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대통령 선거 이후, 나의 정치적 여정은 늘 민주당과 궤를 같이해 왔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치러진 모든 선거에서 민주당이 걸어온 길을 지지했고,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세 대통령의 당선을 함께 목도했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던 날 밤, 광화문 거리를 가득 채웠던 노사모 회원들과 대통령당선자의 감격 어린 인사는 아직도 가슴 한구석에 뜨겁게 남아 있다. 그날의 기쁨은 단순한 정권 교체를 넘어, 우리가 꿈꾸던 민주주의와 소통의 정치가 마침내 현실로 다가왔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그렇기에 12.3 내란이라는 미증유의 사건을 접했을 때,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이제 이재명이 대통령이 되겠구나'라는 확신이었다. 이후 치러진 6.3 선거는 그 기대를 더욱 증폭시켰다. 선거 이후 본격적인 개혁이 단행되리라는 기대감은 그 어느 때보다 컸고, 새로운 국정 운영 방식에 환호했다. 국무회의를 공개하고, 시민들과 눈을 맞추는 타운홀 미팅을 열며, 기습적인 기자간담회로 소통을 이어가는 모습은 신선했다. 부동산 정책에 대한 기대감과 주가 상승 소식 역시 국정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반가운 징표로 다가왔다. 친화적인 외교무대 장악력을 보여주는 대통령과 내란의밤에 국회 담을 넘던 결기로 똘똘 뭉쳐 대통령을 뒷받침하는 민주당, 참으로 매일매일이 벅찼다.
그러나 영원할 것 같았던 신뢰의 둑에 처음으로 미세한 균열이 느껴진 것은 바로 6.3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진 평택을 지역구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였다. 김용남 후보 공천 과정을 지켜보며 느낀 강한 이질감은 당혹스러움 그 자체였다. 과정을 무시하고 밀어붙이는 듯한 모습은 내가 오랫동안 알고 지지해 온 민주당의 당내 민주주의나 절차적 정당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내가 알던 민주당의 모습이 아니라는 사실에 깊은 씁쓸함을 느꼈다.
지방선거가 끝난 이후의 상황은 나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국정 최고 책임자가 민주당 전당대회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하는 듯한 정황들이 포착되기 시작했고, 전직 대통령을 포함해 이른바 '반명'이라는 지목과 비난의 비수가 빈번해졌다. 당의 핵심 과제였던 검찰개혁 역시 말로는 개혁을 목놓아 외치지만 실제로는 차일피일 지연시키는 모순적인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마음속 답답함과 불안감은 유시민 작가의 정돈된 시각과 정국 진단을 보며 명확하게 정리가 되었다. 너무 아프지만 그보다 황당함에 정신이 추스러지기 힘들었다.
그 가운데 치러지고 있는 민주당 전당대회는 점차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것처럼 보였다. 당내 갈등과 비전의 부재를 지켜보는 일은 괴로웠고, 한동안 매일 아침 펼쳐보던 신문조차 멀리하게 될 만큼 정치 현실에 대한 실망감이 컸다. 오랜 시간 지지해 온 정당이 보여주는 유착과 균열은 개인적인 배신감으로까지 다가와 외면이라는 답을 찾게 되었다.
지금도 마음이 완전히 정리된 것은 아니다. 지난 세월 쌓아온 지지의 무게만큼 마음의 상흔도 깊다. 하지만 이제는 조급함이나 분노 대신, 한 걸음 물러서서 평정을 유지하려 한다. 정치적 환호와 실망의 경계를 지나온 지금, 차분한 눈으로 현실을 관망하며 나 자신의 여유를 찾고 싶다. 어서 민주당 전당대회라는 혼란의 시간이 지나갔으면. 누가 되든 어차피 큰 기대도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