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숏!숏!숏!’은 2007년부터 시작된 전주국제영화제(JIFF) 한국단편영화제작 기획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는 한국영화감독 2~3인을 선정해 하나의 공통된 주제나 소재로 단편영화를 제작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올해는 ‘소설, 영화와 만나다’라는 기획 아래 단편 소설과 단편 영화가 만났다. 소설가 김영하의 단편소설 중 세 작품이 이진우, 박진성•박진석, 이상우 감독을 통해 각각 스크린으로 옮겨졌다. 한 작가의 세 작품을 토대로 한 영화가 하나로 묶여 상영하면서 흥미로운 비교 관극 체험을 제공한다.
첫 번째 작품은 <번개와 춤을>이다. 이진우 감독이 소설 <피뢰침>을 각색해 연출한 이 작품은 번개를 맞고 새로운 경험에 눈 뜬 사람들의 기묘한 의식과 로맨스를 다룬다. 단편영화 특유의 맛을 살리기 위해 원작보다는 밝고 재미있게 그리는 방법을 택했다.
두 번째로는 <더 바디(THE BODY)>가 상영됐다. 연출을 맡은 박진성, 박진석 형제는 추리의 형식을 빌어 원작 특유의 스산한 느낌을 더욱 극적으로 구현해냈다.
마지막으로 소개된 작품은 이상우 감독이 만든 <비상구>다. 20대의 우현이라는 인물이 모텔을 전전긍긍하며 탈출구 없는 삶을 사는 청춘을 그린다. 표현하기 어려운 원작의 내용도 가감 없이 화면에 소화한 점이 눈길을 끌었다.
26일 영화 시사 후 JIFF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는 세 작품의 감독과 김영진 JIFF 프로그래머, <번개와 춤을>에 출연한 배우 김서형이 함께 자리해 ‘숏!숏!숏!’ 프로그램과 촬영 중 에피소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김영진 프로그래머는 “사실 영화제 측에서 컨셉트만 잡았고 도와드린 게 없는데 훌륭한 결과가 나와서 기쁘다”면서 “앞으로도 계속 ‘숏!숏!숏!’ 프로젝트가 이어졌으면 좋겠고 지원을 더욱 많이 하도록 힘쓰겠다”고 말했다.
JIFF에 처음으로 참여했다는 배우 이서형은 “기회를 준 ‘숏!숏!숏!’ 팀에 감사 드린다”면서 다음 기회에도 함께 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다음은 이진우, 이상우, 박진성, 박진석 감독과 김서형 배우가 털어놓은 세 영화에 관한 짧은 이야기다.
◇ 로맨스로 현대인의 불안 표현한 <번개와 춤을>
-김영하 작품 중 이 소설을 택한 이유는?
(이진우)딱 이거다 하는 느낌이었다. 피뢰침을 읽었을 때 받은 느낌이 그랬다. 특별한 이유가 있다기 보다는 한 눈에 들어왔다. 이야기 자체가 너무 매력적이어서 일체의 고민 없이 골랐다.
(김서형)읽자마자 내가 잘 할 수 있는 역할인 것 같아서 무조건 하겠다고 말했다. 어느 누구에게도 주지 말라고 부탁했다.
-소설을 영화화 하면서 어디에 주안점을 뒀나? 어려웠던 점이 있었다면?
(이진우)원작은 무겁고 어두운 느낌이었지만 나는 밝고 명랑하고 행복한 느낌을 만들고 싶었고 거기에 맞춰 각색했다. 어려웠던 점은 단편으로 소화하기에 어려울 정도로 분량이 많았다는 것이다. 또 번개를 맞는 거대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것도 사실 단편에 담기에는 어려운 내용이다. 제작비에 맞춰 분위기를 만들어내기가 어려웠던 게 고민이었다(웃음).
-원작에 보면 우주세계로부터 피뢰침을 맞았다는 것을 알리는 소품들이 등장한다. 영화에는 그 중 일부만 등장하는데 이유는?
(이진우)원작의 소도구를 다 만들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소도구를 다 만든다면 그것들마다 클로즈업을 다 주면서 정교하게 가야 하기 때문이다. 마지막까지 대본을 수정하면서 주인공이 피뢰침의 증거물을 더 이상 안 보는 것으로 조정을 했다. ‘미정’이라는 캐릭터에 더 집중하길 바란 점도 있다.
-요의를 참으면서 사랑을 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연기 중 에피소드는 없었나?
(김서형)사실 찍으면서는 끝 장면이 그렇게까지 웃겨 보일까 싶었다. 비밀을 말하자면, 소변보는 장면은 사실 대역이었다(웃음).
-원작과 다르게 분위기가 밝다.
(이진우)원작소설을 읽는 내내 우울한 멜로드라마로 읽었다. 소설 속 여자 주인공에게 나 자신 자체가 감정적으로 동화됐다. 소설의 영향 때문인지 소설을 읽고 나서 몸이 굉장히 안 좋았다. 그래서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로 함축하고 싶은 부분도 있었다.
◇ 형제 감독이 만든 감각적 영상 <더 바디>
-김영하 작품 중 이 소설을 택한 이유는?
(박진성)<더 바디>를 읽고 나서 지어낸 것 같지 않은, 진짜 이야기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리얼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고르게 됐다. 나중에 들었는데 소설 자체가 실제 있었던 일을 소재로 삼은 것이라고 하더라.
-소설을 영화화 하면서 어디에 주안점을 뒀나? 어려웠던 점이 있었다면?
(박진성)서스펜스 영화구조를 좋아한다. 발견의 구조로 만들어보려고 바닷가 장면을 추가하고 이야기 순서를 조금씩 바꿨다. 크게 바뀐 것은 없다.
(박진석)서술방식에서 트릭을 구사하면서 가장 걱정했던 것은 관객이었다. 그것을 구사했을 때 관객이 화가 나거나 속았다는 생각이 든다면 실패한 형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관객에게 쾌감을 줄 수 있는 트릭을 주려 노력했다.
-시체가 등장하는 장면을 흑백으로 처리했다. 이유는?
(박진석)개인적으로 사진을 오래 찍었다. 컬러를 흑백으로 전환하면 순식간에 추상화되는 측면이 있다. 스태프들은 내가 당연히 그럴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고 하더라.
(박진성)원작 소설의 내용이 내 상상 속에서는 그렇게 흉측한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에 흑백으로 처리하는 데 동의했다.
-더미가 눈을 뜨는 장면이 있다. 살아있는 더미의 느낌이 묘하더라.
(박진석)원래 원작 소설에는 그런 부분은 없다. 미술감독의 부인인 영선이 마지막에 더미를 바라보며 원래 눈을 뜨고 있었던가 하면서 장난을 치는 장면이 나온다. 더미 역을 실제로 표현하기 위해 중견연기자 유혜진씨를 캐스팅 하면서 효과가 극대화됐다고 생각한다. 촬영을 하면 아무래도 배우의 눈꺼풀이 미세하게 움직일 수밖에 없다. 그걸 그대로 사용했다. 잠깐 관객이 혼란스러웠으면 좋겠다는 느낌으로 만들었다.
◇ 비상구 없는 청춘의 방황 그린 <비상구>
-김영하 작품 중 이 소설을 택한 이유는?
(이상우)사실 책을 별로 안 읽어서 지식이 별로 없다. 인터넷으로 김영하 작품을 검색하다가 성기의 체모를 민다는 장면에 꽂혀서 그냥 골랐다(웃음).
-소설을 영화화 하면서 어디에 주안점을 뒀나? 어려웠던 점이 있었다면?
(이상우)소설을 읽고 나서 이걸 오글거려서 어떻게 만드나 싶기도 했다. 각색을 하긴 했는데 오글거림을 없애기 위해 배우들에게 본래 자신의 말투로 연기하도록 요구했다.
-화면상으로 보면 배우들 고생을 가장 많이 시킨 것 같은데 배우들에게 인기가 많다더라. 배우들과의 스킨십은 어떻게 만들어내는지?
(이상우)사실 캐스팅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막판에 가면 결국 다들 제모를 못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전작에서 함께 촬영했던 윤희씨에게 역할을 맡아달라고 요청했고 결국 부모님과의 상의 끝에 결정해줬다. 절대로 살을 빼지 말 것을 주문했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