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7일은 24절기 가운데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추였습니다. 그런데 달력이 가을을 선언한 그날, 서울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는 폭염경보가 내려졌습니다. 기상 관측 이래 119년 만에 가장 더운 입추였다는 소식도 함께 전해졌습니다. 절기는 분명 가을을 가리키는데,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몸은 여전히 한여름 그 자체를 견디고 있는 셈입니다. 이 어긋남을 그저 우스갯소리로 넘기기에는, 최근 몇 년 사이 반복되는 패턴이 예사롭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119년 만에 가장 더운 입추
24절기는 태양이 지나는 길인 황도를 기준으로 정해집니다. 지구와 태양의 기하학적 위치로 날짜가 고정되는 것이지, 그해 그날의 실제 기온을 반영하는 지표가 아닙니다. 그래서 절기와 체감 날씨 사이에 어느 정도 시차가 있는 것은 원래도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여름 동안 땅과 바다에 쌓인 열기가 빠지려면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입추가 지나도 한동안 더위가 이어지는 것은 옛 어른들도 익히 알던 이치였습니다. 문제는 그 시차가 해마다 조금씩 벌어지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올여름에는 7월 31일 경남 양산에서 41.4도가 관측되며 역대 일최고기온 기록이 새로 쓰였고, 전문가들은 이번 폭염이 최소 8월 중순까지는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습니다. 열대야 역시 예년보다 훨씬 오래 지속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절기가 말하는 '가을'과 몸이 감당해야 하는 '여름' 사이의 거리가, 예전보다 훨씬 멀어진 셈입니다.
절기가 알려주지 못하는 것
이 간극은 단순히 달력 위의 상징 문제로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 삶의 여러 리듬은 여전히 절기를 기준 삼아 짜여 있습니다. 유통가는 입추 전후로 가을 상품을 진열대에 올리고, 환절기 건강기능식품 마케팅이 시작되며, 학교와 직장의 옷차림 안내도 슬슬 바뀌기 시작합니다. 농사를 짓는 이들에게 절기는 파종과 수확의 오랜 기준점이었습니다. 그런데 실제 기온이 그 기준을 계속 배신하면, 이런 관행들은 헛돌기 시작합니다. 가을 신상품을 내놓아도 손님들은 여전히 냉방용품을 찾고, 환절기 감기 마케팅은 폭염 특보 속에서 설 자리를 잃습니다. 개인의 삶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입추가 지나면 슬슬 여름옷을 정리하고 두꺼운 이불을 꺼낼 준비를 하던 리듬이, 계속되는 열대야 앞에서는 무의미해집니다. 몸은 아직 쉴 틈을 얻지 못했는데 달력만 앞서가는 감각, 그것이 요즘 여름의 특징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다고 절기라는 오랜 지혜를 폐기하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다만 절기가 가리키는 '때'와 몸이 실제로 느끼는 '때' 사이에 점점 더 큰 시차가 생기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이제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지금까지의 관측 결과를 보면, 여름이 조금씩 더 길어지고 봄과 가을은 그만큼 짧아지고 있다는 신호가 곳곳에서 확인됩니다. 학사 일정이나 농업 지침, 재난 대응 체계처럼 절기의 관행에 기대어 있는 제도들도 이제는 실제 기후 데이터를 좀 더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방향으로 조정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개인 차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달력의 날짜보다 오늘의 체감온도와 습도를 먼저 확인하는 습관이, 앞으로의 여름을 나는 데는 더 실질적인 지침이 될 것 같습니다. 입추라는 이름이 무색해질 만큼 더운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계절을 세는 방식 자체를 다시 생각해 볼 때가 된 것은 아닌지 묻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