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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아트는 순수예술..장르 대한 이해 아쉬워"
유럽 종이예술 축제 '소피아 페이퍼 아트 페스트' 참가하는 북아티스트 강선영
입력 : 2013-04-29 오후 6:20:30
[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대학시절 한국화를 전공했다. 미국으로 건너온 뒤 대학원을 알아보다 우연히 접한 필라델피아 예술대학의 북아트·판화 프로그램이 북아트 작가로 전환하게 된 계기였다. 서양회화보다는 종이와 잉크를 이용하는 판화에 본능적으로 더 끌렸고, 뉴욕 맨하튼에서 북 바인딩과 활판인쇄 수업을 듣고 책 만드는 과정의 일부를 체험해 본 뒤 필라델피아 예술대학의 북아트·판화 프로그램 석사과정에 지원했다.
 
"2차원인 종이가 책으로 만들어지면서 3차원의 구조가 되고, 또 물리적이면서도 개념적인 공간이 만들어지는 것에 매력을 느꼈죠."
 
현재 세계 북 아트계가 주목하고 있는 한국작가 강선영(사진)의 이야기다.
 
(사진제공=강선영 작가)
북아트라는 장르, 그리고 미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강선영 작가 모두 국내에서는 아직 생소한 이름들이다. 북아트 작가 강선영은 단순히 지식 습득 목적으로 읽는 책이 아닌, 예술작품으로서 책을 만든다. 책뿐만 아니라 책과 종이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대형 설치작품을 만들기도 한다.
 
근래에는 지난 24일 개막해 6월 2일까지 열리는 '소피아 페이퍼 아트 페스트 2013'에 정식 초청되는 쾌거를 거두기도 했다. 아마테라스 재단에서 주관하며 매년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에서 열리는 이 축제는 유럽의 유일한 종이예술 축제로 명성이 높다.
 
 
세계 35국의 아티스트 400여 명의 작품이 소피아 시에 위치한 20여 개 이상의 갤러리와 박물관, 역사 유적지 등에서 전시된다. 행사는 페이퍼아트 연례 공모전, 소피아 페이퍼아트 비엔날레, 페이퍼아트 아카데미, 페이퍼 씨어터, 멀티미디어와 영화, 부대행사 등 크게 6가지로 구성된다.
 
강선영 작가는 6개 행사 중 가장 큰 규모 전시인 소피아 페이퍼아트 비엔날레 부문에 초청받았다. 지난 2년간 페이퍼아트 연례공모전에서 젊은 작가상을 수상한 것이 초청의 계기가 됐으며, 올해는 이 연례공모전 대상 후보에도 이름을 올렸다. 강선영 작가 외에 후보로 등록된 작가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페이퍼 아티스트인 리차드 스위니와 미셸 사무어 등이 있다.
 
 
이번 비엔날레에서 선보이는 작품은 '여과된 기억(Filtered Memories)'와 '소망 비우기(Empty Yourself of Wishes)'라는 설치 작품이다. 두 작품 모두 '책'이라는 아이디어에서 시작됐으며, 소피아 시티 갤러리에서 '빛의 메시지(Message from the Light)'이라는 소주제 아래 전시될 예정이다.부재하는 존재를 시각화 하는 작업에 관심을 두고 있는 강선영은 이번 전시와 북아트에 관한 이야기를 자신이 다루는 매체인 종이만큼이나 소박하고 자연스럽게 털어놓았다. 다음은 강선영 작가와의 일문일답.
 
-이번에 출품되는 작품에 대해 소개해 달라.
 
▲'여과된 기억'은 28개의 두루마리 책을 공간에 매단 형태의 작품이다. 관객이 직접 걸어 다니며 글들을 천천히 읽을 수 있는 책의 공간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각각의 스크롤에는 글자가 가득 적혀있다. 글자는 13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남기신 일기장에서 가져왔다.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은 일기를 크게 확대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 속으로 들어가서 읽을 수 있게 만든 건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가 사실은 가장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스크롤 아래 부분에는 영문으로 해석된 몇몇 문장을 작게 담아 한글을 읽을 수 없는 관객들에게 간략하게 내용을 전달한다.
 
(사진제공=강선영 작가)
 
작업과정은 아버지께서 쓰신 필체 그대로를 크게 확대하고 컴퓨터로 다시 정렬한 뒤 종이에 옮긴 다음 향으로 글자를 한자한자 태웠다. 아버지의 필체를 그대로 따라가면서 베끼는 듯한 과정이었다. 일기를 보면서 알게 되었는데 신기하게도 당시 이 작품을 제작할 때 내 나이와 아버지께서 일기를 쓰기 시작할 무렵의 나이가 같았다. 나와 같은 나이의 아버지와 대화하는 듯한 기분으로, 그리고 내가 모르던 시기의 아버지의 생각을 천천히 따라가 보는 듯한 기분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작업의 주제는 다른 북아트 작업과 설치작품들을 만들 때와 같이 부재의 존재를 시각화하는 것이다. 즉, 부재로써 그 부재의 존재를 다시금 일깨우는 게 작업 컨셉트였다. 향으로 태운 글자들이 있는 부분을 다시 얇은 종이로 덮었고 빛이 밝혀지면 그 종이 위에 그림자들이 드러난다. 지금은 부재하는 아버지의 존재가 빛이 밝혀지면서 시각화되고, 아버지가 추억으로 다시금 돌아온다.
 
(사진제공=강선영 작가)
'소망 비우기'라는 작품은 1080개의 작은 판화작품으로 만들어진 일종의 조각작품이다. 판화를 벽에 걸거나 책의 구조 속에 넣는 대신 자유롭게 공간에 매달았는데, 이로써 작업과정에 더 큰 의미를 주려 했다. 드라이 포인트 동판화 방식으로 작업했는데, 이것은 금속판에 일일이 송곳으로 그림을 그리고 한 장 한 장 잉크칠하고 프레스에 넣어 찍어내는 과정으로 많은 시간과 육체적 노력이 필요한 판화 방식이다. 반복적인 인쇄 과정과 하나하나 공간에 매다는 반복적이고 느린 설치과정을 모두 일종의 퍼포먼스로 고려해서 계획한 작품이다.
  
각각의 판화는 학, 연꽃, 물고기등을 단순화한 문양으로 한국의 민화나 오랜 도자기등에 자주 등장하는 문양들에서 영감을 받았다. 예전 이름 모를 사람들이 자신들의 소원이나 바람을 문양들에 담고, 나무에 소원을 적은 종이를 매달고, 신성시되는 연못 혹은 우물에서 기도하고 소원을 비는 행위들에서 영감을 얻었다.
 
완성된 작품 주위에서 사람들이 위를 올려다 볼 수도 있고 주위를 걸어다닐 수도 있고 또 물과 작품 제목을 적어둔 종이가 담긴 옹기를 내려다 볼 수 있다. 공기 움직임에 따라 판화들도 움직이는데 종이 재질 때문에 나뭇잎이 부대끼는 듯한 소리가 난다.
 
-페이퍼아트나 북아트의 매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종이는 아주 여리고 섬세하지만 생각보다 아주 강하다. 쉽게 찢어질 수도 있지만 수백 혹은 수천 년의 수명을 갖기도 한다. 또 종이는 아주 얇지만 앞과 뒤 두 면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종이의 구조적 물리적 특성이 제 작품의 주요 컨셉트인 ‘보이지 않는 부분의 시각화’, ‘세상은 부재와 존재, 삶과 죽음 등 두 가지 상반된 아이디어로 이뤄졌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것’을 잘 반영해 준다. 또한 종이는 한국화를 전공하면서부터 가장 친숙한 재료였고 또 현재는 책의 가장 대표적인 재료로 내 작업에서 빠질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재료 중 하나이기도 하다.
 
책이라는 형태의 경우, 다른 예술형태와 달리 사람들의 손에서 느껴지고 읽혀지면서 작은 책의 공간을 넘어서서 컨셉트가 담긴 공간으로 여행을 하도록 하게 해준다는 장점이 있다. 수백 수천 권으로 판본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찾아갈 수도 있다. 대중에게 보다 적극적이면서 친숙한 예술형태라고 생각한다.
 
-작품을 보면 고국인 한국에 대한 언급, 불교적 세계관의 뉘앙스, 현재 살고 있는 미국에 대한 언급 등이 뒤섞여 있다. 작가가 계속해서 매진하고 있는 주제가 있다면?
 
▲한국화를 전공하고 미국으로 온 뒤 곧 내 작업이 이곳 미국작가들과 시각적으로 가장 다른 부분이 여백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여백을 단순히 미학으로서만이 아니라 내 작업의 주제로 삼게 됐다. 여백은 그림에만 있는게 아니라 한국의 문화, 종교, 철학에도 깊이 내재돼 있다.
 
나는 한국화에서의 여백을 ‘이미지로 시각화된 부분의 상반된 부분’, 즉 ‘시각화 되지 않은 부분’으로 상정해 여백의 의미를 확대해 나갔다. 결과적으로 부재와 존재, 시각적인 부분과 보이지 않는 부분, 물리적으로 비어있음과 차있음, 삶과 죽음의 불가분함, 빛과 그림자, 보이지 않는 경계로 나뉘어진 세상의 이쪽과 저쪽의 개념에 대한 질문 등으로 주제를 만들어 왔다.
 
작업 과정들은 종이를 오려내고 글자를 불에 태워 없애고, 빈 그릇이나 용기들을 수제종이로 캐스팅하거나 허공에 판화를 매다는 등의 여백(물리적 혹은 개념적인 부재)을 ‘시각화’하는 과정들이다. 이 과정들은 모두 굉장히 반복적이고 오랜시간을 요하는데 이것은 부재와 존재처럼 두 상반된 개념 사이 ‘시간을 초월한 거리감’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예를 들어 삶과 죽음 사이에 존재하는 ‘현재’라는 개념은 종이의 얇은 페이지처럼 아주 짧은 순간이다. 이러한 찰나가 모여 과거가 되고 긴 삶이 되는 것처럼 내 작업과정의 길고 반복적인 행위들은 두 상반된 아이디어를 연결하는 의미로서의 작업과정이다. 얇은 종이의 페이지를 묶어 한 권의 책이 되는 것과도 같다.
 
앞으로도 당분간 세상의 상반된 개념에 대한 질문을 계속 할 듯하다. 아마도 내가 현재 이방인으로 이곳에 살면서 다른 두 문화 사이의 경계에서 머물러야 하는 것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주로 사용하는 종이는 어떤 것들인가?
 
▲여러 가지 종이를 사용한다. 판화방식 혹은 작품 제작 과정과 작품의 구조를 고려해서 샘플을 써보고 종이를 고른다. 가끔은 직접 종이를 만들기도 한다.
그런데 내 작품의 상당수가 일본종이로 만들어 졌다.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고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한국의 정서를 많이 드러내는 내 작품에 한국종이가 들어가면 너무나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이곳 미국에서 한국종이를 구입하기가 쉽지 않다.
 
한국에서 종이를 사온다 하더라도 작업과정에서 종이가 모자랄 경우에는 큰 문제가 된다. 같은 책을 여러 권 만들 경우 막대한 양의 종이가 필요하다. 스무 권을 세트로 하는 하나의 책을 만들 경우 이 책의 디자인, 제작방법은 물론 재료도 모두 똑 같이 일치해야 한다. 그게 바로 판본의 의미이기 때문이다. 많은 책을 완성할 때까지 일관된 종이를 언제든 구입할 수 있어야 한다.
 
내게 한국종이와 가장 정서가 비슷하다고 느껴지는 종이가 일본 종이나 중국종이다. 물론 한국종이는 일본이나 중국 종이와 분명 다르고 또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있다. 한국종이도 이곳에서 구입할 수 있다면 하는 아쉬움이 너무 크다. 올해 한국방문을 계획 중인데 바쁘더라도 꼭 한국종이를 찾아다닐 생각이고 미국에서 한국종이를 구입할 방법도 알아볼 계획이다. 그러나 내 작업에서 종이는 중요한 재료이긴 하나 그 자체가 주제는 아니다. 그것보다는 한국정서를 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종이 위에 언어, 글자를 담는 경우가 많던데, 강선영 작가에게 종이와 글자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나는 책을 만드는 아티스트다. 원래는 한국화를 전공한 화가였으나 북아트를 시작하면서 글자로 미술을 하는 것의 아름다움을 알게 됐다. 또 전통 한국화는 서예와도 밀접하므로 한국화와 북아트가 별개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글자는 그림으로 보여지는 이미지와 다른 매력이 있다. 인쇄된 글자들이 일종의 시각적인 이미지로서 아름다움이 되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 뜻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 깊이가 생기기도 하고 다중적인 의미를 품을 수도 있다. 또 강렬한 드로잉이나 페인팅 등의 이미지보다 조용한 기호적 이미지로 관객들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도 있다. 또 소리를 가진 글자로 청각적인 자극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종종 글자를 서사로서 작품에 사용하기도 한다. 조용하면서 아주 심플한 내러티브로 관람객들이 스스로 이미지를 그려내도록 유도한다. 마치 그림 대신 여백으로 처리하는 것처럼 심플한 내러티브를 사용하면 보여주지 않음으로 볼 수 있게 하는 매력이 있는 듯하다.
 
-해외활동을 할 때 애로사항은 없는지? 바라는 점이 있다면?
 
▲ 북아트는 순수미술의 한 부분이다. 한국에서의 북아트의 이해가 외국과 많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이곳 미국에서는 많은 작가들이 예술에서의 경계를 한국에서처럼 중요시 하지는 않는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시도하는 게 부정적인 것이 아니며, 작가는 어떤 시도를 하건 어떤 장르에 도전하건 혹은 한 가지를 고수하건 간에 자유를 누려야 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어떤 테크닉이나 재료, 방식을 고수하느냐 보다 작가가 하고픈 이야기, 표현하고자 하는 것, 좋아하는 것을 잘 해내는 것이라 생각한다.
 
북아티스트들 개개인도 각자의 목적과 이유가 있어 책의 형태를 바탕으로 예술활동을 한다. 예를 들어 정치적 성향이 강한 아티스트나 운동가로서의 작가들의 경우 잡지, 엽서, 포스터 등과 같은 포맷이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표현하기에 아주 적합한 형태의 작업 방식이다. 많은 북아티스트들이 자신들의 주제에 맞춰 이런 형태의 저렴하지만 파급력이 큰 작품을 만들기도 합니다.
 
북아트는 일러스트레이션이나 북디자인 혹은 단순 기술적인 북바인딩과 혼동되는 경우가 있다. 형태가 책이라는 점 혹은 기술적인 면에서 작업과정이 비슷한 부분이 있을 수 있지만 북아트는 현대미술의 한부분으로 예술적 의도와 목적으로 만들어지는 작품활동이다.
 
한국의 북아트의 이해에 대한 저의 개인적인 생각은 테크놀로지 시대에 손맛이 느껴지는 수제 책에 대한 향수로 인해 붐이 일어난 듯한 느낌이다. 물론 중요한 부분일 수 있다. 다만 이럴 경우 단순 수제 노트나 앨범 등 책 만들기 테크닉으로서 북아트가 전락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든다. 예를 들면 북아트 자격증의 경우가 그렇다. 누구나 그림을 그리고 조각작품을 만들 자유가 있다. 프로페셔널한 작가로서의 삶이건 혹은 취미활동이건 간에 누구든 창작활동을 할 수 있지만 화가 자격증이나 조각가 자격증 같은 것은 없다. 그런데 북아트 단기 자격증이란 말을 듣고 너무나 놀랐다. 동시대 예술 의 장르로서 북아트에 대한 대중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생각한다.
 
-향후 활동 계획은?
 
▲이곳 필라델피아의 ‘떠오르는 비주얼 아티스트를 위한 센터(Center for Emerging Visual Artists)’라는 기관에서 매년 미국 동부지역의 재능 있는 작가들을 뽑아 전문 작가로 살아가도록 여러 가지 후원을 하고 작품활동을 하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이 있다. 이번에 공모에서 합격했고 다른 9명의 작가들과 함께 멤버 작가로 2년간 활동하면서 여러 전시 활동과 오픈 스튜디오등에 참여할 예정이다. 현재 머물고 있는 필라델피아 근처에서 보다 많은 활동을 하고 싶어 지원했다. 좀더 큰 규모의 페이퍼 설치 작품으로 관객과 좀더 교류할 수 있는, 상호적인 작품을 만들고 싶다. 또 현재 학예사로 일하고 있는 고서적 도서관인 펜실베니아 역사 사회 박물관에서 미국 최초의 은행장부를 보수하고 바인딩 하는 프로젝트를 2년간 계속할 계획이다.
 
 
김나볏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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