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소비자들의 지갑이 예전처럼 쉽게 열리지 않는다. 물가는 높고 생활비 부담도 커졌다. 꼭 필요한 물건을 살 때도 가격을 비교하고, 조금이라도 저렴한 제품을 찾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그런데 이상한 소비가 나타나고 있다.
사람들이 모든 소비를 줄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최근 소비 흐름을 보면 물건 자체보다 직접 경험하고 즐기는 것에 돈을 쓰려는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여행에서도 유명 관광지를 찾아 인증사진을 남기는 것보다 한적한 자연이나 현지 음식, 그 지역의 생활방식을 직접 경험하는 여행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나는 이 변화가 단순한 소비 유행이라기보다 사람들이 돈을 쓰는 기준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는 신호라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좋은 물건을 갖는 것이 소비의 중요한 목적이었다.
비싼 가방을 사고, 최신 스마트폰을 사고, 더 큰 TV를 사는 식이었다. 물론 지금도 이런 소비는 존재하지만, 최근에는 물건을 소유하는 것보다 그 물건을 통해 어떤 시간을 보내느냐가 중요해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홈카페다.
밖에서는 저렴한 커피를 찾으면서도 집에서는 수십만 원, 많게는 100만 원이 넘는 커피머신을 구입하는 사람들이 있다.
얼핏 보면 이상하다.
커피 한 잔을 싸게 마시려는 사람들이 왜 비싼 커피머신에는 돈을 쓰는 것일까.
하지만 커피머신을 단순히 커피를 만드는 기계로 보면 이해하기 어렵다.
커피 원두를 고르고, 직접 갈고, 추출하고, 향을 맡고, 자신에게 맞는 맛을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경험이 된다.
결국 소비자가 돈을 지불하는 것은 커피 한 잔만이 아니다.
집에서 나만의 카페를 만들어 즐기는 시간까지 함께 구매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최근 소비시장을 이해하는 데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고물가 시대라고 해서 사람들이 무조건 가장 싼 제품만 찾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평범한 소비에서는 최대한 아끼면서도 내가 정말 좋아하는 분야에서는 돈을 쓰는 선택적 소비가 나타나고 있다.
이를테면 평소에는 저렴한 식사를 하면서도 특별한 날에는 좋은 식당을 찾고, 평소에는 여행 비용을 아끼면서도 한 번 떠난 여행에서는 단순 관광보다 특별한 체험을 선택하는 식이다.
이런 소비에서는 가격만으로 상품을 설명하기 어렵다.
같은 커피라도 어디에서 마시는지, 누구와 마시는지, 어떤 분위기에서 마시는지에 따라 소비자가 느끼는 가치는 달라진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유명 관광지에서 사진 한 장을 남기는 것보다 현지 시장에서 음식을 먹고, 작은 마을을 걸어보고, 그 지역 주민들의 일상을 경험하는 것을 더 가치 있게 생각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무엇을 샀는가’보다 ‘무엇을 경험했는가’가 중요해지는 것이다.
나는 특히 SNS의 영향도 이런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소비가 강했다.
비싼 물건을 구매하고 사진을 찍어 올리는 것 자체가 소비의 만족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SNS에 비슷한 사진이 넘쳐나면서 오히려 남들과 똑같은 경험에 대한 매력이 떨어지고 있다.
유명 관광지에서 모두가 찍는 사진보다 나만 알고 있는 장소를 발견하는 것이 더 특별하게 느껴지고, 똑같은 명품보다 자신만의 취향을 보여주는 물건이나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결국 소비의 기준이 과시에서 취향으로 이동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변화는 기업에도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예전에는 좋은 제품을 만들고 가격을 경쟁력 있게 책정하면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이제는 제품을 구매하는 순간부터 소비자가 어떤 경험을 하게 되는지까지 중요해지고 있다.
그래서 최근에는 단순히 상품을 진열해 놓는 매장보다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나 팝업스토어가 주목받고 있다.
제품을 설명하는 것보다 직접 만지고 사용해보고 사진을 찍고 이야기를 나누게 하는 것이 소비자의 기억에 더 오래 남기 때문이다.
나는 앞으로 이런 경험 중심의 소비가 더욱 커질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물론 모든 사람이 비싼 경험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가격이 아니라 ‘나에게 얼마나 의미가 있는가’다.
몇 천 원짜리 디저트 하나가 하루를 기분 좋게 만들 수도 있고, 비싼 여행보다 집 근처에서 좋아하는 사람과 보낸 시간이 더 오래 기억에 남을 수도 있다.
그래서 경험 소비를 단순히 ‘돈을 많이 쓰는 소비’라고 이해하면 안 된다.
적은 돈으로도 자신에게 특별한 경험을 만들어내려는 소비까지 포함한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나는 이런 소비 변화가 고물가 시대에 나타나는 일종의 심리적 대응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을 포기하기보다는 내가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하나만큼은 놓치지 않으려는 것이다.
외식 횟수를 줄이는 대신 한 번 먹을 때 좋아하는 메뉴를 선택하고, 여행 횟수를 줄이는 대신 한 번 떠날 때 특별한 경험을 찾고, 매일 카페에 가는 대신 집에서 직접 커피를 만들어 즐기는 식이다.
결국 소비자는 지갑을 닫은 것이 아니라 지갑을 여는 기준을 더 까다롭게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
앞으로 기업들도 단순히 “더 싸게”만 외치기보다 소비자에게 어떤 기억과 만족을 남길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 역시 소비를 바라보는 방식이 조금 달라질 필요가 있다.
무조건 많이 사는 것이 좋은 소비도 아니고, 무조건 싼 것이 현명한 소비도 아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에 돈을 쓰고, 그 돈으로 오래 기억할 수 있는 경험을 얻는다면 그것 역시 충분히 가치 있는 소비일 수 있다.
나는 결국 앞으로의 소비시장에서 가장 강력한 상품은 물건 자체가 아니라 ‘그 물건을 통해 얻는 경험’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물건을 사면서 동시에 시간을 사고 있다.
커피머신을 사면서 나만의 아침을 사고, 여행을 떠나면서 낯선 곳에서의 기억을 사고, 작은 취미에 돈을 쓰면서 일상에서 벗어나는 순간을 산다.
그래서 불황이라고 해서 소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돈을 쓴다. 다만 이제는 ‘무엇을 가질 것인가’보다 ‘무엇을 경험할 것인가’를 더 신중하게 선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