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적인 더위가 드러낸 냉방비·노동·주거의 격차
한낮에 잠깐 밖에 나갔다가 실내로 들어오면 가장 먼저 에어컨을 찾게 된다. 하지만 누구나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건설현장과 물류센터, 배달과 농사처럼 뜨거운 공간에서 일을 멈추기 어려운 사람이 있고, 전기요금이 걱정돼 냉방기를 켜지 못하는 가정도 있다. 같은 기온을 겪더라도 누군가는 불편한 하루를 보내고, 누군가는 생명까지 위협받는다.
2026년 7월 12일에는 경북 남부 일부 지역에 올해 첫 ‘폭염중대경보’가 내려졌다. 질병관리청은 일최고체감온도가 38도를 넘을 경우 고령층의 사망 위험이 19% 증가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관계부처는 장마가 끝난 뒤 8월 말까지 평년보다 높은 기온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더위는 이제 잠깐 참고 지나가는 계절 현상이 아니라 건강과 노동, 전력과 복지를 한꺼번에 흔드는 사회문제가 됐다.
최근 수치는 폭염의 위험이 커지고 있음을 보여 준다. 질병관리청의 온열질환 응급실감시체계에서 확인된 환자는 2023년 2,818명, 2024년 3,704명, 2025년 4,460명으로 늘었다. 2025년 환자 가운데 29명은 온열질환 추정 사망자였다. 이 통계는 참여 응급실을 통한 표본감시이므로 모든 환자를 빠짐없이 센 전수조사는 아니지만, 피해의 규모와 발생 장소를 파악하기에는 충분히 의미가 있다. ([2026년 온열질환 감시 시작 보도자료](https://www.kdca.go.kr/bbs/kdca/42/311060/artclView.do))
중요한 것은 누가 쓰러졌느냐는 점이다. 2025년 환자의 79.2%는 실외에서 발생했다. 실외 작업장이 1,431명으로 전체의 32.1%를 차지했고, 논밭이 12.2%, 길가가 11.7%였다. 직업별로는 단순노무종사자가 26%로 가장 많았다. 전체 환자의 30%가 65세 이상이었고, 추정 사망자 중 65세 이상 비율은 58.6%에 달했다. 폭염은 모든 사람에게 같은 온도로 오지만, 그 피해는 야외에서 일해야 하는 사람과 고령층에 더 무겁게 쏠렸다.
정부는 체감온도 33도 이상에서 폭염작업을 할 경우 사업주가 근로자에게 2시간 이내마다 20분 이상의 휴식을 주도록 하고 있다. 2026년에는 건설·조선·물류 등 고위험 사업장 1천 곳을 대상으로 집중점검도 진행했다. 법에 휴식시간이 적혀 있다는 것은 분명한 진전이다. 그러나 작업량과 납기 압박이 그대로인 상태에서 현장 노동자가 실제로 “지금은 너무 더우니 멈추겠다”고 말할 수 있는지는 다른 문제다. 휴게공간이 멀거나 냉방이 되지 않는다면 20분 휴식도 형식에 그칠 수 있다.
집 안이라고 모두 안전한 것도 아니다. 에어컨이 있어도 전기요금이 걱정돼 켜지 못하면 냉방은 사실상 이용할 수 없는 서비스가 된다. 특히 오래된 주택이나 옥탑방, 반지하처럼 단열과 환기가 부족한 공간은 낮 동안 받은 열이 밤까지 남는다. 건강이 좋지 않은 고령자가 혼자 산다면 위험을 알아챌 사람도 부족하다. 폭염 피해를 개인이 물을 덜 마셨거나 에어컨을 아껴 쓴 결과로만 보는 것이 위험한 이유다.
2026년 에너지바우처는 대상 가구에 세대원 수에 따라 1인 29만5,200원부터 4인 이상 70만1,300원까지 지원하고, 하절기에는 전기요금 차감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다. 도움이 필요한 제도지만 신청 자격을 몰라 놓치거나 행정복지센터 방문이 어려운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폭염이 심한 날에는 지원 대상자를 기다리는 방식보다 지자체가 독거노인과 장애인, 냉방 취약주택 거주자를 먼저 찾아 상태를 확인하는 쪽이 더 효과적이다.
더위가 길어질수록 전력 문제도 커진다. 전력거래소의 2026년 연간 전망에서 8월 최대전력은 10만1,600MW, 예비율은 10%로 예상됐다. 실제 수요는 날씨와 발전기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냉방이 집중되는 시기에 전력망 부담이 커진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시민에게 무조건 에어컨을 끄라고 요구해서는 안 된다. 폭염 속 냉방은 사치가 아니라 건강을 지키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필요한 냉방은 보장하되 공공건물 단열 개선, 고효율 냉방기 보급, 태양광과 저장장치 확대처럼 같은 전력으로 더 안전하게 버틸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나는 폭염 대응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말이 “각자 조심하자”라고 생각한다. 물을 자주 마시고 한낮 외출을 피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배달기사에게 배송을 멈출 권한이 없고 농민에게 작업을 대신할 사람이 없다면 개인수칙만으로는 부족하다. 전기요금 때문에 에어컨을 켜지 못하는 사람에게 냉방기 사용을 권하는 것도 해결책이 아니다. 개인의 주의는 마지막 방어선이고, 그 앞에는 노동규칙과 주거환경, 복지와 전력정책이 있어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는 폭염을 재난으로 다뤄야 한다. 작업중지와 휴식이 실제로 지켜지는지 불시에 점검하고,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도 보호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 무더위쉼터는 숫자만 늘릴 것이 아니라 야간과 주말에도 열려 있는지, 거동이 불편한 사람이 갈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오래된 임대주택의 단열과 창호 개선, 차열도장과 그늘막 확대도 복지정책이자 기후정책이다.
기업의 역할도 작지 않다. 폭염 때 생산성과 배송속도가 떨어지는 것을 노동자의 책임으로 돌리지 말고, 작업량과 시간표 자체를 조정해야 한다. 플랫폼 기업이라면 폭염경보 시 배달시간을 늘리고 수수료 구조를 바꿔 기사들이 무리하게 운행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소비자 역시 폭염 속 ‘빠른 배송’이 누군가의 위험을 전제로 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폭염은 자연현상이지만 피해의 크기는 사회가 결정한다. 시원한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과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일하는 사람, 단열이 잘된 집에 사는 사람과 냉방비를 걱정하는 사람에게 여름은 전혀 다른 계절이다. 그래서 폭염 대책은 온도계의 숫자만 보고 시작해서는 안 된다. 누가 밖에서 일하고 있는지, 누가 에어컨을 켜지 못하는지, 누가 혼자 위험을 견디는지를 먼저 찾아야 한다.
나는 앞으로의 여름이 지금보다 쉽게 시원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목표는 더위를 완전히 없애는 것이 아니라, 더위 때문에 사람이 일터에서 쓰러지거나 전기요금이 무서워 생명을 위협받는 일을 막는 것이어야 한다. 폭염을 개인의 인내심 문제가 아니라 노동과 주거, 복지의 문제로 보는 순간 대책도 달라진다. 누구에게나 쉴 권리와 최소한의 냉방이 보장될 때, 우리는 비로소 폭염에 대비했다고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