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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분쟁조정 '속도전'만이 능사인가
입력 : 2020-06-25 오전 6:00:00
이종용 증권데스크
대규모 환매중단 사태가 벌어빈 라임자산운용 펀드에 대한 금융감독원의 분쟁조정이 속도를 내고 있다. 자산운용사가 손실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현실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라임이 보유한 자기자본이 배상금액에 턱없이 모자란다. 이 때문에 불완전 판매의 흔적이 보이는 은행과 증권사 등 일부판매사에 배상의 책임을 묻는 것이다.
 
연초까지 라임펀드 보상에 머뭇거린 증권사들은 선제적 보상안(선보상안)을 내놓았다. 선보상이라는 것은 금융사들이 사법기관이나 금융당국으로부터 불법·위법 여부를 판단 받기 이전에 손실을 보상한다는 것이다.
 
분위기가 달라진 것은 금감원의 압박이 주효했기 때문이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선보상을 적극 권고하기도 했다. 윤 원장은 취임 2주년 간담회에서 과거 선보상 사례를 치하하면서 그런 사례가 계속 퍼질 수 있었으면 한다. 시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금융회사가 자율 배상을 하면 시기적으로 빠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투자자와 판매사의 사적화해를 통한 선보상을 강조하는 금감원의 취지는 이해가 된다. 분쟁조정은 속도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투자자가 분쟁 조정이나 민사 소송을 거쳐 손해 배상을 받으려면 장기간이 소요됐고, 긴 분쟁기간 때문에 투자자가 분쟁이나 소송을 중도 포기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론적으로만 보면 투자자와 판매사간의 사적화해가 투자자에게도 나쁠 게 없어보인다. 투자 원금의 최대 30~50%를 먼저 보상받고, 차후에 분쟁 조정이나 법원 판단이 유리하게 나오면 나머지 차액을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상의 속도가 아니라 배상 비율의 측면에서 투자자가 기대하는 결과가 나올지는 미지수다. 대규모 원금 손실로 논란이 된 '해외금리연계형 파생결합펀드(DLF) 사태'를 돌아보자. 분쟁조정안으로 배상 비율이 최대 80%까지 나왔다. 금감원은 '80%의 배상비율'은 역대 불완전판매 분쟁조정 사례 중 가장 높은 수준의 배상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80% 배상 비율을 적용받은 DLF 투자자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분쟁조정안을 이행하는 금융사들이 구체적인 수치는 밝히지 않지만, 투자자 대부분은 20~30% 수준에서 보상이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자들이 "80% 배상은 말장난"이라고 반발하기도 했지만, 이거라도 받자며 분쟁조정안을 수용하면서 조용히 묻혔다.
 
이쯤되면 선보상안으로 당국과 판매사, 투자자 중 누가 가장 이득을 보는지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판매사들이 불완전판매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선제적인 보상안을 내놓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다. 당국의 압박 때문이라는 볼멘소리도 들리지만, 결국 회사와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내린 판단이다.
 
금감원 권고를 수용하는 모습을 보이면 불완전판매에 따른 기관 제재나 임직원 징계 수위를 어느정도 낮출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판매사 입장에서는 크지 않은 보상금으로 당국에 생색도 낼 수 있고, 고객 피해 회복을 위해 대승적인 결단을 내렸다며 대외 홍보 효과도 볼 수 있다.
 
굳이 선보상안의 손익계산서를 따져보면 금감원은 감독 실패로 추락했던 권위를 세우고, 금융사는 경영진의 책임을 더는 성과가 뚜렷해 보인다. 진상 조사가 제대로 진행되는지, 그에 기반해 투자자들이 제대로 된 보상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확답하기가 어렵다. 당국과 판매사가 함께 분쟁조정의 속도를 내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지만, 진정 투자자 보호를 위한 방향으로 진행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종용 증권데스크 yong@etomato.com
 
이종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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