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유미 기자] 은행권을 향한 상생금융 압박이 다시 거세지고 있습니다. 올해 초 윤석열 대통령이 은행권의 돈 잔치를 비판한 이후 은행들은 대출금리를 낮추고 원금 상환 유예 조치 등을 상생금융 방안을 내놓은 바 있는데요. 최근 윤 대통령의 '은행 종노릇' 발언 여파로 은행 초과 이익 환수를 위한 횡재세 도입까지 거론되고 있습니다. 현실화까지 많은 논의가 필요한 횡재세보다는 서민금융 출연금이나 기부금 확대하는 방식으로 은행권을 압박할 것으로 보입니다.
횡재세 준하는 출연금 압박할 듯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열린 제21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정치권과 금융당국에서는 은행 횡재세 도입과 관련해 연이어 군불을 지피고 있습니다. 다만 횡재세 도입을 위해서는 입법 절차를 밟는 등 많은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서민금융 출연금 및 기부금 확대 등이 현실성있는 방안으로 꼽힙니다.
금융위원회는 내달 서민금융 상품 구성과 운영 체계 개편을 포함한 효율화 방안을 발표할 예정인데요. 여기에 은행권의 역할을 늘리는 내용이 담길 전망입니다. 금융위는 최근 정책서민금융 상품의 재원 마련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정부 예산이 부족해 금융권 기부금과 국민행복기금 초과회수금 등에 기대야 하는 실정이기 때문입니다.
은행 등 금융사는 지난 2021년부터 '서민의 금융생활 지원에 관한 법 시행령'에 따라 가계대출 잔액의 0.03%에 해당하는 비용을 서민금융 재원으로 출연하고 있습니다. 은행권에서는 매년 1000억원이 넘는 출연금을 내왔습니다. 당초 이익공유제의 일환으로 도입됐지만 금융권의 반발이 커 5년 일몰제를 적용한 상황입니다.
올해 3월 신설된 소액생계비대출도 금융회사 기부금, 국민행복기금, 자산관리공사(캠코) 출연금 등도 기금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서민금융진흥원에 따르면 햇살론, 최저신용자특례보증, 소액생계비대출 등 대출 규모는 2020년 4조5394억원에서 2021년 4조9603억원, 2022년 6조9319억원으로 매년 늘고 있습니다. 이 중 정부 예산이 투입되고 있는 것은 최저신용자특례보증이 유일합니다.
은행의 사회공헌 압박은 갈수록 거세질 전망입니다. 국내 은행은 지난해 사회공헌활동에 전년 대비 16.6% 늘어난 1조2380억원을 지원했습니다. 최근 은행연합회가 발간한 은행 사회공헌활동 보고서에는 ‘상생금융 및 추가활동’ 섹션이 추가됐습니다. 정성적인 지표를 더 면밀히 보겠다는 건데요. 이에 따르면 지난해 은행권이 서민금융에 출연한 금액은 총 3589억원으로, 사회공헌활동 비율의 29%를 차지합니다. 은행권 관계자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 구체화되진 않았지만 서민금융 확대나 펀드 조성 등 이슈는 분명히 진행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습니다.
상생금융 내놨지만 대출금리 다시 올라
윤 대통령의 은행 저격 발언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월 금융위 업무보고에서 "은행은 하나의 공공재로, 은행 시스템은 국방보다 중요한 시스템"이라며 "정부가 관심을 보이는 건 관치가 아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지난 2월 수석비서관회의에서도 "'은행의 돈잔치'로 국민들이 위화감이 생기지 않도록 금융위는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금융당국은 곧바로 태스크포스(TF) 구성해 각종 은행권 제도 개선안을 마련했는데요. 은행 등 금융권은 올 초 은행의 '돈잔치'에 대한 비판이 커지자 잇따라 대출 한도 확대·이자 감면 등의 대책을 내놨습니다. 금융감독원이 집계한 은행권의 상생금융 실적은 지난 8월까지 174만명을 대상으로 한 4700억원이 집행됐습니다.
정부가 다시 은행권에 날을 세우는 것은 그간 은행권이 추진해 온 상생금융이 기대에 못 미쳤고, 새로운 상생금융 방안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한국은행의 수차례 기준금리 동결에도 불구하고 '긴축 장기화' 여파로 금융채 등 시장금리는 계속 오르고, 시중은행 대출금리도 지속 오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은행 주택담보대출 최고금리는 연 7%를 넘어선 상태입니다.
최근 금융당국은 가계대출 증가세와 관련해 은행권에 대출 점검 및 경쟁 자제 등을 요구했는데요, 은행권 ‘경영현황 보고서’에 은행별 임원 및 임직원의 보수와 퇴직금 등까지 공개되면서 은행이 거둬들인 이자수익에 대한 비판이 다시 불을 지피고 있습니다.
금융당국은 아직 정부 차원에서 구체적인 방안이 검토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지만, 은행권 이익 공유 방안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한다는 입장입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어떤 방법이 좋은지는 여러 가지를 고려해 우리나라 특성에 맞게 하겠다는 원칙 하에서 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상당히 높은 수준의 이익을 거둔 과정에서 여러 차주들과 국민들이 고통받고 있다는 지적은 저희도 잘 인식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신유미 기자 yumix@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