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몸속에 존재하는 수많은 미생물이 이제 단순히 소화와 장 건강을 돕는 ‘조연’에서 질병을 치료하는 새로운 대상으로 주목받고 있다. 과거에는 장내 미생물을 주로 유산균이나 프로바이오틱스와 연결해 생각했다면, 최근에는 장내 미생물 자체와 미생물이 만들어내는 대사물질을 활용해 암과 알레르기, 면역질환 등을 치료하려는 연구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특히 최근 주목할 만한 것은 장내 미생물이 만들어내는 물질을 직접 치료에 활용하려는 움직임이다. 8월 10일에는 성균관대 연구진이 미국 미시간대와 함께 장내 미생물 대사체를 활용한 경구형 항암 나노의약품을 개발했다는 연구 결과가 알려졌다. 연구진은 장내 미생물이 만들어내는 대사물질 가운데 T세포의 기능을 강화하는 물질을 찾아내고, 이를 활용해 암세포를 공격하는 면역반응을 높이는 방식의 치료법을 연구했다. 특히 주사제가 아닌 먹는 형태의 치료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관심을 받고 있다.
이러한 연구는 장내 미생물을 단순히 ‘좋은 균’과 ‘나쁜 균’으로 나누는 기존의 접근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것이다. 장내 미생물은 우리가 소화하지 못하는 식이섬유 등을 분해하면서 다양한 대사물질을 만들어내는데, 이 물질들이 면역체계와 신진대사, 장벽 기능 등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앞으로의 마이크로바이옴 치료는 특정 세균을 많이 넣는 방식보다 어떤 미생물이 어떤 물질을 만들어내고, 그것이 환자의 몸에서 어떤 반응을 일으키는지를 파악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마이크로바이옴을 활용한 치료제는 이미 연구 단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에서는 재발성 클로스트리디오이데스 디피실 감염을 치료하기 위한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치료제가 허가된 바 있다. 이후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는 장 질환에 머물지 않고 면역질환과 항암 치료, 대사질환 등으로 연구 범위를 넓히고 있다.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에서도 장내 미생물을 활용한 신약 개발이 활발해지면서 마이크로바이옴이 하나의 신약 개발 분야로 자리 잡아가는 모습이다.
최근에는 장과 뇌의 연결을 의미하는 ‘장-뇌 축’ 연구도 활발하다. 장내 미생물이 만들어내는 물질이나 면역·신경 신호가 뇌 기능과 연관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수면과 스트레스, 기분 등의 영역에서도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건강한 사람에게서 얻은 장내 미생물을 캡슐 형태로 투여해 만성 불면증 증상을 개선할 수 있는지를 살펴본 소규모 연구 결과도 발표됐다. 다만 연구 규모와 기간 등에 한계가 있어 아직 일반적인 치료법으로 사용하기에는 이르다는 평가가 나온다.
장내 미생물을 이용한 치료 가능성은 알레르기 분야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최근 발표된 소규모 연구에서는 심한 땅콩 알레르기가 있는 성인에게 건강한 장내 미생물을 가진 사람의 분변에서 얻은 미생물을 캡슐 형태로 투여한 결과 일부 참가자의 땅콩에 대한 내성이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장내 미생물 변화가 담즙산 대사와 면역반응에 영향을 주면서 알레르기 반응을 줄였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러나 참가자가 10명에 불과한 초기 연구인 만큼 더 큰 규모의 임상시험을 통해 효과와 안전성을 확인해야 한다.
국내에서도 마이크로바이옴 연구에 대한 투자가 확대되고 있다. 올해 서울에서 열린 국제 인체 마이크로바이옴 컨소시엄 학술대회에서는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뿐만 아니라 정밀의료, 숙주와 미생물의 상호작용, 데이터 기반 연구, 임상 적용 전략 등이 주요 주제로 다뤄졌다. 질병관리청 국립보건연구원 역시 임상정보와 유전체 데이터를 연계한 국가 연구 플랫폼을 구축하며 한국인의 마이크로바이옴 데이터를 활용한 연구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하지만 마이크로바이옴이 모든 질병을 해결할 수 있는 만능 치료제가 된 것은 아니다. 장내 미생물은 사람마다 구성과 기능이 다르기 때문에 똑같은 치료법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효과를 내지 않을 수 있다. 실제로 최근 연구에서도 마이크로바이옴 치료가 사람마다 다른 결과를 보이는 이유를 개인별 장내 환경과 식습관, 면역체계 등의 차이에서 찾고 있다.
결국 최근 마이크로바이옴 연구의 핵심은 ‘유산균을 많이 먹으면 건강해진다’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장내 미생물과 인간의 상호작용을 분석하고, 특정 미생물이나 미생물이 만들어내는 대사물질을 찾아 질병의 예방과 진단, 치료에 활용하려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앞으로는 개인의 장내 미생물 데이터를 분석해 어떤 치료가 효과적일지 예측하는 정밀의료와 결합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마이크로바이옴 연구가 건강기능식품을 넘어 실제 의약품과 의료기술로 발전하고 있는 이유다.
다만 아직 초기 단계인 연구도 많다는 점은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특정 미생물이 질병과 관련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 미생물이 질병의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 없으며, 소규모 임상시험에서 효과가 확인됐다고 해서 곧바로 일반적인 치료법이 되는 것도 아니다.
장내 미생물은 이제 건강의 조연을 넘어 치료의 대상으로 이동하고 있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마이크로바이옴 의학이 자리 잡기 위해서는 더 많은 임상시험과 장기적인 안전성 검증이 필요하다. 결국 미래의 마이크로바이옴 치료는 ‘좋은 균을 넣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마다 다른 장내 생태계를 이해하고 그 생태계가 만들어내는 신호를 질병 치료에 활용하는 정밀의료의 형태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