까, 시간은 적게 걸려도 그 길을 오르고 있는 사람들 모두 얼굴이 터질 것 같았습니다.
경사가 심했는데, 대신 시간은 아주 적게 걸렸습니다. 두시간 반 정도면 하산까지 마칠 수 있었습니다. 정상까지 오르고 보니 "생각보다 괜찮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바람을 쐬며 휴식을 취하고 나니 어떻게 올라왔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초보코스라고, 쉽다고 인터넷에 글 올린 사람들, 다 짧은 등산시간 때문에 미화돼서 그런거 아니야?"하는 의구심도 들었습니다.
경사가 가팔라 내려가는 길도 힘들었습니다. 올라갈 때는 숨이 차고 더워서 힘들었다면 내려올 때에는 근력을 써야해서 힘들더군요. 하지만 하산이 상쾌한 이유는 끝이 어느 지점인지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등반할 때와 마찬가지로 헉헉대는 사람들을 보며 '거기서 조금만 더 가면 정상이에요'라는 걸 알려주고 싶더군요. 제가 그 지점에 있을 땐 그걸 몰랐거든요.
등산이 매력있는 이유는 기약있는 고통이기 때문 아닐까요? 조금만 더 가면 정상에 도달했을 때 쾌감을 맛볼 수 있고, 정상에 도달하면 힘들었던 기억보다는 상쾌한 바람과 산내음을 더 크게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등산하는 사람과 하산하는 사람이 마주보며 조금만 더 가면 된다고 서로 격려하는 매력도 바로 거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신유미 기자 yumix@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