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잃은 것은 ‘지위’가 아니라 안심이다
‘마약청정국’이라는 말은 오랫동안 한국 사회의 안심을 대신했다. 마약은 영화 속 범죄조직이나 일부 유흥가의 일이고, 평범한 사람의 생활과는 멀다는 믿음이었다. 그런데 요즘 사건이 발견되는 곳은 공항 검색대만이 아니다. 휴대전화 속 비공개 대화방과 대학가, 주택가, 의료용 마약류의 오남용 관리까지 문제의 갈래가 넓어졌다. 이제 “우리는 괜찮다”는 말부터 의심해야 한다.
먼저 바로잡을 점이 있다. ‘마약청정국’은 유엔 같은 국제기구가 인증하고 박탈하는 공식 지위가 아니다. 흔히 인용되는 ‘인구 10만 명당 마약류 사범 20명 미만’도 국제 공인 기준이라기보다 국내에서 확산 위험을 설명할 때 사용해 온 범죄계수에 가깝다. 나는 그래서 “한국이 청정국 지위를 잃었다”는 표현을 문자 그대로 쓰는 데에는 조심스럽다. 다만 말의 유래가 부정확하다고 현실까지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그 표현이 상징하던 낮은 접근성과 낮은 확산은 이미 지금의 한국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3년 연속 2만 명, 일시적 소동으로 보기 어렵다
대검찰청이 지난 7월 공개한 ‘2025년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단속된 마약류 사범은 2만3,403명이다. 2024년보다 1.7% 늘었고, 역대 최다였던 2023년 2만7,611명보다는 적다. 한 해의 급증만 떼어 “폭발했다”고 말할 상황은 아니지만, 3년 연속 2만 명을 넘긴 사실은 일시적 사건으로 넘기기 어렵다. 연령도 눈에 걸린다. 30대 이하가 1만4,573명으로 전체의 62.3%였고, 10대는 674명이었다. 이 수치가 청년 다수가 마약에 노출됐다는 뜻은 아니다. 그래도 특정 세대의 외딴 일탈로만 볼 단계는 지났다는 경고로는 충분하다.
통계를 읽을 때 선을 그을 필요도 있다. ‘단속 인원’은 실제 사용자 수와 같지 않다. 수사 인력이 늘거나 온라인 추적이 정교해지면 숨어 있던 범죄가 더 많이 잡힌다. 공급책, 단순 소지자, 투약자를 함께 세는 숫자이기도 하다. 따라서 검거 인원만으로 국민 몇 명이 마약을 사용한다고 추정하는 것은 무리다. 반대로 “단속이 잘돼서 숫자가 커졌을 뿐”이라고 안심할 수도 없다. 2025년 밀수 사범은 1,772명으로 전년보다 57.4% 늘어 관련 집계를 시작한 2000년 이후 가장 많았다. 압수된 마약류 1,156.4㎏ 가운데 국외 밀수분으로 확인된 양만 755.7㎏이었다. 국내 수요와 연결하려는 공급망이 계속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다.
내가 더 걱정하는 것은 달라진 ‘거리’다
국경의 숫자도 무겁다. 관세청의 2025년 집계는 1,256건, 3,318㎏으로 건수와 중량 모두 역대 최대였다. 2026년 상반기에도 767건, 1,007㎏이 적발됐고, 국내 유입 목적 밀수는 상반기 기준 최고치를 기록했다. 다만 압수량에는 한 번의 대형 사건이 큰 영향을 주고 검사 강화와 국제공조의 성과도 섞인다. 이를 곧바로 소비량 증가로 바꾸어 말해서는 안 된다. 내가 이 숫자에서 읽는 것은 한국을 시장이나 경유지로 보는 공급 시도가 규모와 경로를 바꾸며 이어진다는 사실이다.
숫자보다 더 걱정스러운 변화는 사람과 판매자 사이의 거리가 짧아졌다는 점이다. 범죄백서는 거래가 대면 방식에서 다크웹과 텔레그램 등 비대면 방식으로 옮겨가며 젊은 층 비중이 커졌다고 분석했다. 예전에는 위험한 사람을 직접 만나야 했다면 지금은 익명 계정과 메신저가 첫 접촉의 문턱을 낮춘다. 구체적인 구매법을 몰라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은어와 광고가 먼저 화면에 닿을 수 있다. ‘마약은 나와 상관없는 세계’라는 오래된 예방 문구가 잘 먹히지 않는 이유다.
검거 통계 밖의 흔적도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7월 전국 하수 역학조사에서 불법 마약류 31종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하수 조사는 경찰에 잡힌 사람만 세는 방식과 달리 지역사회에 남은 성분을 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렇다고 31종이 전국에 같은 정도로 퍼졌거나 사용자 수가 그만큼 늘었다는 뜻은 아니다. 하수 유량과 유동인구, 약물별 대사 특성에 따라 값이 달라진다. 이 자료는 체포 건수 하나로 현실을 재단하지 말고 수사·보건·의료 지표를 함께 보라는 신호에 가깝다.
처벌만 세게 외치면 문제는 더 깊이 숨는다
공급 조직과 청소년을 노리는 판매자, 반복적으로 대량 유통하는 범죄에는 강한 수사와 범죄수익 환수가 필요하다. 여기서 물러설 이유는 없다. 그러나 의존 상태에 빠진 사람까지 모두 같은 방식으로만 다루면 대응은 절반에서 멈춘다. 의존은 처벌을 두려워한다고 자동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본인과 가족이 기록과 낙인을 걱정해 상담을 미루는 동안 재사용 위험은 커지고, 결국 더 큰 건강 피해나 범죄로 돌아올 수 있다.
숫자도 이 빈틈을 보여 준다. 같은 범죄백서에서 2025년 마약류 사범 재범률은 29.8%였다. 치료보호 인원은 2021년 280명에서 2025년 1,649명으로 크게 늘었지만, 지정된 32개 기관 중 그해 치료 실적이 확인된 곳은 18곳이었다. 전체 인원의 57.7%가 두 기관에 몰렸다. 제도가 확대되는 것과 내가 사는 지역에서 제때 치료받을 수 있는 것은 다른 문제다. 검거 뒤 연결이 끊기면 다시 같은 숫자로 돌아올 가능성이 남는다.
정부도 2026년 시행계획에서 온라인 유통 차단과 공항·항만 검사 강화, 맞춤형 치료, 재활 전문가 양성, 의료용 마약류의 중복·과다 처방 점검을 내놓았다. 방향은 맞다. 이제 볼 것은 발표한 기관 수가 아니라 실제로 얼마나 빨리 치료를 시작하는지, 수사기관에서 상담과 의료로 얼마나 연결되는지, 치료 뒤 학교와 직장으로 돌아갈 길이 있는지다. 단속 실적은 바로 집계되지만 회복은 오래 걸리고 숫자로도 덜 돋보인다. 정책이 자꾸 앞쪽에만 힘을 싣는 이유다. 나는 이 불균형을 고치지 않는 한 검거가 늘어도 문제의 뿌리는 얕아지지 않는다고 본다.
예방교육도 겁주기만 해서는 부족하다. “한 번이면 인생이 끝난다”는 문구는 강렬하지만, 이미 사용했거나 주변 사람을 걱정하는 이에게는 도움을 청할 문을 닫는 말이 될 수 있다. 약물의 위험과 불법성, 온라인 권유를 거절하는 법, 이상 증상이 있을 때 진료받는 법, 익명으로 상담할 수 있는 1342 용기한걸음센터까지 함께 알려야 한다. 예방의 목적은 겁먹은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첫 사용을 막고, 문제가 시작됐다면 더 빨리 멈추게 하는 데 있다.
‘청정국’ 간판보다 중요한 것
현재 한국의 마약 문제는 분명 심각하다. 그렇다고 국민 대부분이 마약을 한다거나 한국이 하루아침에 ‘마약 천국’이 됐다는 뜻은 아니다. 총검거 인원은 2023년 정점보다 낮고, 압수량 증가는 단속 역량의 향상도 함께 보여 준다. 그럼에도 2만 명대 단속이 고착되고, 30대 이하 비중이 60%를 넘고, 익명 온라인 거래와 국제 밀수가 이어지는 현실은 과거의 안심을 내려놓기에 충분하다.
내가 생각하는 더 무서운 장면은 거대한 조직의 창고가 아니다. 평범한 사람이 화면에서 처음 권유를 받고, 호기심으로 선을 넘은 뒤, 처벌과 낙인이 두려워 치료 문 앞에서 돌아서는 장면이다. 공급자는 더 정확히 추적하고 사용 문제를 겪는 사람은 더 일찍 치료로 연결해야 한다. 검거 수와 함께 치료 진입률, 재사용, 응급 피해와 회복 유지율도 공개해야 한다. ‘마약청정국’이라는 이름을 되찾는 것보다 단 한 번의 실수가 한 사람의 남은 삶을 모두 삼키지 않게 붙잡는 나라가 되는 일. 지금 우리에게 더 필요한 목표는 그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