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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김창훈 감독, ‘화란’ 그리고 폭력의 서사
“‘느와르’ 장르 아닌 명암 극명한 스타일···삶 다루는 표현 방식”
입력 : 2023-10-18 오전 7:00:27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무조건 오해를 풀고 먼저 들어가야 합니다. 유독 국내에서 이 장르에 대한 선입견 혹은 단단하게 굳어 버린 이미지가 있습니다. 바로 홍콩 느와르입니다. 일종의 뒷골목 범죄 액션을 부르는 이 장르 안에서 대중은 화려하고 화끈한 액션을 기대합니다. 하지만 명확하게 풀어보고 또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습니다. ‘느와르는 장르라기 보단 하나의 스타일에 가까운 표현이란 점. 때문에 홍콩 느와르1980년대에서 1990년대까지 홍콩 영화계가 선보인 하나의 주류 영화 스타일에 가까웠던 것으로 해석해야 옳습니다. 같은 느와르로 볼 수도 있지만 ’’ 자체가 조금 다른 하드보일드 스타일 무뢰한’(2015)도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하면 맞아 떨어지게 됩니다. 이런 흐름과 표현 방식을 전제로 깔고 화란에게 접근하면 이 영화의 완성도 그리고 영화적 미학을 넘어선 그 이상의 온전히 다가올 것이라 확신합니다. 일단 느와르란 장르적 스타일의 선입견이 깨져 버리게 됩니다. 어둡고 축축하고 또 신발 밑창에 붙어 버린 진득한 껌처럼, ‘화란의 세계는 희망이란 눈꼽 만큼도 없는 절망의 디스토피아처럼 구현돼 있습니다. 하지만 화란속에서 그리는 진짜 절망은 절망 그 자체가 아닌 그 세계를 벗어나려 노력조차 안하는 체념의 무기력입니다. 극중 치건을 연기한 송중기는 화란의 시나리오를 읽고 너무도 궁금했답니다. 이 영화의 연출을 맡고 시나리오도 직접 쓴 김창훈 감독. 도대체 그는 어떤 삶을 살았기에 이런 세계관을 만들어 냈는지. 그래서 직접 만나 물어봤습니다. 김창훈 감독. 그는 도대체 어떤 시선으로 체념의 공포가 가득한 화란의 세계를 만들어 냈는지 말이죠.
 
김창훈 감독. 사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아직 화란을 보지 못한 관객들에 대한 배려부터 시작하고 들어가야 할 듯했습니다. ‘화란은 올해 상반기 칸 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돼 코리안 느와르로 불리며 글로벌에서도 상당한 호평을 이끌어 낸 작품입니다. 워낙 어둡고 딥(deep)한 감정을 담아낸 영화이기에 서사적으로 쉽게 따라갈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화란은 내밀하고 농밀한 인간의 어두운 감정, 즉 트라우마를 상당히 사실감 넘치게 그려냈습니다. 그 안에서 펼쳐지는 욕망도 상당히 사실적으로 담아냈습니다. 이 모든 걸 느와르란 장르적 스타일로 구현시켰습니다.
 
아마 느와르란 단어에만 보시고 화란을 보신다면 분명 실망하시는 분들도 많으실 거에요. 저희에겐 홍콩 느와르가 너무도 익숙해서, 상당히 화려한 액션이 기본 전제가 됐을 것이란 선입견이 있으실 텐데. ‘느와르는 장르화된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스타일이거든요. 서사의 명암이 극명한 스타일 범주안에 있는 것이지 장르의 범주안에 존재하는 얘기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느와르도 사실 결국 삶을 다루는 것이고 그 삶에 얼마나 흡착돼 있는지. 그게 관건이라고 만 봤어요.”
 
김창훈 감독. 사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이 영화의 제목 화란입니다. 하지만 영어 제목은 ‘Hopeless’입니다. 희망이 없는. 이 해석 안에 화란의 모든 인물들이 갇혀 있습니다. 하지만 유일하게 단 한 명, 배우 홍사빈이 연기한 주인공 연규만이 이 절망 같은 세상 속에서 실낱 같은 희망을 바라봅니다. 바로 자신의 이부 여동생 하얀입니다. 하얀은 연규에게 희망이면서 또 부모이자 보호자 그 이상의 어떤 존재로 남아 있습니다. 하얀은 연규를, 연규는 하얀을 채워주는 서로를 향한 그런 존재로서 말입니다.
 
“’화란에서 치건과 연규, 두 사람은 본질적으로 한 사람이에요. 근데 두 사람의 끝은 전혀 다르잖아요. 왜 그럴까. 치건에겐 하얀 같은 보호자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란 답을 저 스스로 찾은 거죠. 연규에게도 또 하얀에게도, 두 사람은 각각 진정한 보호자였어요. 연규에게 치건도 보호자로서의 역할을 하지만 사실 그건 보호라기 보단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한 학습을 강요하는 거잖아요. 그러나 하얀은 그 어떤 계산도 없이 연규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의 삶 길라잡이를 해주잖아요. 하얀은 그런 인물이어야 했어요.”
 
영화 '화란' 스틸. 사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실질적으로 화란이 힘을 얻은 동력은 톱스타 송중기의 합류가 결정적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제작진은 송중기가 연기한 치건역에 특별하게 어떤 배우를 염두하고 있진 않았다고 합니다. 김창훈 감독도 마찬가지였답니다. 하지만 우연히 화란시나리오를 읽게 된 송중기가 으로 먼저 제작진에게 출연 의사를 타진했고, 몇차례 의견 교환이 이뤄진 뒤 노 개런티출연이란 파격이 완성됐답니다. 김창훈 감독은 촬영 당시 송중기의 연기를 보고 치건이다라고 외친 순간을 꼽으며 그의 존재에 경외감을 전했습니다.
 
딱히 누굴 원한 건 없었어요. 다만 좀 날렵한 이미지 그리고 힘든 삶의 굴레 속에서 벗어날 생각조차 않는 시체 같은 느낌의 남자. 그런 이미지만 가이드로 잡고 있었죠. 전 개인적으로 굉장히 반대되는 이미지의 캐스팅을 아주 좋아해요. 대표적으로 폭스 캐처의 스티브 카렐 연기를 너무 좋아하거든요. 송중기 선배의 출연에 전 너무 감사했죠. 선배의 젠틀함 속에 순간적인 서늘함을 전 본 적이 있거든요. 그걸 살리면 되겠다 싶었죠. 영화에서 치건의 첫 등장이 선배님의 첫 촬영이었는데, 그때 모니터를 보고 저도 모르게 치건이다고 말한 적이 있었어요(웃음).”
 
김창훈 감독. 사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영화를 보고 논쟁의 지점이 될만한 구석을 하나 꼽아 봤습니다. 치건은 연규에게 절대 찾아보지 말라는 경고를 합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연규는 치건을 찾아갑니다. 두 사람의 첫 만남에서 치건은 연규가 찾아올 것을 알고 그런 경고를 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 다시 말해 치건은 연규의 삶을 구원하는 구원자인 동시에 그를 자신의 세계인 어둠속으로 끌어 들이는 또 다른 가해자로도 보였습니다. 치건은 연규에게 연규는 치건에게 어떤 존재로 존재하는 것이었을까. 이 얘기를 직접 쓴 김창훈 감독의 해석은 이랬습니다.
 
“’화란속 인물들의 대부분 선택은 양가적 감정을 갖고 있다 생각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치건은 정말 연규가 찾아오지 안았으면 한 게 맞아요. 찾아오면 자신과 같은 삶으로 갈 것을 알고 있었으니. 근데 연규의 얼굴에 난 상처를 본 뒤 마음이 바뀐 거죠. 이미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와 가까워졌구나. 내가 아니면 널 구원해 주긴 힘들겠구나. 내가 외면하면 더 위험해지겠구나. 어차피 내가 외면하면 더 위험해질 삶, 내가 거둬주는 게 조금 더 낫지 않을까. 치건에게도 연규에게도 서로의 관심이 만들어 낸 시작인 거죠.”
 
김창훈 감독. 사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화란은 인물들의 감정적 충돌, 존재의 충돌, 사연의 충돌 등 여러 충돌이 만들어 낸 괴물 같은 사연의 연속이 숨 막히게 짜여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걸 가능하게 만드는 요소. 바로 화란속 진짜 괴물, 공간입니다. ‘화란에서의 공간은 명안시라는 가상의 도시입니다. 이 도시는 치건과 연규 그리고 모두에게 한 번 빠지면 나올 수 없는 늪 같은 공간으로 묘사가 됩니다. 사실 늪이라기 보단 아가리를 크게 벌리고 먹이를 씹어 먹기 직전의 육식 동물을 연상케 합니다.
 
비슷한 느낌이었는데, 더 정확하게 말하면 오프닝에 등장하는 물 웅덩이 그리고 후반부에 나오는 호수의 고인물. 그런 느낌이 나길 바랐어요. 갑갑하게 갇혀 있는 사람들의 공간처럼 관객들도 느끼길 바랐죠. 이러 느낌을 강하게 느끼게 할 시각적 표현에 대한 고민을 정말 많이 했어요. 그래서 아주 레이어가 많았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촬영과 미술 쪽에 전달했어요. 대표적으로 연규의 집이 좁고 층고도 낮고 그러면서 레이어가 많은. 그래서 인물들이 갑갑함을 느낄 수 있는. 치건의 일수 사무실도 자세히 보시면 입구와 출구가 딱 하나에요. 그런 느낌을 곳곳에 주고 싶었죠.”
 
영화 '화란' 스틸. 사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이 질문을 가장 마지막에 두고 싶었습니다. 극중 치건을 연기한 송중기도 화란의 시나리오를 읽고 가장 먼저 하고 싶던 것으로 감독과의 만남 그리고 대화를 꼽았었습니다. ‘도대체 이 감독은 어떤 삶을 살았기에 이런 얘기를 썼는가란 의문이 들었답니다. ‘화란을 보면 어느 누구라도 송중기의 그런 생각에 반대 의견을 댈 수 없었을 것입니다. 김창훈 감독에게 직접적으로 물었습니다. ‘혹시 부모님과의 관계가 좀 힘들었던 적이 있었는지라고. 김 감독은 박장대소를 했습니다.
 
“(웃음)극중 치건이나 연규와는 정 반대의 모습을 한 가정에서 너무도 올바르게 자랐습니다. 지금도 어머니와는 친구처럼 지내고 데이트할 정도로 사이가 좋습니다. 제가 이 영화에서 구현하고 싶었던 건 가족이 아닌 폭력에 대한 얘기였어요. 폭력은 어떤 조직과 집단 안에서 벌어지는 물리적인 것도 있지만 정신적인 것도 분명 존재한다고 확신합니다. 그 폭력이 한 사람을 어디까지 무기력하게 만드는지. 극중에선 대표적으로 연규의 엄마 모경같은 인물. 그런 폭력에 대한 무기력과 체념. 그것들에 대한 위험을 이 영화로 말해 보고 싶었습니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김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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